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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May 06. 2024

동시대를 타는 ‘서퍼’들

Vampire Weekend <Only God Was Above Us>


- Modern Surfers of the World

(마침표에 물음표로 답하기, 다른 것들을 잇기, 그리고…)

 

Vampire Weekend

<Only God Was Above Us>(2024)

+ 약간의 <Modern Vampires of the City>(2013)


* 인용 대부분은 번역이다. 오역의 가능성이 있어 원본 링크를 자주 배치.



요새 <Modern Vampires of the City>를 새삼 반복해 듣게 되는 것은, 앨범이 공개될 무렵 뱀파이어 위켄드 맴버들이 지나던 것과 비슷한 나이에 다다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나는 모두 밀레니얼이나, 그 사이엔 십 년 남짓의 갭이 있다. 2024년 서울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의 뉴욕을 담은 앨범을 들으며 느끼는 묘한 공감. 시공간, 성장 과정, 계층, 젠더, 인종, 이외 각종 사회문화적 배경… 의 차이를, 그때의 그들과 지금 내가 삶에 갖는 정서의 유사성이 압도하며, 언어로 설명키 힘든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만 같다. 이 탁하고 신비로운 앨범은 과연 ‘one of a kind’, 원래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던 헤이터들은 이 멀티-장르 록밴드의 ‘진실성’, ‘동시대성’을 의심할 까닭을 잃어버렸을 테다.(“the record that is already forcing one-time haters of this band to rethink their entire lives” - Ryan Dombal, 2013, [Pitchfork])


처음부터 뱀파이어 위켄드는 어느 정도, ‘one of a kind’였다. 허나 이들의 초기 작업을 돌아본다면, ‘헤이터’라는 단어를 무시하기 힘들다. ‘프레피한 옷차림을 한 콜롬비아 대학 졸업생들의 밴드’. 이들은 그 상징성을 풍자와 함께 곡에 써먹었다. 아직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hatreview’의 흔적이나 요약은, 그 모든 것을 아니꼬워하는 듯했다.(딱히 샅샅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인터뷰어의 글을 인용해 본다: “…밴드의 송라이터들인 코에닉과 배트맹글리즈가 respectively 워킹 클래스 유대인과 이란인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관점을 상류층적, 백인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밴드를 혹평한 한 무리의 음악 비평가들.” - Shaad D’Souza, 2024, [The Guardian]) 이들의 독특한 장르믹싱법도 ‘싫은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을까. 뱀파이어 위켄드는 인디 록과 레게/아프로팝을 만나게 했는데, 그저 섞은 것이 아니라 독특한 영역을 재창조했다. 보컬링과 기타 연주는 리듬을 배신하듯 곱고 깔끔하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다.


최근 뱀파이어 위켄드의 14년 전(& 꽤 ‘나이를 잘 먹은‘: 말그대로인 동시에 반어적인 표현이다, ’콘트라 커버 소송’을 고려한다면.) 롤링스톤즈 인터뷰를 읽다, 라미 유제프가 SNL 모놀로그에서 던진 조크 중 하나가 떠올랐다.


“뉴욕에서,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다 ‘남쪽’에 있다고들 생각해. 근데 나는 ‘남쪽’이란 걸 믿지 않아. 그런 건 없어. 그 ‘남쪽’은,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거기서 45분 거리에 있다고.”  

- Rami Youssef, 2024, [SNL]


“우리가 풍자와 반어법을 쓴다는 건 내게 매우 분명해.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그렇지, ‘Oxford Comma’라는 제목의 곡을 들었는데 그걸 만든 사람들이 콜롬비아 대학을 다녔다고 하면, 그냥 눈알을 굴리는 것밖에는 못하는 거야.” / “기본적으로, ‘콘트라’는 당신이 반대급부에 놓으려는 그 누구든 지칭할 수 있어 - 당신이 있는 세계의 일부가 아닌 것으로 놓는 거지. (……) ‘나는 자유주의자야, 저 사람은 아니고. 나는 진짜야, 저 인간은 sellout이고.’”  

