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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처럼 휘갈긴 것들

2월 메모: 애니멀 킹덤, 아이다호, 콘클라베 등

by 않인


* 언급하는 영화 스포일러 있을 수도



All of Us Strangers와 Huey Newton, Hannah Hunt의 연관성(?)


St. Vincent의 ‘Los Ageless’와 ‘Huey Newton’을 연달아 들어 보자. 두 곡 모두 후반부에 거칠게 찢어지는 기타를 중심으로 강렬하게 고조되는 그룹사운드가 휘몰아친다. 그러나 두 명곡이 배치한 클라이맥스의 맥락과 그에 따른 짜릿함의 색은 당연히 다르다. Los Ageless는 오프닝부터 치고 들어온다. 선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묘하기도-한 기타 리프가 중심 멜로디를 이끌고 관능적으로 눌러 뱉는 보컬이 얹힌다. 유사한 바이브와 정서가 쌓이고 쌓여 그럴 법한 부분에서 변주와 함께 절정을 찍으며 리스너의 흥분과 몰입을 터트리는 것이다. 반면 Huey Newton은 감추고 시작한다. 일렉트로닉 신스의 리드미컬한 리프에 팔세토 위주의 기이한 보컬이 곱게 뻗으며 서두르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 후반부에서 별안간 기타가 치고 들어오며 그룹사운드가 정말 ‘트위스트‘를 맞으며 터진다. Los Ageless처럼 일관되게 쌓인 뉘앙스의 최대 증폭은 아니나, 편안하게 늘어져 즐기고 있던 리스너의 허를 찌르는 것 또한 아니다. 어딘지 어긋난 멜로디와 끝이 둔탁한 리프, 요상한 가사를 뱉는 좀처럼 완결되지 않는 보컬링 등이 모여 유지했던 긴장감- 그것을 타고 흐른 맥락에서 곡이 반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뜬금없는 충격이 아닌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 흐름으로 영화를 설명해보면 어떨까? <All of Us Strangers>가 해리를 촬영하는 방식이 Huey Newton 식이었다. 사실 말하자면 ‘Hannah Hunt’ 식에 가깝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비유해보는… 일종의 놀이다.




UK 인디 밴드 둘의 4피스 EP


Pale Blue Eyes와 Terra Twin이 각 네 트랙으로 이루어진 EP 앨범을 하루 간격으로 공개했다. 각각 슬로다이브와 블러를 닮았다고 평가되기도 하나, 저마다의 고유성을 갖춘 밴드들이다. 싱글 셋을 차례로 미리 던져준 상태라 새 트랙은 하나씩 뿐이지만, 그 ‘하나’들인 ‘The Dreamer’와 ‘No Ghost!’가 상당히 재밌는 터라 기대는 4분할되었어도 만족감은 쿼터 이상이다. 페일 블루 아이즈의 신스 드림팝은 주로 빠른 리듬으로 진행되는데 이상하게 편안하고, 그렇게 마음을 놓고 듣다 보면 또 가시에 찔리기라도 한 듯 별안간 불안해진다. 그 이유는 다양하게 적어볼 수 있을 텐데, 되풀이해 재생할수록 더 흐릿하고 모호해진다. 테라 트윈의 브릿록 아메리카나는 이번에도 루이스 스피어의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귀를 사로잡지만, 듣기 좋게 규칙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못나게 찢어지거나 축축 늘어지는 파트를 끼워넣은 선택이 흥미롭다. 나는 테라 트윈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줄 때 ‘발매’라는 표현을 쓰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즐겨쓰는 표현은 아니나, 이 밴드는 이번 앨범을 포함해 지금까지 구매가능한 실물의 레코드를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https://youtu.be/DBcbRxD9Pok?si=0VKbKPSB2gtZHSXg

'Again and Again'




<씽씽>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두 작품에 관해


1. <애니멀 킹덤(Le Règne animal)>(2023, 토마스 카일리)

