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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a Dec 15. 2023

거부의 발설

마지막이라는 말은 적정 수준의 폭력성을 띤다. 그런 단언을 하는 것 또한 내 의지만은 아님을 덧붙인다. 끝으로, 끝으로, 무한하게 이어지는 끝으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말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따를 뿐이다. 그만 아쉽고 싶으므로, 마침표가 담긴 스크립트를 짠 것이다.


먼저 용서를 구하겠다. 지나버린 관계에 대하여 들추는 일, 상상하는 일, 그 모든 것들을 글로 남기는 것에 자격을 논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내 이야기이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다. 이별과 지난 사랑에 대하여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영향받지 못한다면 예술은 존재할까? 가사, 그림, 글, 글에서도 서평, 시, 산문, 수필, 소설까지. 세상에 이별과 지나버린 것들에 대하여 논하지 못할 자유는 (적어도 나에겐) 없다. 그러니 먼저 용서를 구하겠다.


떠나야만 했을 때, 며칠은 혐오감과 구겨진 자존심을 삼키고 며칠은 측은함과 근심을 토해냈다. 시소처럼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나의 변덕을 바로 잡으려고 부단히 시도했다. 이젠 그 무한한 진자운동을 나만의 물리적 특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개인의 눈먼 사랑만큼은 일관성의 잣대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날은 이별 후에도 너에게 안부를 전했다. 넌 아마 내가 엉망이거나, 잠을 뒤척이거나, 그래서 네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테다. 하지만 난 그런 불안의 구렁텅이에서는 오히려 널 찾을 자신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무언갈 이루거나, 그러므로 인하여 너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때가 적절했다. 그때는 너의 걱정도 내 마음 한 구석에 받아낼 수 있을 때였다.


너와 다시 잠이나 자보려고 그랬을까? 물론 그것이 미련하다 싶게, 나에게 유해하다 싶었지만 오히려 한번 안아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쾌락의 순간을 위해 못난 이기심을 구태여 부릴 정도로 과감한 사내는 되지 못하였다. 격했던 신체적 모험들은 내 머릿속에서 탈주한 지 오래고, 나에게 남은 건 흐려져버린 과거뿐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들을 손으로 적힌 편지로 하여금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은 멀었어도 감각들은 살아있으므로, 너의 말 없는 말이 무언(無言)의 거부를 뜻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너의 단단한 성문에 꽂혀 흔들리지 않은 깃발이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의도적이 듯이. 그런 무언의 거부를 섬세하게 발설하는 것. 널 마주하며 또 다른 희망과 가능성의 향락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전하는 것. 그게 이 글이다.


물론 우리의 끝이 나에겐 오만함, 거만함, 예의 없음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숨기지 않으련다. 나는 늘 그랬듯 서로를 서로에게 내던지는 솔직함이 좋았다. 물론 어떤 솔직함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의 솔직함은 두려울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기다림 속에 며칠이고 빠뜨리는, 하늘로 치솟는 샴페인처럼 나를 공중에 띄웠다가도, 관을 통과하여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지는 하얀 액체처럼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나는 분노하고 증오했다.


그럼에도 난 이 글을 쓴다. 왜 이 글을 썼냐고 묻는다면 난 너의 유약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방안에 붙어 너를 지켜보는 인형 보다도. 무서움에 불을 켜고 벽에 등을 붙인다거나, 새벽에 무릎이 시린다거나,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거나, 세상이 너무나 많은 것을 견디라고 할 때. 나란 인간이란 아주 많은 진실을 견뎌낼 수 없어서 그것을 더 캐묻지 못하여도, 나는 가끔 보인다. 너의 웅크림, 경직, 위축된 감정이.


온 세상에 취하지 않는 것이 없었던 때를 돌아본다. 저 멀리, 그때의 온갖 더미들이 응어리져 서 있는 것만 같다. 마치 보일 듯 실눈을 뜨는 일은 하루의 끝에 자주 일어난다. 내가 아직 엉망이던 때, 우스울 때, 부풀어 영글었던 야심이 가득했던 때. 그 모험 속 나의 부족함에 과도한 용서를 구한다.


안개, 비, 흙먼지가 창 너머 몇 달을 훑고 갔다. 어떻게 창문을 뚫고 들어왔는지, 쓱 하고 문질러본 먼지의 일부는 들러붙고 나머지는 빛의 산란 속에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미뤄두었던 가벼운 청소를 해야겠다. 너무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하자. 내 노력한들 먼지는 항상 어딘가에 쌓여있으므로. 그렇게 우리도 먼지처럼 살아남자. 살아가자라 말하기엔 가볍지 않은 세상. 손이 닿지 않는 방 구석구석을 찾아 먼지처럼 살아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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