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퀴어>(2024) 장면과 결말 포함
바로 그 장면
<퀴어>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바로 그 음악!’ 씬은 ‘Come As You Are’ 보단 ‘Leave Me Alone’ 이었다.(그래서 글 쓸 때 뉴오더 조이디비젼 쭉 들었다) 첫인상 메모에 쓴, ‘다니엘 크레이그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했다’는 감상은 그 씬에서 비롯됐다. 적었지만 또 적어보자. 정적 속에서 리가 뭐랄까 마치 우울한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듯 일련의 단계를 거쳐 약을 주입하면, 특유의 공허한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화면이 좀처럼 컷되지 않는 와중 카메라가 리에게로 서서히 줌 인 하는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그의 얼굴은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방의 전경으로 마무리. 공간 배치, 촬영, 연기, 음악 죄다 착 가라앉은 엉망의 상태로(?) 완벽했다… 굳은 진흙으로 범벅돼선 닥터 코터의 시선을 무방비하게 받아내던 순간이 <퀴어> 속 드류 스타키 원픽이라면, 이 아무것도 없는 순간이야말로 다니엘 크레이그 원픽. 이 영화 관람 전과 후 다니엘 크레이그를 같은 시선으로 보는 건 불가능하다.
관계에 대한 단상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내가 완전히 파악했다고 여기는’ 상대방을 상대방이라고 할 수 있나. 사실 ‘나’ 역시 때로 낯선 존재, 스스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행위는 다른 물질에 반사된 불완전한 상을 응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일대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는 (너에게 나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엮이는 낯선 나’를 감각하게 된다. 관계를 맺기 위해선 ‘나는 너를 잘 모른다’는 점을 감내해야 하고, 정체성을 탐구하려면 ‘내가 나를 잘 모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퀴어>의 유진이 구아다니노의 세계에서 유독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여기 닿아 있다고 본다. 필요했던 판타지를 충족해 주거나, 이별 후 기억으로 흡수되거나, 물리적으로 하나되지 않는 자. 물론 ‘일종의’ 판타지에 해당될지도 모르겠지만… 유진은 제멋대로 생긴 인간이며 화자와 관객에게 클로져조차 맺어주지 않고 증발해버리는 녀석이다. 엔딩은 리에게로 수렴하더래도 <퀴어>는 여전히 두 사람의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질풍노도?의 디나이얼 시기 좀 공감돼서 유진한테 더 마음이 쓰이는 걸지도…)
아무도 모를 일
1985년 책 발간과 함께 덧붙인 프롤로그에서 윌리엄 버로스는 아내 조앤을 사고로 죽게 만든 일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네이키드 런치>(1991)는 리의 글쓰기를 ‘환각 속에서 조앤을 다시 쏘는’ 행위로 시각화한다. <퀴어>에서 이 빌헬름 텔 게임은 먼저 리가 만취한 상태로 유진을 찾아 들어간 클럽에서 메리와 주변 사람들이 하는 장난으로 레퍼런스 된다. 그리고 리의 폐쇄된 환상 공간에서는 리가 유진을 쏘는 상황으로 변주된다. “2년 후”, 리는 유진이 가지고 다니던 것과 유사한 카메라를 지니고 있다. 조가 유진과 만났냐고 묻자 답을 않는다. 비슷한 소릴 여러 차례 했으나 재차 강조하면, 구아다니노의 리는 버로스가 반복해 불러오는 작가의 분신 윌리엄 리와 꼭 같을 필요는 없는 인물이다. 허니 여러 크레이지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리는 정말로 유진을 실수로 죽인 후 피스톨을 버리고 제 사진이 담긴 그의 카메라를 취한 것일까.(역시 이건 아니겠지) 아니면 유진이 카메라를 이별 선물로 건넨 것일까. 리가 유진을 추억하며 구입한 것일까. (여기서도 ‘쏘는 행위’가 ‘쓰는 행위’와 포개지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들 사이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유진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알아낼 수도 없고 영화가 전하려는 바도 아니리라 짐작하며, <퀴어>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완결이 불가능한 영화임을 새삼 깨닫는다.
윌리엄 버로스를 좋아해보자
윌리엄 버로스는 내게 있어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작가였다. 헌데 최근 영화 <퀴어>와 <네이키드 런치>를 연이어 보고 어쩐지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키>는 아직 내게 힘든 책이다. 건조한 일기장 버전의 <레퀴엠>(아로노프스키) 느낌... 뭐, 본인이 기록 목적이라 한 책이니. 무튼 버로스는 참으로 고유하다. 두 영화를 보면 물론 감독들의 인장이 두드러지지만, 원작의 아우라가 너무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네이키드 런치는 책을 아직 못 읽었음에도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들이 바탕을 둔 책 외에 다른 책 속 에피소드를 레퍼런스한다는 점도 좋다. <퀴어>에는 <정키> 속 원나잇 씬이 재해석과 함께 등장하고, <네이키드 런치>에는 <퀴어> 속 리의 ‘보보’ 이야기가 등장한다.(버로스가 같은 내용을 두 책에 다 썼을 가능성도 있어서 확인은 필요하다.) 하긴, 이런 식으로 교차하지 않는 게 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버로스가 쓴 동일한 스토리텔링을 커리스케츠&구아다니노와 크로넨버그가 어떻게 달리 사용하는지 관찰해보면 무지 재밌다. 몹시 궁금해서 네이키드 런치 원서 주문했는데 7월 말까지 언제 기다리지…
https://youtu.be/2zpYieracgw?si=4uJ-hn4iHRr4H6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