- Ezra Koenig, 2010, [Rollingstone] 


이처럼 ‘거리를 둘 줄 아는’ 태도는 인터뷰에만 묻어나는 게 아니다. 이들은 한 발짝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고, 때로는 자조마저 엮어내는 스토리텔러다. 어쩌면, 어떤 ‘전쟁’이든, 최전선에서 비교적 먼 곳에 있다는 점이 이런 톤의 송라이팅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모던-뱀파이어스러운’ 시인들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신보에 대해 쓰기 위해 뱀파이어 위켄드의 이전 앨범들을 복습하고 관련 콘텐츠를 속성으로 둘러보다, 새삼 그 범위와 깊이에 감탄했다. 다 훑으리라 결심했다면, 거기서 헤엄치느라 리뷰 따위는 잊었을지도. 실험적으로 배치된 장르들을 한데로 모으는 (밴드는 탈퇴했지만 콜라보 아티스트로 참여하는)로스탐 배트맹글리즈의 음악적 역량이 그렇듯- 코에닉의 무심한 가사에는 풍부한 잡학적 바탕과 날카로운 통찰력, 유창한 표현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처럼 영어와 미국사, 음악의 시크릿 코드에 무지한 편인 자도, 저만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온전히 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음악에 대해 적다 보니, 클리셰적 찬사를 의도치 않게 타이핑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하나,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지 않는다’ : 구체적으로 정말이다. 장르적 한계도 없고, 이전 작업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면서도 답습하는 법이 없다. 둘,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 비유가 아니다. 이들의 앨범은 느슨한 연작 시리즈 같다. 뉴욕에 평행자아 같은 캐릭터들을 설정해 놓고 그들의 조우를 관찰하는 듯하다. (신보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뒤에서 다룬다.)


https://youtu.be/i-BznQE6B8U?si=_wih36Fwu2XvJ7ns

'Ya Hey' 리릭 비디오.


다시 <Modern Vampires of the City>로 돌아간다. 플레이풀한 리듬에 우울과 죽음을 드리운 이 명작은, 앞선 두 앨범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완결하며 자체로 독립적인 ‘다음 스텝’을 뗀다. 이전 작업과 엮어 ‘관조적’이라는 수식이 가능하더래도, 그 스펙트럼은 이제 무채색이다. 허무와 냉소, 불신의- 대체로 예쁘게 무관심하고 자주 아이러니하게 경쾌한 딜리버리. 그 어긋남이 작품을 세기의 명작으로 만드는 핵심 요인 중 하나였음은 적을 것도 없겠다. 그럼에도 남겨두는 절박한 낭만의 흔적은 가슴을 기습적으로 찢어놓는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회색빛은 다채롭고, 죽음은 시가 된다. 뱀파이어적 화자 혹은 앨범 자체가, 뉴욕에서 출발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도시들을 떠돌다 동시대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것만 같다. 그 거시적인 멜랑꼴리는 ‘Ya Hey’의 신나는 불신이 마무리된 후, 코에닉이 “Hudson died in a Hudson Bay”(‘Hudson’)라고 읊조림과 동시에 짙은 강물에 삼켜져 도시를 영원히 흐를 운명인 듯 했다.


“Condolences to gentle hearts who couldn’t bear to try / I don’t wanna live like this, but I don’t wanna die”  

- ‘Finger Back’


“Oh, sweet thing / Zion doesn’t love you / And Babylon don’t love you / But you love everything / Oh, you saint / America don’t love you / So l could never love you / In spite of everything”

- ‘Ya Hey’


글 도입부의 스토리텔링은 당시를 회상하던 코에닉의 인터뷰[GQ Korea]에서 비롯되었다. “이십대의 위기”였다던 그의 고백과는 별개로, 안개처럼 앨범을 둘러싼 정서는 낡지 않는다(시대를 타지 않으며, 또한 늘 동시대적이다). 이 마스터피스를 최근 더욱 듣게 되는 또다른 까닭은, 뱀파이어 위켄드의 신보 <Only God Was Above Us>가 <Modern Vampires~>에 대한 스스로의 답처럼 들려서다.(“knottier sequel”이라는 가디언즈지 D’Souza의 워딩에 덧붙여 본다면.) 제 유산을 웅장하고 풍부한, 또 깔끔하고 절제된, ‘게다가’ 어긋남까지 있는 형태로 조합하며 잇는 작품이다. <Modern Vampire~>는 사운드적으로 어느 정도 ‘이지 리스닝’이 가능했다. <Only God~>은 “미학적으로 어둡다”, “우리가 만든 가장 공격적인 레코드다.”[The Guardian]라는 코에닉의 말대로 ‘이지 리스닝’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슬쩍 벗어난다. 어쿠스틱, 바로크 팝, 테크노, 스카,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 약간의 힙합, 포크, 슈게이징의 가능성… 다양한 장르가 다양한 악기와 사운드 요소들을 통해 엮이고 반전되며 조화를 이룬다. 아름답고도 군데군데 ‘모난’ 모양으로.  


