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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신쌤 Feb 25. 2022

사춘기 보험

들어주기, 경청

소개팅에 나가서 낯선 이성을 만났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가장 호감을 느낄까? 

(자,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정답이니까 빼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 답할 것이다. 

모든 연애 코치, 관계 컨설턴트의 공통적인 꿀팁은 '적절한 리액션'이다. 

누구나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카페에 갔다.

각자 책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는데 큰 아이 반 친구 가족이 카페에 들어왔다.

3월이라 아이들끼리도 얼굴만 아는 정도라 합석을 하지는 않고 서로 가볍게 인사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별생각 없이 하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며칠 후 그때 카페에서 만났던 친구 어머니와 길에서 마주쳤다. 

일상적인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데 그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때 카페에서 저희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OO 엄마가 OO를 보는 눈빛으로 자기를 봐달라고."

아이의 친구는 관찰력이 뛰어나고 섬세한 아이였음에 틀림없다.

그 친구의 말이 내게 큰 칭찬이 되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있었구나!


엄마는 바쁘다. 지금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

한시도 쉴 틈 없이 일을 해치우고 있는데 그 틈을 아이가 비집고 들어온다.

"엄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제일 높아요?"


나는 대부분의 경우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를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항상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덜 해도 되는 때가 온다!)

하던 일을 계속하면 아이 말을 건성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위급하거나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춘다.

그리고 머릿속의 걱정과 생각도 멈춘다.

아이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해줄 필요는 없다. 함께 질문을 계속 던져도 된다.

그러면 아이가 답을 찾아보거나 찾아가기도 한다.

아이가 이야기를 할 때 흥미롭다는 표정,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들으면 게임 끝이다.

신이 난 아이는 생각의 꼬리를 물고 대화를 이어 나간다. 


하지만 매번 아이의 이야기를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은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먼저, 진짜로 급하거나 바쁠 때는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OO야, 지금 엄마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이런 급한 일이 생겼어. 미안.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또는 정말 정신적으로 내가 피곤해서 아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을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쉼 없이 이야기하는 큰 아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을 힘이 없는 날이었다.

나는 다소 건성으로 리액션을 하고 있었고, 저 쪽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OO야, 오늘 엄마가 좀 피곤해서 이야기 듣기 힘들어 보이는데?"

"아, 알고 있어요. 다 안 들으셔도 괜찮아요. 지금처럼 '엉' 하고 대답만 해주셔도 되거든요."


평상시에 아이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을 하면 가끔 좀 못해도 아이가 쉽게 이해를 해준다.

다만 이런 상황은 조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아이와의 소통을 놓치는 경우이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아이의 말에 건성으로 답하거나 아이를 귀찮아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아이는 자신이 엄마에게 그다지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경우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도 아이가 곁에 오면 바로 멀리 던져버린다.(푹신한 장소로)

마치 딴짓하다 걸린 학생 같지만 나름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부모님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애가 집에서 말을 안 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요."

중학생 아이가 집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축복과 같은 일이다.

그러려면 말이 없어지기 전에, 아이가 말을 하고 싶어 할 때 미리 부모님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개인차는 분명히 있어서 본래 말수가 적은 아이도 있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중학생들에게 '내가 너의 말을 관심을 기울여 듣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사실 말도 필요 없다.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미소 지으며 바라보면 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판에 박힌 칭찬보다 더 효과적이다. 때로는 혼잣말 같은 감탄을 섞어준다.

"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대박!"

칭찬보다 감탄이다. 평가가 아닌 경탄이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재미있게 들어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일단 신이 나고, 기분이 좋고, 나 스스로가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더 말하고 싶고 그 사람과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어 진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이런 느낌을 받으면서 크는 아이는 사춘기에 입을 닫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표현하는 건강한 사춘기는 사실 꽤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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