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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 마이 론리 Dec 25. 2018

다시 기운 찾은 고양이, 여름

너는 기운을 제법 차렸다

여름이는 한참이나 숨숨집에 들어가 죽은듯이 잤다. 눈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빛에 수면이 방해받지 않도록 입구를 짙은 곤색 담요로 가려줬다. 넥카라 때문에 숨숨집 안에서 몸을 돌리는 것도 힘겨워했지만, 한 번 자리를 잡은 녀석은 도통 깰 줄을 몰랐다.

입구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여름이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그 예쁜 눈을 아주 조금 뜨고 우리를 바라보다, 다시 감기를 반복했다. 식빵 굽는 자세로만 얕은 잠을 반복하던 여름이가 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숨숨집에 들어간 지 네 시간이 남짓 흘렀을까. 여름이는 점점 회복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한 번씩 밖으로 나와 사료를 먹었고, 물도 계속 마셨다. 우리는 안도했다.

여름이는 그날 저녁식사를 위해 장을 보러 나가는 내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완전히 깼다. 장을 봐오는 10분 여 동안 여름이는 애인을 향해 야옹 한 번 울고는 기지개를 펴고 화장실도 다녀왔더랬다. 여름이는 기운을 차렸는지 다시 숨숨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을 준비하는 우리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넥카라 때문인지 싱크대에는 올라오지 못했으나 우리가 알던 여름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여름이는 우리에 대한 애정을 숨길 줄 모르는 고양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 앞에 식빵을 굽고 앉아서 다시 꼬박 졸았다. 우리의 안도는 스킨십으로 발현됐다. 우리는 식사를 하다가도 여름이를 한참이나 쓰다듬고 계속 코뽀뽀를 했다. 여름이도 싫지 않았는지 골골댔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여름이는 완연히 제 모습을 찾았다. 방 안을 계속 돌아다니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마타타비 가루 넣은 고등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중성화를 하자마자 관심이 생긴건지 알 수 없었다.

여름이는 그루밍을 참 많이도 하고 싶어했다. 평소처럼 몸을 구부리지만 핥을 수 없어 넥카라만 연신 핥아댔다. 마음이 아팠다. 사람에게도 긴 열흘을 고양이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대신 몸을 긁어주고 입을 맞춰주고 안아주는 일 뿐이었다.

기운을 차린 고양이는 우리가 잠자리에 들자 더 과감하게 애정을 표했다. 평소에는 내 발치에서 자던 여름이는 가랑이 아주 깊숙한 곳까지 자리잡았다. 내 다리를 베고는 하품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느껴졌다.

아주 깊은 새벽, 여름이는 평소와 같이 우리 배를 사뿐사뿐 밟으며 우리에게 다가와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았다. 다만, 여름이 입 대신 넥카라가 머리카락을 긁었으므로 꽤나 괴로웠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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