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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 마이 론리 Dec 29. 2018

원룸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좁은 방에서 뛰노는 너를 바라볼 때

여름이는 하루종일 심심해한다. 자는 시간과 놀이 시간, 그리고 사료를 우적우적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방 안을 거닐며 외출 준비를 하는 나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또 하나 있다. 벗은 내 몸과 굉음을 내는 드라이기를 번갈아 앞발로 툭툭 건드리기도 한다. 이외에는 그저 무료한 시간이다.

여름이가 하루 중 사냥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 길어봤자 1시간 반이다. 직장생활, 또 이직 고민이 이어지는 생활에서 고양이에게 짧은 시간 밖에 쏟지 못해 서글프기도 하다. 여름이는 고맙게도 놀이에 온 신경을 집중해준다. 나는 그 보답으로 진짜 살아있는 먹잇감처럼 장난감을 온통 흔들어댄다.

그 이전과 이후, 내가 집에 없거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여름이는 무엇을 하는가. 그저 화장실 앞 발매트에 식빵을 굽고 앉아서는 나를 멍하게 쳐다보거나, 침대 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꼬박 존다.

더 놀고 싶을 때는 집 안 구석구석을 거닌다. 가끔은 커튼 사이로 창 밖을 보고 앉는다. 그러나 여름이에게 주어지는 무궁하게도 무료한 시간을 늘 거닐기에는 집은 늘 작다. 자꾸 꿈을 꾼다. 방 두 개짜리 집으로 이사해 그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집에 들어가면 얼굴을 부비는 여름이에게 늘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낀다.


오늘도 좁은 방에서 나와 함께해주어 고마워


고양이에게는 수평적 공간보다 수직적 공간이 더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넓은 공간보다는 높은 공간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원룸에서도 캣폴이나 캣타워 같은 수직공간만 확보되면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사실들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왜 원룸에서 여름이를 키운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할까.

어쩌면 난 그냥 내 현실을, 열심히 벌고 모아 더 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을 그저 여름이를 통해 투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혼자만 마음에 품고 있기에는 저 멀리 두둥실 떠있는 그 마음을 내 안에 꾹꾹 눌러담고만 있기에는 너무나도 간절히 원해 여름이에게 토로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돈 많이 벌게. 우리 넓은 집으로 이사가자"라고.

또 어쩌면 내 키가 나의 아버지 허리께에 오던 시절, 약주를 하고 오신 아버지가 내 얼굴에 당신 얼굴을 부비며 말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건넸던 말은 어린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평소 곰살맞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날만큼은 다정해 보였을 뿐이다. 나는 간지럽다고 웃기만 했다.

여름이도 항상 내가 조곤조곤 건네는 그 고백들을 들으며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그 흔한 야옹 소리를 대답으로 건넨 적도 없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위안을 얻는다.

나는 내 아버지가 건넸던 다정한 순간이, 내 얼굴을 부비는 당신 몸짓이 좋았다. 여름이도 그렇게 건네는 내 말이, 코를 부비는 내 몸짓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부디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찾고 있는 자신이 오만해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여름이에게 말을 건네며 코를 부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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