오프닝부터 “Fuck the world”로 끊는다. 어쿠스틱 기타로 상큼하게 시작하는 ‘Classical’, ‘카니발 뮤직/바이올린스러운’ 코에닉의 기타가 끼어든다. 간주의 재즈 색소폰 연주는 뒤죽박죽으로 흥겨워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이키델릭 거슈윈” - Ezra, [Radio X]) ‘Capricorn’의 잘 정리된 맥시멀리즘, 여러 번 듣는대도 다음 노트가 매번 새롭다. ‘Connect’의 나직한 보컬 뒤에는 쉴새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감지된다. 보컬마저 종종 새되거나 공허한 소리로 꺾여 버린다. ‘Prep-School Gangsters’의 엔딩, 밝은 바로크 팝의 향연에 이어지는 건 ‘The Surfer’의 그루비한 힙합 오프닝이다. 러닝타임의 반이 넘어갈 무렵에는 날카롭게 고조된 그룹사운드가 배치돼 있다. 이내 잦아들고 곡이 부드럽게 페이드아웃 되지만, 방심은 금물. ‘Gen-X Cops’의 차례다. 빠른 리듬은 마이너 키와 만나 경쾌와 공격성의 경계에서 고막을 때린다. 남은 것은 비교적 박자와 노트가 여유로운 곡들이나, 여전히 (좋은 뜻으로)귀가 불편하다. ‘Mary Boone’, 클라이맥스의 흥겨운 건반과 효과음에는 곡 내내 흐르던 합창이 겹치는데, 일단 성스럽고 고우나 듣기에 따라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Pravda’는 가장 릴렉스한 사운드를 지닌 트랙 중 하나인데, 제목부터 편안하기는 글렀다. 라스트 트랙 ‘Hope’의 러닝타임은 무려 8분이다.  


https://youtu.be/nP2FbpYs4t0?si=r46JI4J5ALzFdUaf

'Classical' 뮤직 비디오.


코에닉이 특유의 고운 보컬로 단어를 끊어가며 내뱉는다, “Untrue, unkind, and unnatural / How the cruel, with time, becomes classical”. 두 번째 트랙 ‘Classical’의 신나는 리듬에 담긴 디스토피아적 풍자는 <Modern Vampires~>의 ‘Finger Back’, ‘Worship You’, ‘Ya Hey’로 이어지는 플레이풀-시니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벽과 다리가 무너지고, 무언가 바뀌고 나면) 어떤 classical이 남을까?”라고 묻는 ‘Classical’의 화자는, 보다 초월적이고 관찰적이다. “남아있는 기둥 하나”, “가라앉는 기분”, “어두운 해돋이”, “너의 DNA에 있는, nothingness를 향하는 계단”: 인류의 미래를 비관하는 듯 들리는 표현들이다. 허나 ‘Classical’의 통찰은 단정이나 포기보다는 고민 끝에 붙잡은 질문과 단상들이다.


“승자의 역사에 관한 곡일 것이다. 무엇이 클래식인가, 무엇이 이해되고 합의된 현실과 가치로 받아들여지는가,는 늘 변화한다. (……) 미래에 가서, 다시 현재를 과거로 돌아본다면, 어떤 철학적, 정치적, 영적 아이디어들이 이겨서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내 타임라인에서 약간 백 투 더 퓨처를 한 거지.”  

- Ezra Koenig, [Radio X] 


인간사의 관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자세: 뱀파이어 위켄드의 가사가 ‘시대를 타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적인’ 까닭 중 하나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첫 트랙으로 되돌아가, 가사를 좀 더 들여다본다. ‘Ice Cream Piano’의 화자는 “Fuck the world”에 잇는다, “You said it quiet” 그것은 ‘너’의 말, ‘나’ 밖엔 듣지 못하는 조용한 비관이다. “너는 이 전쟁에서 이기고 싶지 않지 / 평화를 원치 않으니까” 다음 구절에서 청자는 ‘너’와 ‘나’가 실은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너의 입을 통하자마자 언어는 무기화되고”, “나는 나의 젠틀함을 보여주길 거부하는 젠틀맨”이다. ‘나’는 ‘너’와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냉소하기보단, 오히려 그 내면으로 들어가 연결되려 한다, “오래된 세계의 목을 들이마신 뱀파이어들”의 공통된 자녀들로서. ‘나’는, 후렴의 스토리텔링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송라이터 자신이다.


