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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 Jul 26. 2020

세계 여행자에서 다시 평범한 대학생으로

세계일주, 그 후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두려울 것 없던 세계 여행자에서,

다시 평범한 대학생으로.


1년 가까이 해외를 누볐던 사람에게 학교 수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은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늦게까지 일했다. 이렇게 반복되는 하루는 지치고 힘들었다.


4월의 어느 날, 나는 중도 휴학을 결정한다. 그저 다가오는 현실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힘들다는 것은 모두 핑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퇴를 생각하며 기약 없는 휴학이 시작되었다. 가진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나 놓지 않았던 것은 여행하며 배웠던 스페인어다. 출근 전이나 쉬는 날마다 틈틈이 혼자 공부했다.




어느 날 대학교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시험 기간이라 학교에서 공부 중인데,

같이 공부할래?"


휴학생에게 공부라니, 평소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텐데, 그 날만큼은 알겠다며 학교로 향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스페인어를 공부하는데, 어깨너머로 익숙한 언어가 들린다.


' 어? 이거 스페인어 아니야? '


우리 학교 교환학생들이었다.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듣기가 어려울뿐더러 원어민을 만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2달간 히치하이킹으로 스페인을 여행했던 일, 멕시코에서 한 달 살기를 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여행이었고, 스페인어였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 10시, 모두가 짐을 챙겨 나갈 때 그들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 나는 스페인어권 라틴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야. 아까 의도치 않게 너희가 스페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괜찮다면 친구가 되고 싶다. "


이런 내용을 스페인어로 전하니 그들은 놀랐다. 어떻게 언어를 배웠냐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비록 휴학생이었지만, 교환학생으로 온 콜롬비아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마치 현지인 가이드처럼 내가 사는 도시를 소개해주고, 함께 여행도 다녔다. 한국에 살지만 그들을 만날 때면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그들에게 묻기도 했다.


학기가 마무리되자 그들은 다시 콜롬비아로 돌아가야 했고, 우린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비행기로만 20시간이 걸리는 콜롬비아에 사는 친구들을 다시 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저렴한 항공편을 수시로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우연히 노선을 검색하던 중 멕시코를 경유해 콜롬비아로 가는 저렴한 비행 편을 발견했다.


본래는 120만 원 정도 되는 왕복 노선인데 75만 원이라고? 거진 반값 세일이었다.


당장 다음 주에 출발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일정이었고, 이전부터 꿈꿔왔던 남미 여행이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여행지는 교환학생 친구들이 살고 있는 콜롬비아의 보고타였다.


한국에선 내가 그들의 가이드 역할을 했다면, 이번엔 역할이 바뀌었다. 그들이 다니는 대학교를 구경하고, 수업도 청강했다. 콜롬비아 파티에도 초대되었으며, 그들이 사는 집에서 머물렀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었던 호의가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친구 크리스는 나에게 말했다.


" 한국에서 만난 우리가 2 만에 다시

콜롬비아에서 만난 것이 말이 !? "


연고가 없던 콜롬비아란 나라에서 한 달이란 시간을 보냈다. 수도 보고타부터 메데진, 북부의 카르타헤나, 바랑키야, 산타마르타, 민카, 팔로미노, 다시 남부의 살렌토, 칼리까지.




그때 내가 친구의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도서관에서 머뭇거리다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모두 스쳐갔을 인연이었다.


말을 걸기 위해 자리를 일어났던 그 한순간의 용기가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


2달 간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이제 확신을 가졌다. 행위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여행과 스페인어를 접목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를 남미에, 남미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마케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교수님의 음성이 더 이상 지루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불과했다.


여행과 스페인어는 식어가던 나를 다시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우연히 스쳐 지나갈 뻔했던 콜롬비아 교환학생 친구들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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