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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ang magazine Feb 08. 2019

[김찬영] 다름을 인지하는 감각


다름을 인지하는 감각

'친구사이' 대표, 김찬영 인터뷰



찬영씨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늦가을의 새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한 눈매와 조곤조곤한 목소리. 그러나 왠지 모를 강단과 힘이 눈빛에서 느껴졌다고나 할까. 대표라는 직책에서 묻어나오는 책임감이었을까.김찬영 대표님, 그는 어떤 사람일까 라는 궁금함에 첫 인터뷰였음에도 불구하고 속사포처럼 질문을 내뱉었다. 


▶ NGO “친구 사이” 대표 김찬영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홍은동에 살고 있는 33살 김찬영입니다. 

원래는 섬유공예(텍스타일 디자인)를 전공했어요. 대학 졸업 이후 진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국비교육으로 편집디자인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출판사에서 입사를 했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편집하는 업무를 배우기 바랐는데, 생각과는 달리 영업에 더 치중되어 있어서 그 당시에 회의감도 들었어요. 출판사에서 일한지 일년 반쯤 지난 2012년 겨울에 ‘친구사이’라는 NGO단체로 이직을 했구요. 일한 지는 6년이 되었으며 현재는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 대표는 어떻게 선출되나요?

대표는 1년에 한 번 총회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됩니다.

선거후보등록기간에 출마를 신청하고 공약을 내세우죠.


▶ 그럼 “친구사이” 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대부분이 회원들 기부금이나 정기회비로 운영되고 있죠. 

비영리단체이며 특히나 성소수자를 위한 인권단체라는 점에서 정부지원이 더욱 없죠.


▶일은 어때요? 

저녁에 회의가 많아서 힘들긴 하죠. 그래도 보람있는 것 같아요.


▶ 게이 인권 단체 대표라는 직책에 따르는 어려움은 물론, 한국사회가 과거보다 꽤 많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도 많잖아요. 대표님이 ‘친구사이’ 라는 NGO 단체 입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나의 인간적인 가치를 존중해줄 수 있는 공간 이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 것 같아요. 

출판사가 첫 직장이었는데 너무 남성중심주의라서 수직적 문화였어요. 

큰 출판사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시청 관계자, 홍보과 사람들과 술을 먹어야 하는 영업업무도 같이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출판디자인 배우는 것이었는데. 점심메뉴 고민하는 것이 제 일상이 되어버렸죠. 

반면에 현재 일하고 있는 NGO단체에서는 제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반영될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에요. 당사자로서 ‘나’ 라는 정체성을 살릴 수 있고,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주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고 나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대표님이 생각할 때 “아, 솔직히 나 이거 하난 남들보다 잘해!” 하는 게 있어요?

근무 특성상 LGBT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럴 때면 경청하는 척해요.(웃음) 

오케이하고 잊어버리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그래서 같은 상황 두 번 마주할 때가 가장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요.

포기도 빠르고 결단도 빠르고,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빨리 진행해버리는 타입이에요.

원하는 게 있거나 해야 하는 것이 있을 때는 가차 없이 진행해버리는 것이요.



내가 원래 어떤 걸 원했는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건지

최근에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대표님이 계신 단체에서 필요로 하는 리더의 자질이 아닐까요. 둥글둥글하게 문제를 아울러 감싸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진행할 수 있는 결단력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는 물론 좋은 점도 많지만,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대표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시기가 있었어요? 

최근에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하면서 고민인 게, 저는 삶의 감정이나 생활 변화가 적어요. 안정적인 걸 추구하다 보니 삶의 고조가 없죠. 진보적 성향의 NGO를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한 직장을 6년 동안 다니다 보니까 올 초에 슬럼프가 왔어요. 

내가 원래 어떤 걸 원했는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맞는건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혼자 힘으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는 느낌이요.

내 스스로가 못나보이는 순간들이 찾아오는데, 일을 하고 있고 제가 대표직을 맡고 있는데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 부분이 힘들었어요.

일을 쉬고 2주정도 휴가를 내서 혼자 제주도 다녀오면서 리프레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 어떤 걸 해보면 좋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내가 못하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빨리 빨리 포기하고 버려야겠다는 결심이 들더라구요. 고민이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 안에서 어떻게 만들까. 더 일을 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라는 고민들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일의 의미를 되찾았고, 또 다시 재미를 찾게 되었어요. 