“I see the vampires walking / Don’t be gripped by fear, you aren’t next / We’re all the sons and daughters / Of vampires who drained the old world’s necks”

- ‘Ice Cream Piano’


https://youtu.be/GhzdY0ZAFcM?si=aJvN7KNrcJrE6YaI

'Ice Cream Piano' 비주얼라이저.


코에닉은 “대화 같은”, “시니시즘과 옵티미즘 따위가 오락가락하는” 트랙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오프닝 트랙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건, 레코드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잇는다.[Radio X] 서로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한데 존재가능한 것들. “앨범 후반부의 시작”인 ‘The Surfer’에 대해 “앨범 전반부엔 갈등과 불안이 있는데, 여기엔 전환점이 있다.”고 했던 코에닉을 인용한 뒤, ‘비관/어둠에서 점차 낙관/빛으로 향해 간다’고 종합할 수도 있겠으나, 그리 간단하지 않다. 코에닉은 ‘서퍼’의 “느긋한 하와이안적” 이미지를 뒤집는다. “물은, 무겁고 강력한 것이 될 수 있으면서, 부드럽고 아름답게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다.”[Radio X]  ‘물이 그렇듯 역사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하면 쉬울 터이나, 역류나 블루홀은 늘 있다. 비자발적 ‘서퍼’의 여정에는 예측불가한 폭포나 거친 파도가 수반되며, 선물 같은 잔잔한 물결 또한 있다. 뱀파이어 위켄드가 ‘The Surfer’와 <Only God Was Above Us>에 드리우고자 했던 것은 그 유동성과 복합성일 것이다.


예쁘장한 멜로디로 여유롭게 시작하더니, 드럼, 바이올린, 피아노 등의 악기들이 맥시멀하게 어우러진다. 정제된 토네이도가 귀를 휘감다 놓아주기를 되풀이한다. “우리가 시작했던 음악적 요소와 다른데, 여전히 ‘뱀파이어 위켄드 스럽기를’ 바랐던”, “(우리의 음악이)이 세상에 안착한sit comfortably게 아니라는 좋은 증명”[Radio X]이라는 ‘Capricorn’. “해의 끝 무렵에 태어난” ‘염소자리’가 아니라 해도, 청자는 음악적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 “카프리콘”이 되어 세기를 떠도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테다. 뮤직 비디오, 대부분의 러닝타임에는 뉴욕 곳곳을 촬영한 아카이벌 푸티지(by. Steven Siegel, Phil Buehler)가 흐르는데, 거의 초현실적인 효과가 얹혀 사운드와 일치하는 리듬으로 편집돼 있다.


https://youtu.be/8lCmyFCj580?si=gv578yg5zmWvkVNr

'Capricorn' 뮤직 비디오.


“I know you’re tired of trying / Listen clearly you don’t have to try / Capricorn / The year that you were born / Finished fast / And the next one wasn’t yours / Too old to dying young too young to live alone / Sifting through centuries / For moments on your own”  

- ‘Capricorn’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해/위로와 포기/허무주의로의 종용 사이에 걸쳐 있는 듯 들리기도 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코러스 엔트리는 마무리에 다다라 “Good days are coming / Not just to die / I know you’re tired of trying / Listen baby, you don’t have to try”로 변주되며 보다 희망적인 위치에 ‘어렴풋이’ 자리잡는다. 단호한 투에 담긴 메시지는 모호하고, 결국 그 정체를 드러냄에도 분명하게 뭔가를 건네주지는 않는다. 바로 그 유일한 방식으로, 카타르시스와 묘한 ‘힐링’을 선사하는 트랙이다.


‘Capricorn’에 ‘정제된 토네이도’가 있다면, ‘Connect’에는 ‘세심한 강약조절이 들어간 카오스’가 있다. 이 트랙에도 뉴욕이 어른거린다. “다른 음악적 요소들을 꿰메어, 일종의 여정처럼 느껴지기를 원했다”[Radio X]는 코에닉은 “뉴욕의 ‘사이키델릭한’ 부분과 그 반대인 부분을 연결짓는 작업”을 말한다.


