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보다는 글조각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나미비아의 사막(ナミビアの砂漠)>(2024, 야마나카 요코)
카메라는 도시 속에서 카나를 찾아낸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며 목에 로션을 바른다. 약속 시간에 늦었음에도 멈춰 서서 담배를 피운다. 카페에서 만난 친구 이치카는 동창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카나는 ‘종이 빨대’나, ‘문고리로 할 수 있구나’ 등 떠오르는 말을 바로 뱉는다. 오디오는 이치카의 말에 집중해야 할 테지만, 대신 그의 목소리 볼륨을 다른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남자들의 것과 동일하게 맞춰버린다. 두 대화는 어지럽게 섞이는데, 어느 순간 남자들의 목소리 볼륨이 올라가고 이치카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이때쯤 카메라는 아예 옆 테이블 남자들을 클로즈업해 주인공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의아한 연출은 카나의 상태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후에 짐작할 수 있다.
카나와 이치카는 호스트바에 간다. 카나는 이치카보다 먼저 나와서 연인(하야시)을 만난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카나를 다른 남자(혼다)가 맞이하고, 취한 카나를 익숙하게 돌본다. 그는 카나와 동거하는 또다른 연인이다. 혼다는 출장을 가기 전 카나가 먹을 음식을 해놓거나, 꼭 물을 제때 마시라며 당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나는 슬라이스 햄 포장을 뜯어 바로 입에 넣거나, 냉동실에서 연인이 해둔 함바그 대신 아이스크림을 꺼내 선 채로 먹는다. 단지 성격일까? 혼자 있을 때 카나는 어째서 자주 무감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까? 더 파고들 법도 하지만, 작품은 설명하지 않고 다만 관찰한다. 왁싱샵에서 일하는, 소파에 누워 있는, 길을 걷다 갑자기 텀블링을 하는 카나를. 거친 줌 인/아웃을 하고 카나의 걸음을 따라 흔들리는 등 존재감을 드러내며, 카메라는 딱히 목적성 없이 카나의 일과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카나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택배를 받으러 나가며 보던 영상이 떠 있는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 놓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는 카나를 따라가지 않고 핸드폰을 향해 천천히 줌 인 한다. 황무지에서 움직이는 동물들을 찍은 비디오 같은데, 각도가 비스듬해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가 꽤 가까이 다가갔을 때쯤, 관음 당하기를 거부하듯 카나의 손이 핸드폰을 낚아채 간다. 관객은 카나가 보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영화 초반 카페 시퀀스에 ‘별난’ 연출을 삽입하는 등 카나 일인칭 시점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던 작품은, 사실 카나의 표면을 집요하게 관찰하고만 있다.
카나는 혼다에게 거짓말을 하고 하야시를 만난다. 그러나 하야시는 카나가 두 남자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조심스러우나 단호하게 ‘(혼다와)헤어져 달라’고 부탁하고, 카나는 수긍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혼다는 ‘상사의 강요에 유흥업소를 갔지만 서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울먹이지만, 카나는 실소를 터트린다. 이후 상황을 생략하고 영화는 카나와 하야시가 카나의 짐을 챙겨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즐거워 보인다. 카나는 하야시의 가족 모임에 동행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카나는 밥을 먹자고 하고, 일하는 중으로 보이는 하야시는 기다려 달라고 한다. 가벼운 실랑이가 몇 차례 오간 후, 침대에 주저앉은 카나의 얼굴이 무너진다. 그는 하야시를 겨냥해 물건들을 집어던지고, 참던 하야시는 큰소리를 내고 사과한다. 하야시가 나가서 머리를 식히겠다고 하자 카나는 그를 밀치고 자신이 나가는데, 계단을 내려가다 굴러떨어진다. 카메라는 쓰러져 있는 카나에게 다가가지 않고, 위에서 그 실루엣을 관람한다.
