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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a Dec 11. 2023

손 벌리는 아들

화분 속 식물이 휘어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그게 볼썽사나웠다.



어릴 적 생각했던 스물일곱의 모습은 과연 이랬을까. 위만 바로 보며 크던 식물처럼, 나 또한 그랬다. 가끔의 곁눈질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난 아직 본가에 있다. 내년엔 서울을 혼자 올라가기로 했는데 아직 혼자서 책값도 내지 못하는 아들이다. 내가 모아둔 푼 돈으로는 서울서 인간다운 생활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휘어진 식물엔 부목을 대었다. 언젠가 너도 나도 부목에서 벗어나야지. 뿌리를 내릴 때까지만 있을 거야.



영원할 수 없는 것들. 유한한 것들. 사라질 모든 것들에 앞서 깊게 깊게 뿌리를 내려야겠다.



자수성가란 말은 거만스럽다. 부모님. 스승. 배우자. 상사. 친구. 그들의 정신적 지지와 물질적 도움. 그 모든 것에 적용될 행운. 만약 불운이라 할지라도 반면교사 삼아, 자수성가는 다 거짓이다.



사실 다 변명이다. 당장 책 살 돈이 없어 정답을 정하고 이유를 찾는 중이다. 소란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이 편하기 위함이다. 어쨌든 미래를 나에게 책임의 소재를 던진다. 현재의 안위를 애피타이저 삼아.



초등학교 나에게 쓴 타임캡슐 쪽지에 적힌 말이 있다.

'너 참 성공했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해.'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염병, 어린놈이 성공이 뭔지 아냐?

그리고 내가 아직 손 벌리는 아들일 줄이야.








사진 출처: 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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