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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r 11. 2024

수퍼히어로 판타지

<가여운 것들>(2023)



<가여운 것들(Poor Things)>(2023, 요르고스 란티모스)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온갖 감각과 조우하는 벨라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 솔직하고 적나라한 제스처, 그에게 한주먹거리도 안 되면서 통제하려 애쓰는 던컨의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인 언행, 그 사이 오가는 몸짓과 대사의 핑퐁에 있는 경쾌한 호흡, 그 전부를 둘러싼 채 닫혀 있는 하늘 안 파스텔톤 구름- 보기에 얼마나 즐거운가. 이야말로 매니악한 아이캔디다.


벨라 백스터는  이다지도 완벽한가. 이름부터 아름답고, 정신이 번쩍 들게 솔직하다. 욕망에 충실하게 움직이는 와중 자신을 구속하는 것들을 별로 사뿐하지 않게 즈려밟는다. 손목을 잡히면 뺨을 때린다. ‘여성은 감정적이고 히스테릭하며 타고난 모성이 있다 매도에 대한 반증인 마냥 연인(보다는 섹스 파트너) 눈물 앞에서 눈알을 굴리고, 본인에게 ‘모성이 결여돼 있다 말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급속도로 지식을 터득하더니 더욱 이성적이며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다. 가슴 따뜻한 영웅이라면 으레 그렇듯, 가난한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돈을 잃고 거리에 내던져지는가 싶더니, 금방 ‘적성 맞는 일을 찾아 ‘북스마트 이어 ‘스트릿스마트마저 획득한다. 흑백 필터가 걷힌 백스터 저택으로 돌아온 ‘프로디걸 도터 죽어가는 ‘god’에게 출생의 비밀을 듣는다. 약혼자의 품성을 테스트한  “실질적인 사랑 담아 청혼을 돌려준다. 최후의 안타고니스트인 남편을 만나 위기에 처하지, 이내 놀라운 순발력으로 빌런을 처단한다. 그리고 (‘아버지 유산을 물려받아…)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파리에서 만난 투아넷과 나란히 누워 폴리가미 패밀리를 이룩한다. 완벽한 주인공 벨라 백스터에 어울리는, 완벽한 히어로 탄생 기승전결이다.  



벨라는 뚜렷한 가치관을 전면에 내세우던 인물들이 스스로 그것을 배반하도록 만드는 존재다. 자칭 카사노바인 던컨은 그에게 집착하고, 냉소주의자 해리는 그에게 마음을 쓰고, 해부학 연구를 최우선에 두던 갓윈 백스터는 ‘실험 조건 통제’를 포기하고 이어 부성애를 인정한다. 사회주의자 투아넷은 백스터의 대저택에 자발적으로 머무른다. 그의 ‘비정상가족’은 대개 시대의 아웃사이더 혹은 이단들이다. 역시 연구자였던 부친에게 어려서부터 학대당했고 ‘악마의 얼굴’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갓윈, 하우스키퍼보다는 해결사에 가까워 보이는 프림 부인, 가난해서 따돌림 당했던 (‘남자다움’ 따위 없어 바람직한) 맥스, 성판매 일을 하는 퀴어 여성 투아넷, 아직 뭐가 될지 모르는 페실리티까지.