<Only God Was Above Us> 커버. photo by. Steven Siegel


뉴욕을 잘 모르는 채 이 앨범에 대해 적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커버 아트부터 가사의 디테일, 비주얼라이저까지- <Only God Was Above Us>에는 뉴욕이 한가득 흐른다. 커버는 “1988년 스티븐 시걸이 지하철 무덤에서 찍은 한 무더기의 사진” 중 하나로, 편집하지 않은 그대로라고 한다. “거대한 ‘VAMPIRE WEEKEND’ 로고로 사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Radio X]고 코에닉은 말한다. 커버에는 로고도 제목도 얹히지 않았다. 뱀파이어 위켄드는 거기 이미 있는 문장, 사진 속 인물이 든 신문에 인쇄된 헤드라인 “Only God Was Above Us”로 타이틀을 정해버렸다. 어제를 오늘로 끌어오고 상상된 내일에서 오늘을 바라보는- 그 안에서 아티스트들은, 특정한 장소에 안착하기보단 ‘Capricorn’ 비디오의 첫 시퀀스처럼 ‘중력을 거슬러’ 움직이거나 허공에 머무른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것들을 ‘이으려’ 한다. 억지로 한 그릇에 섞기보단 차이를 인지하는 와중 다면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Prep-School Gangsters’가 계층들을 잇는다면(여기서 코에닉은 헤이터들이 착각하듯 특권층이 아닌 그 반대의 위치에 있다), ‘Gen-X Cops’는 세대들을 잇는다. 마이너 키를 ‘Hudson’과는 꽤나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 이 트랙의 경쾌함은 앞서 아울렀듯 공격적인데, 청자가 집중해 감상하며 메시지를 읽어주기를 바라는 듯도 하다.


“It wasn’t built for me / It’s your academy / But in my time, you taught me how to see / Each generation makes its own apology”  

- ‘Gen-X Cops’


https://youtu.be/LbACQmk_O94?si=p5-xyxUKavt6_ZgF

'Pravda' 비주얼라이저.


“They always ask me about the Pravda / It’s just the Russian world for truth / Your consciousness is not my problem / And I hope you know your brain’s not bulletproof”

- ‘Pravda’


뱀파이어 위켄드는 늘 역사와 시를 가까이 두었다. ‘Pravda’에서 역사는, 송라이터의 개인사와 이어짐으로써 시가 된다.(에즈라 코에닉의 할머니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모스크바에서 살았다고 한다.) ‘Mary Boone’과 ‘Pravda’는 ‘이름’을 실마리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Mary Boone’이 거기 덧씌워진 특정한 이미지를 곡의 출발점으로 활용한다면, ‘Pravda’는 활용하면서도 곡의 내러티브를 통해 그것을 상쇄시키려고 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곧 청자는 깨닫게 된다. ‘곡 자신’이 이미, “의미가 메타포 안에서 죽었”(‘Hope’)다는 걸 알고 있음을.  


“The bull has gored the matador / The U.S. Army won the war / The meaning died in metaphor / I hope you let it go / The phoenix burned but did not rise / Now half the body’s paralyzed / There’s no one left to criticize / I hope you let it go”  

- ‘Hope’


https://youtu.be/keKluVOD_WE?si=9l6UsiSXeKXliu9J

'Hope' 비주얼라이저.


‘Hope’은 이상하고 유일한, 가슴을 텅 비워버리는 곡이다. 앞선 트랙들을 아우르듯 루즈한 템포로 가라앉으며 열린다. 묵직한 드럼과 기타 리프에 차분하면서도 전투적인 피아노 연주가 얹히고, 그 멜로디들은 수렴한다. 코에닉은 ‘Hope’에 있는 섬세한 사운드 내러티브의 크레딧을 프로듀서 Ariel Rechtshaid에게 돌린다. “드럼 뱅잉과 노이지한 기타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포크 송”[Radio X]이라는 코에닉의 말대로 포크적이면서, 슈게이징이라는 워딩을 적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재질로- 웅장한 곡이다. 고요한 싱잉은 공허를 너그럽게 품은 자의 것으로 들린다. 4분쯤에 이르러 곡은 변주를, 이어 길게 늘어지는 첫 번째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1분 30초 동안 보컬은 물러나 있다. 그렇게 곡은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일으킨다.