▶ 왕관을 쓴 자, 무게를 견디라 는 말도 있잖아요. 단체를 운영하면서 대표로서 힘들거나, 고민 되던 순간도 꽤 있지만 어느 단체의 대표라는 게 책임감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꽤 클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직장 안에서 한번도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루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직장 내규라던지, 특정한 사업이 되었든, 활동이 되었든 온전히 내가 주도해서 끌고 나간 경험이 없는 것 같아요. 회원들을 서포트해주고 위기의 순간을 봉합해주고 뭉쳐주는 것에 있어서는 최적화 되었는데, 제가 주도적으로 리드하는 것은 잘 못해요. 그래서 지난 6년을 돌아보면서 어떤 것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는지, 제주도에서 2박 3일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내가 직장으로 돌아가서 내가 주도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 단체 안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봤죠. 

그러다 활동가들을 위한 워라밸에 대해 논의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대체 휴무를 만들어서 지키자는 안건을 상정하게 되었죠. 

내년도에는 주체적으로 제 이름으로 사업을 실천해 나가고 싶어요.

내 것, 내 일을 구성하고 대안을 찾아 나갈 구상을 하는 거죠.




또 다른 나가 있다면, 수선집 하면서 소소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한국 사회에서 정해진 단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 대표님이 생각하는 내년도는 어떤 일들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싶어요? 

가까운 미래에는 이사를 하고 싶어요. 첫 동거를 시작하면서 구한 집에서의 시간이 벌써 3년이 흘렀는데, 좀더 분리되어 있는 공간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흰둥이 산책시키다가 부동산 매물도 가끔씩 봐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데 내년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시에서도 자연과 가까운 곳이면 제일 좋겠죠.


▶ 또 다른 내가 존재하거나,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어떤 일들을 하고 싶은지 상상해본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또다른 내가 있다면 주체적으로 사는 삶을 살고 싶어요. 수선집 하면서 소소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고요. 루틴은 있지만 장사하고 싶지 않을 때 닫을 수 있는 그런 수선집, 사무실 근처에 복사 제본해주는 가게의 사장님처럼요. 

큰 돈 벌지 않아도 되니까 작은 공간에서 제 일하면서, 또 수선집이 현금박치기가 되잖아요?(웃음) 

서울이 아닌 외곽에서 살지만 어느 정도 문명의 이기는 공존하는 곳에서 삶을 꾸리고 있는 것이 제가 희망하는 나의 모습이에요. 수선집이 아니라 다른 형태일지라도요.

언젠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평생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불혹 이후에는 내 돈으로 내 공간 마련해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의 키를 쥐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거죠.

지금 그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 게이 인권 단체 ‘친구사이’를 이끌어가며 김찬영 대표님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은 그의 인생을 보람차고 행복하게 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책임감이란 애증과 같은 것일까. 사랑하지만 가끔은 아프게도 하는 것,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더욱 주체적이게 살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변하고 싶다는 내적욕망과 현재 단체를 이끌어 가는 수장으로서 그럴 수 없는 외적인 영향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회생활 속에서 관계 맺고 있는 다양한 것들로부터 파생되는 스트레스도 있죠. 

비영리 단체에 종사하는 직군들이 한국사회에서 커리어로써 인정받거나 직업으로 인정받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도 만족스럽진 않죠. 

직장 내나 공동체 안에서 얻는 성취감은 있지만 외적으로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룰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요. 대부분 30대 사람들을 보면, 때 되면 취직, 취직 이후 결혼, 결혼 후 애 언제 낳냐 라는 일반적인 질문의 범위 밖의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고, 이러한 답변들을 내놓을 수도 있지 않았나해요. 그럴 때 보면, 친구들과 접점을 찾을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삶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야기에 그치고, 친구들과 현재에는 공통점을 찾기 힘든 현실이 안타까워요. 한국 사회에서 정해진 단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하기도 하죠.

의식적으로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나서 다름을 인지하는 감각을 놓쳐버리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해진 것만이 답이 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고, 행복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그의 삶에서 찬영 & 규환 의 세상은 하나의 안식처이자, 공감하며 서로에게 힘을 얻는 공간이지 않을까.



찬영 & 규환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말랑이 담아낸 김찬영의 색

‘늦가을의 새벽’ , 왠지 모를 강단과 힘

Artwork by Vivi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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