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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 마이 론리 Dec 23. 2018

작은 고양이, 여름이가 우다다를 시작하면

아무리 놀아줘도 네게 모자랄 때가 있다

여름이는 세상에 태어난지 6개월이 조금 넘은 '캣초딩'이다.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후 여러 자료를 찾아가면서 공부할 때 가장 의문이 드는 단어는 바로 이 '캣초딩'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미 한참 전에 초딩 딱지를 뗐다. 내 모습이 어땠는지 좀처럼 기억나지 않아, 작은 고양이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여름이는 우리 집에 발을 들인 후 사흘만에 우다다를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나의 '초딩' 시절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코를 흘리며 무작정 달리던 시절이었다. 횡단보도 파란 불이 꺼지기까지 한참 남았음에도, 그저  무작정 달려 통과한 후 배시시 웃곤 했다.

여름이도 그랬다. 고양이가 우다다를 하는 이유는 그날 미처 해소해주지 못한 사냥 본능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여름이는 달리며 그 어떤 것도 사냥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 만의 맹목적 달리기였다.

잠에서 깨어난 여름이는 내가 쓰다듬어줄 때 내 손에 머리를 부비며 사랑한다고 표현하지만, 불과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다다를 할 때면 완벽히 다른 생물이 된다. 참 이상하다. 나를 갑자기 무서워하기 시작하며 귀를 쫑끗 세우고, 꼬리를 부풀린다면 그것은 신호다. '나는 지금부터 달릴거다'라는 신호. 마치 "씨바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셈"이라고 말하는 듯이.

아빠 나랑 놀아줘


정말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여름이의 달리기에 혼이 빠졌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여름이는 거울을 밟고 뛰어오르고, 내 다리에 달려들고, 침대에서 굴렀다. 나는 그 속도에 혀를 내두르며 인간의 신체능력은 얼마나 하찮은가 생각했다.

이전에는 중국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호랑이들이 드론을 잡으려고 눈밭을 달리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드론은 하늘을 날 줄 아는데도 결국 호랑이 서너 마리에게 붙잡혀 무참히 박살났다. 크기만 달랐지 하는 행동은 호랑이나 고양이나 다를 바 없던 것이다. 결국 본능이다.

나는 지치고 힘들 때 혹은 지독하게 슬픈 날에도 여름이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여름이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함께 슬퍼할까봐 그렇다. 언젠가 애인이 집 안에서 서글프게 운 적이 있다. 여느 때처럼 집을 거닐던 여름이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애인 팔에 솜방망이를 올리며 '야옹'하고 울었다. 나는 그때부터 여름이가 슬픔을 인지한다고 믿고 있다.

여름이는 본능을 숨길 줄 모른다. 밥을 많이 먹고 싶은 날이 있고, 더 놀고 싶은 날이 있음에도 하루의 루틴대로 맞추는 나와 달리 여름이는 그저 그대로 행동한다. 우다다를 시작하는 여름이에게 나는 그저 조금은 본능대로 행동하던, '초딩'이었던 내 모습을 투영한다. 그 솔직함이 나는 좋다. 그리고 부럽다.

본능은 여름이의 특성과 같은 말이다. 아무리 놀아줘도 여름이 성에 차지 않는 날이 있다. 영역동물이자, 사냥을 본능적으로 즐기는 육식동물. 그게 여름이리라. 그래서 여름이는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당장 좁은 자기 영역 안에서도 발바닥 젤리가 뜨거워지게 뛸 것이다. 이제 그저 네 달리기를 받아들이고 바라볼 줄 알게 된 나는 네가 건강한 것 같아 기쁘다.

안 놀아줘? 이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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