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페이버릿 트랙: 'Hope'
음악 모임에서 2024 페이버릿 곡을 공유하기로 했는데, 스스로 조금 놀랍게도 꽤 명확한 답이 나왔다. ‘앨범 통으로 듣기’ 파인데다가 ‘페이버릿 하나만 어떻게 골라’ 파이기도 해서, 누가 곡 하나 골라보세요 하면 늘 몸살을 했었는데, 올해는 특이 케이스. 멋진 곡이 많이 나온 해였지만 그래도 하나 택하자면 ‘Hope’인 거다.
https://youtu.be/keKluVOD_WE?si=q_lgHFo23NUfA8CB
올해 릴리즈 기준 페이버릿 탑 투는 역시 세인트 빈센트 <All Born Screaming>과 뱀파이어 위켄드 <Only God Was Above Us>다. 끙끙대며 리뷰 쓰느라 듣고 또 듣고 인터뷰도 찾아보며 더 풍부하게 듣게 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돌려 들었는데도 전혀 안 질렸으니. 앨범을 나란히 놓고 보면 <All Born Screaming>에 끌리지만은(+VW 세 맴버에 대한 사랑을 합쳐도 애니 클락에 대한 것 반도 안되지만은…), 제일로 마음이 가는 트랙은 ‘Hope’. 뱀파이어 위켄드 이전 작업들과 가장 덜 비슷한 분위기를 띤 곡이라고 느꼈다. 포크를 베이스로 쓴 적이 있었을 텐데 이런 식은 아니었다. 실험..도 아니고, 다음 작업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지만 일단은 ‘예외’. 얼핏 <Modern Vampires of the City> 속 ‘Hudson’의 위치와 유사한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가사도 멜로디도 단순한데 반복되는 리프가 매번 변주하며 후엔 섬세하게 터진다.(프로듀서 덕이라고) 무려 8분인데 끝나면 늘 아쉬운, 앨범을 정말 잘 마무리해주는 곡.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개인적 상태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더 집착적으로 듣게 된 듯하다.
‘hope’은 ‘희망’이라는 명사이면서 ‘무언가를 바란다’는 동사이기도 하다. 가사를 살피면, 되풀이되는 “I hope you let it go” 안에서 동사로 쓰인 게 대부분이다. 유일하게 명사로 쓰인 문장은 “A hope betrayed, a lesson learned”. “미군이 이겼어”(어떤 전쟁인지 명시되진 않지만, 화자는 축하하는 게 아니다. 아마 지목된 ‘적’을 군사-자본주의가 이겼음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사조는 타올랐지만 부활하지 못했어”, “비판할 이는 아무도 남지 않았어” 이런 문장들 다음에, “나는 네가 내려놓길 바라”라고 그리 서늘한 톤으로 노래하니… 제목을 보고 하게 되는 예상을 배반하는 허무주의적 뉘앙스의 곡인가 싶었다. 그래서 좋아했고. 허나 이래저래 반복해 듣고 에즈라 코에닉 인터뷰도 읽은 결과, 그보다 복합적인 정서를 띤 곡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의도된 위장(?) 같다. 절망의 언어들을 던져놓고, ‘당신이 희망이라고 여겼던 것은 당신을 배신했다’고 이야기하지만… ‘희망이 정말 그런 거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숨겨놓고 청자가 찾아내길 바라는 거지. (짜식…) 당장 뭔갈 달성하지 못해도 hope은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hopeless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있는 게 hope인 거다. 희망은 구체적인 목표보단 추상적인 감각에 가까운 개념이니까. -코에닉이 가르쳐줌- 그러므로 ‘Hope’은, 포기를 장려하는 곡이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에 빨리 다다라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라’고,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조용히 다독이는 곡이었다는 것이다. ‘Capricorn’의 “you don’t have to try”가 ‘너의 것이 아니었던 날들’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듯 ‘Hope’의 “I hope you let it go”도 세상을 버리라는 뜻이 아닌 거다.
앨범 리뷰 쓸 무렵 인터뷰 읽으면서 특권을 지닌 자의 예쁜 소리 같다는 삐딱한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으나, 지금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같이 해보자고 격려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격려 참 멀리서도 받네…) 에즈라 코에닉도 참 생각 많은 인간… 아무튼, ‘Hope’은 올해 내 멘탈 케어에 상당한 도움을 준 곡이다. 멘탈브레잌다운과 함께 분노가 터진다면 세인트 빈센트의 ‘Broken Man’을, 니힐리스트가 돼버리고 싶은 욕구가 든다면 뱀파이어 위켄드의 ‘Hope’을.
<Only God Was Above Us> 리뷰
https://brunch.co.kr/@yonnu2015/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