하야시의 사과와 관심, 보살핌을 받는 카나는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 그러나 카나의 몸은 회복한다. 다시 출근한 카나는 직장 앞으로 찾아온 혼다와 마주친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관객은 카나가 아무말 없이 혼다의 집을 나갔다는 것, 그리고 혼다가 출장을 간 사이 임신 중절 수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나는 (마음이) 상처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 별안간 울음을 터트린다. 작품은 카나가 우는 모습을 길게 담지 않고 도중 끊어버린다. 카나가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일단 그 조우는 카나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은 듯 보인다.
또 다른 날, 카나는 하야시에게 ‘손님에게 나도 모르게 해선 안될 말들을 해서 해고당했다’고 말한다. 초음파 사진이 트리거가 된 듯 하야시를 언어적, 신체적으로 몰아붙이는데, 양쪽 모두에게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하야시에겐 어느 정도 카나를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이 점은 이후 전개에서 중요한 조건이 된다.) 카나의 행위를 ‘데이트 폭력’, ‘이상 가학 성향’ 등의 단어로만 설명하기 힘들다는 진단을 하기 전에 일단, 관객은 공포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카나가 하야시를 다치게 하거나 그들이 이별하는 전개를 예상하게 된다. 이 즈음 작품은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욕실에서 하야시를 발로 차다가 태연하게 빨래바구니를 들고 나온 카나는, 빨래를 널다 말고 스스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천천히 뒷걸음질해 베란다 문을 닫는다. 몸을 돌려 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우뚝 서 있는 하야시를 본다.
화면이 바뀌고, 카나는 온라인으로 상담을 받는 중이다. 조울증이나 경계성 인격 장애일 수 있다고 의사는 말한다. 다음번- 카나는 공격하고 하야시는 방어하며 몸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앞선 시퀀스처럼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고 상황을 롱숏으로 짧게 관람한다. 하야시 역시 당황해 맞서기보다는 물리적 제지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 이제 관객은 이유를 찾고 결과를 예측하며 두려워하기보다는 이를 하나의 패턴/증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니다.(그래서도 안 되고) 이때 처음으로 삽입되는 초현실은 아마 ‘카나 본인의 시선’이다. 한구석에 TV처럼 콜라주된 화면이 등장하더니 전체로 확장된다. 온통 쨍한 핑크빛으로 이루어진 공간, 카나는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중이다. 그 영상은 방금 작품 스크린으로 재생됐던 카나의 난장판이다. 무표정한 카나가 머신에서 내려와 이동하자, 이곳의 정체가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였음이 드러난다. 다음 장면에서 카나는 심리상담사를 찾아가고, 그 다음엔 숲에서 이웃 여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모닥불 곁을 뛰어 논다. 이 환영 속 장소 이동의 매개는 스튜디오의 계단이나 상담실의 나무 모형 등인데, 의식이 내면의 숲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은 두 화면이 부드럽게 겹치면서 연결된다. 카나가 자신의 의식을 통제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이기도 한다. 카나는 멍한 채로 바닥에 누워 있다. 하야시가 숨을 고르며 뱉는 말은, 배고프지 않으냐는 단순한 물음이다.
그들은 혼다가 오래 전 만들었던 냉동 함바그를 먹는다. 카나는 여전히 멍한데, 걸려온 영상 통화를 받고 친척들에게 “니하오”, “틴부동”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야시는 아직 긴장돼 보이지만, ‘틴부동’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모르겠어’라는 뜻이라고 카나는 답한다. 하야시는 웃고, 카나는 마주 웃는다. 웃음이 잦아든 카나의 얼굴에 떠오른 정서가 무엇인지 읽기는 쉽지 않다. 작품은 아마 카나가 늘상 보던 그것일 ‘나미비아의 사막’ 비디오를 스크린 전체를 통해 보여주고는 끝난다. 카나의 결말, 그들의 결말은 어떠해야 한다-는 예상을 깬 그곳엔 놀랍게도 일상이 있다. 영화가 제시하려는 바는 안전한 희망보다는 일종의 가능한 사례인 듯하다. 카나와 하야시가 카나의 증상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더 바람직했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처음부터 <나비미아의 사막>이 관객과 만나는 방식은 정방향의 설득과는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