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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Dec 29. 2020

Rage Against the Machine

나는 번역을 하며 밥을 벌어먹고 사는데, 기계 번역은 이미 놀랄 정도로 높은 수준으로 업무에 침투해 있다. 특히 IT 분야에서는 꽤나 괜찮은 품질의 번역을 뽑아 주는데 그러면 그걸 보고 리뷰를 치면 그만이다. 편하냐고? 당연히 편하기야 편하지. 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서늘하게 조여 온다.


번역도 일종의 작문이고, 작문은 일종의 예술이다. 뭔 AI가 소설을 쓴 게 일본 문학계에 상을 탔다나 입선을 했다나, 그랬단다. 아직 미친 과학자들이 '예술'의 메커니즘을 온전히 파악해내지는 못했는데, 원리야 나도 문과라 잘은 모르지만 뇌도 일종의 컴퓨터니까 데이터를 수백 수천 수만 수억 건을 쌓아다가 분석하면 '이건 잘 팔리는/평이 좋은 예술이겠군' 하고 뚝딱 만들어낼지도 모르겠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쌓고 또 쌓아서 짜잔, 하고 뽑아내는 것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계속 비슷한 문구가 반복되는 IT 번역을 제외한 분야에는(예: 게임이나 마케팅) 인간이 개입해야 할 부분이 아직 정말 많이 남아 있다. '일 더럽게 하기 싫다, 누가 대신 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다행스럽다고 느낀다. 


세상 많은 부분이 인공-나발-지능인지 뭔지에 대해 대체되어가고 있고 누군가는 어서 구글이나 테슬라를 막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네오 러다이트 운동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하나둘씩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나면 우리는 대체 어디에 서 있을까. 삶은 점점 편리해지고 덜 귀찮아진다. 


손가락이야 이렇게 놀리면서도 어느날 갑자기 기계랑 AI가 싹 사라지고 나면 나도 불평할걸. 게다가 이런 말은 인류가 예전에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에도, 방직기가 등장했을 때에도.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은 비웃음받고 조롱당해 마땅하다.


그렇지만 스카이넷이랑 알파고의 디스토피아보다는 좀비 아포칼립스가 훨씬 매력적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날이 오면 나는 시골로 가서 땅을 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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