<애니멀 킹덤>은 꽉 막힌 도로에서 이송트럭을 탈출해 타인을 공격하는 “수인”을 먼저 보여준 후, 주인공 에밀의 관점을 따라가며 그 “수인”을 이름 “픽스”로 달리 인식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방법으로는 <씽씽>의 오프닝과 반대의 순서를 택하며, 관철하고자 하는 바는 (거칠게 묶으면)유사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수인”이라는 말이 모순임을 설득하는 것- 이 영화가 성공한 과제다. 인간도 동물이며 인간만이 사람person/people은 아니다. 완전한 답은 없음을 영화는 인지한다. 모호한 접촉면을 채우는 것은 “다른 방법을 쓸 걸 그랬어요”라는 대사, 감자칩을 입에 마구 우겨넣는 제스처, 채식하는 인간과 늑대/여우-인간의 입맞춤, 말없이 경이로운 숲속의 하룻밤 같은 것들이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애니멀 킹덤>은 소재와 조지 맥케이만 남기고 침몰한 <울프>가 실패한 은유까지 살려낸다.


2.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1991, 구스 반 산트)

<씽씽>에 관해 쓰던 중 리얼-픽션 간 바운더리에 대해 고민하며 이런저런 작품을 떠올렸는데, 그 중 <아이다호>도 있었다. 구스 반 산트는 실제 남성 성노동자들을 캐스팅했고, 그들이 카페에 둘러앉아 경험을 이야기하는 씬을 영화에 넣었다. 이를 묘사할 때 더 어울리는 표현은 ‘진정성’보다는 ‘날것’이리라. <아이다호>가 아름다운 까닭 중 하나는 그 모호함에 있다. 고르지 않게 분절된 에피소드들이 어쩌다 보니 이어져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각색했다는 반 산트의 인터뷰를 읽어도 한 줄기의 기승전결을 따르는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는다. ‘헨리 5세’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의 다소 뻣뻣한(놀랍게도 어느 정도 순기능을 한다) 연기와 반대편에 있는 카페 씬은 다큐멘터리의 침범처럼 다가온다. 리버 피닉스의 연기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참고: [HIGHSNOBIETY])


<아이다호>(1991)




<콘클라베>에서 출발해 옆길로 샌 메모


<콘클라베> 말이지,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과 영화 모두 너무나 재미있다. 일단 원작이 신성모독적으로 재밌고, 영화는 그걸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실하게 재현한다. 그 과정에서 삽입한 시적 연출과 (거의 유일하게)바꾸기로 선택한 장면이 탁월하다. 믿는 종교가 없는 나는 이런 작품을 접할 때마다 성경 공부만 조금 해볼까 하고 고민한다. 테데스코 같은 소리 하는 보수적인 교인들께서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영화(+책) 얘기는 둘 다 한 번 더 보고 따로 쓸 수도 있으니 여기선 풀지 않겠다. 허면 랄프 파인즈가 최고라는 이야기나 살짝 적어 보자. 그의 토마스 로렌스는 ‘내가 틀림없이 좋아하게 되는’ 종류의 캐릭터고 연기였다. 원작이 무지 상세하게 서술하는 로멜리(영화에선 로렌스)의 번뇌가 이 배우의 신체에 그대로 잠겨 있었다.


아카데미 자주 별로지만 후보가 올라오면 내맘속의 위너를 골라보게 되는데, 남우주연상은 요새 영화 하나 볼 때마다 바뀐다. <브루탈리스트> 보고 애드리언 브로디에게 새삼 감탄했고, <씽씽>을 통해 콜먼 도밍고를 제대로 보게 됐다. <콘클라베>까지 본 지금은 랄프 파인즈가 자꾸 눈에 밟힌다. 굳이 꼽자면 애드리언 브로디 겠지만, 다들 훌륭했다. 여우주연상은 아직까진 데미 무어여야 한다고 생각중이다. (본 것만 언급하면) <위키드>의 신시아 에리보, <아노라>의 마이키 메디슨 모두 특별했으나, 나를 압도하고 놀라게 한 것은 데미 무어였다. 물론 후보에 젠데이아가 없어서 이같이 확실한 답이 나오는 것이다. 무시당한 <챌린저스>와 <퀴어>.(구아다니노, 혹시 미움 받고 있나?) <시빌 워>와 <빛나는 TV를 보았다> 스넙은 또 어떻고.


<콘클라베>(2024)


+

유스 라군의 신보, 샤론 반 이튼과 그 밴드의 신보, 퍼퓸 지니어스의 새 뮤직비디오, 줄리안 베이커와 토레스의 컨트리 콜라보, 사사미 내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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