그 시작에는 오르가즘이 있었다. 벨라의 뇌는 걸음마를 떼고 기본적인 언어를 배우자마자 섹스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는 섹스를 “furious jumping jack분노의 뜀박질”이라고 일컫는다. 현재의 뇌에 이전 삶의 기록이 없다 해도, 그가 빅토리아였던 시절의 사연이 암시되면- “furious”라는 단어는 더욱 적절하게 다가온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 도구로 보며 그 쾌락은 부정하는 사회, 자살했다가 (제 의지가 아니었지만) 뱃속 아이의 뇌를 취하며 부활한 벨라는 존재 자체로 이단이다. 그뿐인가, 기꺼이 “whore”로 비유되며 당당하게 섹스를 행하고 말하더니, 후에 실제로 성판매를 ‘경험’하기도 한다. 벨라의 자유가 클리토리스와 함께 열렸던 데에는 다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벨라는 성판매를 일종의 배움 수단으로 받아들이며 별 어려움 없이 지속하고, 영화는 그의 성을 사러 오는 남성들의 모습을 다채로운 코미디로 연출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성판매자와 관리자, 성구매자 사이에 있는 권력 관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벨라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당연히, 자유로운 섹스가 아니라 구매자 남성이 원하는 ‘퍼포먼스’다. 대개는 다정한 말투를 쓰고, 방으로 다과를 가져다 주기도 하는 ‘마담’, 스위니: 그의 논리를 단순히 ‘구슬리기’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스위니는 벨라의 신체를 물어뜯기를 반복하며, 운영 시스템에 대한 벨라의 ‘혁명적 제안’에 동조하는 투아넷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지시하는 자다. <더 페이버릿>에서 에비게일이 남성들로부터 겪은 폭력을 지나가듯 암시하던 순간이 겹치기도 한다. 다크 코미디에 일치하는 리듬으로 짚고 넘어가되 굳이 파고들지는 않기. 일단은, 영리하게 다루었다…고 해 두자. (나는 여기서 그렉 아라키의 <미스리테어스 스킨>을 비롯한 작품들이 ‘완전히 주체적인 성판매’라는 환상을 깨던 방식을 떠올리지만, 워낙 다른 영화들이니 말을 더 얹지 않겠다. 벨라의 성판매를 차라리 ‘객체됨의 학습’이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영화가 그를 ‘온전한 주체’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 해석도 갖다 버렸다.)



벨라 백스터는 엉망으로 살아 숨쉬던 <더 페이버릿>의 여자들과는 성격이 다른 캐릭터다. 관습적 사회화를 건너뛰고 제식대로 세상을 터득한 주체적인 여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생생한 표정을 짓는 그에겐 별로 인간미가 없다. 그리고 그 비현실성이 아마도 그의 매력이고 역할이다. ‘남성 작가가 쓰고 남성 감독이 연출한 입체적 여성 캐릭터’라기보단- 그들 자신을 포함한 가부장들과 가부장제에 대한 조롱을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형태로 빚어 일종의 초능력을 부여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불경한 구세주, 구세계의 몰락을 앞당기기 위해 강림한 수퍼히어로, 벨라에겐 대충 그런 호칭이 어울린다.


“poor things”: 벨라는 공감하기보다는 연민하고, 그 대상은 자신에서 인류로 확대된다. 이상주의에 입각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법을 깨우친 그는 상처받지 않는다. 걸음걸음이 쉽다. 무언가가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논리와 근거, 때로는 민첩한 감각이나 완력으로 눌러 버린다. 창작자들은 모호하고 환상적인 비주얼을 입혀 이 현실 기반 SF의 허구성을 강조한다. 서사는 벨라의 완전체적 성장을 향해 나아간다. 이전 몇 작품에서 란티모스의 인물들은 결국 세계의 법칙에 묶이곤 했다. <가여운 것들>의 배경으로 설정된 시대는 자본주의, 신분제, 그리고 가부장제로 굴러가나, 작품 자체의 법칙은 편리하게도 벨라 백스터 자신이다.


가부장제나 가부장, 가끔은 모노가미 신화를 저세상 온도로 풍자하는 데 힘써(?) 왔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가여운 것들>은 그 작업의 컬러풀한 연장선, 비범한 주인공을 최대한 활용해 하나의 판타지를 완결한 후 문을 꽉 닫아거는 영화로 보인다.




+

‘<더 페이버릿>에 이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엠마 스톤의 협업’으로 기대했는데, 보고 나니 ‘<크루엘라> 이후 토니 맥나마라와 엠마 스톤의 재회’로 와닿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더 페이버릿>과 비교했을 때 특히 후반부가 살짝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 까닭은 본문에 적었다.


++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바이섹슈얼리티를 꾸준히 가시화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 랍스터> 오프닝 콜린 파렐의 대사, <더 페이버릿> 속 레이첼 바이즈의 캐릭터, 이제 엠마 스톤의 벨라 백스터까지.


+++

본문은 해리의 시니컬한 말투로 읽어주길 바란다. 농담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엠마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했음 난 그걸로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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