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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 마이 론리 May 18. 2019

작은 방 안의 가장 위대한 물건, 캣폴

고양이는 모든 용도로 캣폴을 사용한다

여름이를 처음 데려올 때 고양이는 높은 곳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양이는 수직 공간이 있어야 평안함을 느낀다는 이유였다. 원목 캣폴, 이름마저 빛나는 그 거대한 기둥을 꼭 사고 싶었다.


여름이가 종일 뛰어다닐 때면 아빠가 얼른 돈 많이 벌어서 캣폴 사줄게, 되뇌었다. 고양이와 나의 신뢰관계가 언어수단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그에게 캣폴을 선물해준 건 그의 나이가 딱 6개월이 됐을 때였다. 모아 뒀던 거금을 소비했고, 아주 커다란 물건이 용달 택배로 배달됐다. 그 물건은 정말이지 거대하고 반짝반짝 빛났다.


여름아 좋아?


우리는 눈부심을 참을 수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캣폴을 조립했다. 셀 수 없이 의견을 교환하며 진땀을 흘렸다. 나사를 풀었다 다시 조이기를 반복했다. 상판의 위치가 여름이 동선에 맞춰 여러 번 바뀌었다.


여름이의 반응은 바라던 그대로였다. 조립 중에도 발판 위에 올라앉아 기둥 냄새를 맡고 발톱을 갈았다. 나무 상판의 무게에 여름이의 무게가 더해져 한쪽 팔로는 이를 악물어야 버틸 수 있었지만 행복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거대한 기둥은 작은 원룸 창가에 우뚝 섰다. 여름이가 그 위에 올라서길 몇 분 채 기다리지 않았다. 기둥 위에 올라선 여름이는 왕 같았다.


청소기가 무서워 흑흑


그 후로 여름이는 다양한 용도로 캣폴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우다다를 하고, 손톱을 갈고, 영역표시를 했으며, 청소기의 굉음을 피해 숨기도 했다.


집에는 해가 잘 들어선다. 창틀은 울퉁불퉁하다. 기어코 그곳에 올라앉아 창 밖을 바라보던 고양이는 이제 종종 기둥에 올라가 잠을 청하고, 일광욕을 한다.


나는 캣폴을 맹신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이 방 안에서 가장 위대하고 동시에 가장 포근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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