“A hope betrayed, a lesson learned / I hope you let it go / I did the things you asked me to / I testified what wasn’t true / But now I lost my faith in you / I hope you let it go”

- ‘Hope’


실버라이닝을 짐작케 했던 워딩 ‘hope’이 스토리텔링의 맥락에서 자리잡는 방식을 보며, ‘hope’이 명사와 동사 모두로 쓰인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let it go”의 뉘앙스를 어떻게 옮겨야 할까, ‘내려놓기를’, ‘그만 놓아주기를’, ‘내버려두기를’, 그도 아니면 ‘놓아버리기를’? 하지만 ‘희망’이라는 제목의 이 8분짜리 곡은 허무주의의 향을 짙게 풍기면서도, 그 ‘내려놓음’ 특유의 초월성과 다시, ‘희망’의 가능성을 지닌다. 코에닉은 ‘hope’이 사실 낙관주의에 닿아 있음을 설명한다.


“숙명주의fatalism의 극단화가 낙관주의optimism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일부는 포기와 순응의 요소를 갖고 있다. 숙명론이 있다: 세상은 카오틱하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 낙관주의가 있다: 세상은 카오틱하다, 그러니 그 파도를 타야만 한다.”

“정치는 결과물에 집착하고, 그래서 우리는 일들이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향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에 둘러싸여 있다. ‘hope’은 바깥 세계에 대한 요구보단 개인적인 감각이다. (……) 무언가 구체적인 것을 바란다면, 자주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감각으로서의, 개념으로서의 hope은, 결과보다 거대한 것이다.”

- Ezra Koenig, [The Guardian]


언뜻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긍정할 것’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와 닮은 듯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코에닉이 “지금 이 순간 옳은 일로 느껴져서”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고 말하는- 인터뷰의 맥락에서 살피면 더욱 그렇다. ‘희망하기hoping’는 ‘기대하기expecting’와 다르다. ‘hope’의 형태화에 집착하기보단 그 개념/감각에 집중하기, 구체적인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 나가기. 그렇게 카오틱한 세상의 파도를 타보자-는 것이 에즈라 코에닉이 삶을 대하는 자세이며, 그 철학이 담긴 것이 이번 앨범이라고 해석해 본다. 여기서 코에닉의 대학 (이름이 아닌) 전공이 떠오른다. 영어학과 글쓰기를 공부한 그는 “의미가 비유 속에서 죽는”(‘Hope’) 일을 제 가사 안에서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신중하게 전달한 ‘hope’의 의미는, 그 풍부한 모호함으로 인해 정확해진다.



“전반부의 어둡고 불안한 정서”가 <Modern Vampires~>의 탁한 우울(그럼에도 여전히 실버라이닝을 드리운)에 가깝다는 첫인상은, <Only God Was Above Us>를 되풀이해 재생하고 송라이터의 코멘트를 찾아보는 동안 서서히 잊혔다. 죽음/끝의 암시보단, 물음/생각 다발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물음표들은 <Modern Vampires~>의 마침표들에 답한다.


<Modern Vampires~>와 유사하게, 1988년 뉴욕에서 출발한 이들은 과거와 동시대를 아우른다. 하나 더, 이번엔 현재 ‘그들 자신’을 여정에 ‘확실히’ 포함시킨다. 거기엔 시니시즘과 옵티미즙, 니힐리즘이 공존하고, 사이키델릭과 논-사이키델릭이 공존한다(‘Connect’). 밝은 멜로디를 냉소가 지배하고, bleak한 그룹사운드 속에 희미한 빛이 어른거린다. 특권층과 비특권층(‘Prep-School Gangsters’), 각기 다른 세대들(‘Gen-X Cops’)이 엮인다. “브루클린 말고 (뉴)저지에서 온” 무명 아티스트는 유명한 아트 딜러의 이름을 부르고(‘Mary Boone’), 미국 사람은 러시아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Pravda’). 송라이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트랙들은 연결되어 흐르고, 아티스트와 청자는 세상의 물결을 타는 ‘fellow surfers’가 된다. 그렇다고 ‘유나이티드 아메리카’ 판타지 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Though we live on the US dollar / You and me, we’ve got our own sense of time”(‘Hannah Hunt’)에 닿아 있는, “오래된 세계의 피를 말린 뱀파이어들”의 “잔인한 클래식” 틈새에서 찾은 어렴풋한 희망에 가깝다.


‘Capricorn’ 뮤직비디오의 엔딩은, 코에닉과 톰슨, 바이오가 홀에서 공연하는 시퀀스다. 반응할 기운이 없어 보이는 관객들을 마주보는confront 채로가 아니라, 그들을 등지고, 아니 그들과 ‘한 무리가 된’ 채로다. 그 중 누군가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Fuck the world.”, 그랬다면 누군가 답했을 것이다, “I hope you let it go.”





+ 인터뷰 번역 조각들의 일부


‘Pravda’에 대해

“(적어도 3-4년 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쓴 곡이다.) 당시에 내 마음속에 들어서 있었던 건 냉전에 가까웠던 거 같다. 리암 갤러거와 함께 작업했던 ‘Moscow Rules’와 비슷한 시기였다. (……) ‘pravda’는 러시아어로 진실이라는 뜻인데, 러시아 신문 이름이기도 하다. 서구적 관점에서는 ‘프라프타’가 거짓으로 가득 찬 것으로 이야기되곤 하니, 아이러니인 거지. 러시아에선 반대일 거고.”  

- Ezra Koenig, [Radio X]


‘Prep-School Gangsters’에 대해

“프렙 스쿨 갱스터, 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얼굴에 웃음을 띄우는 실없는 문구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굉장한 특권을 지녔지만 갱스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실없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내가 살며 만난 사람의 반이 그랬는걸.”  

- Ezra Koenig, [Radio X]


‘Gen-X Cops’에 대해

“처음엔 그냥 ‘Gen-X Cops’라는 제목의 곡을 갖고 싶었다. 내가 매우 흥미롭게 보며 자란 90년대 후반 홍콩 액션 영화인데, 그러다 Gen-X cops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던 거 같다. 정말로 왜 내가 그 표현에 끌렸던 걸까? 적어도 내 인생 동안에는, (지금보다) 더 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가 내린 결정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밀레니얼이다. (……) (요약: 인터넷에 들어가면 세대에 관한 정말 많은 얘기를,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얘기를 찾을 수 있다) 근데 내 일부는 약간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거다, 그 각각의 세대들이 정말 비슷하지 않나? 어쩌면 역사적으로 어떤 세대들보다, 서로 더 닮아 있지 않을까, 포스트-부머 세계에 있다면 - 뭔가 공통점이 있지 않나. 모두가 인터넷을 쓰고 있고, 모두가 특정한 문화적 규범과 문화적 전형들과 함께 자랐다. 그러니까, 그렇지, 모든 세대들은 각자의 변명을 만드는 거지. 각기 다른 세대들에 대해 말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여정에 올라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곡인 것 같다,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영원히 반복된다.”

- Ezra Koenig, [NPR]


‘Hope’에 대해

“(그냥 루프가 아니라) 매번 달라지는 거다, (……) 다양함을 위한 다양함이 아니라, 거기 내러티브가 있다. 드럼조차 그렇다. 루프가 아닌 것처럼, 그전에 겪지 못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that’s pure Ariel.”

- Ezra Koenig, [Radio X]


앨범 커버에 대해

“(……) 1988 스티븐 시걸이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 무덤에서  무더기의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전복됐기 때문에, 중력을 약간 가지고   있었던 거지. (……) 커버에 있는 유일한 텍스트는  사람이 읽고 있는 신문의 것인데, 1988 Daily News 실제 커버다. 헤드라인은 ”Only God Was Above Us“이고, 하와이안 에어라인 비행기의 지붕이 비행 중에 떨어져 나간 이야기였다.  비행 생존자의 말을 직접 인용한 문구였던 거다. "나는 올려다 봤어요. 우리 위엔 오직 신만이 있었어요."”

- Ezra Koenig, [NPR]



* 참고 인터뷰


2010.02.04. interviewed by. Josh Eells [Rollingstone]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news/the-semi-charmed-life-of-vampire-weekend-237587/ 


2024.03.23. interviewed by. Shaad D’Souza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4/mar/23/ezra-koenig-vampire-weekend-interview


2024.04.06 interviewed by. Scott Simon, Eleana Tworek [NPR]

https://www.npr.org/2024/04/06/1243230526/ezra-koenig-on-the-new-vampire-weekend-album-only-god-was-above-us


2024.04.10. interviewed by. John Kennedy [Radio X] 

https://youtu.be/qPaxif0a1Fk?si=FKKlVYPUJrTtf_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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