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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Oct 06. 2020

성수동 공장에 오기까지. (1)

4년 동안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남미 여행을 다녀오고, 한국에 왔다. 그냥 있을 순 없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해보았다. 부산 국제영화제 스태프,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스태프 (무려 숙식 제공!), 또 아는 언니가 대표로 있는 액세서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또 음반 유통사에서 잠깐 일도 했고, 라이브 바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점점 고갈되는 도태된 주머니 사정.

 

그래서.. 백수이기를 포기하고 다시 회사에 취직했다. 백수인 채로 뭔가를 하기엔 내가 너무 별 볼 일 없었으며, 뭘 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하는 수 없더라도 다시 회사에 들어가 (무엇이든) 인사이트를 키워서 나오자는 게 내 취지였다. 호기롭게 백수 생활을 맘껏 즐기다 (다행스럽게도) 회사에 다시 들어갔긴 했는데, 입사를 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일종의 무기력감과 패배감에 절어 있었다.


돌고 돌아 다시 회사라니. 아으, 지겨워.


그런데 나는 지겨워, 지겨워하면서도 4년 동안이나 회사에 곧잘 붙어 있었다. 4년이 그렇게 지겹지만은 않아서였을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회사 안에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또 내가 쓴 곡으로 몇 장의 앨범을 낸 것을 보면, 회사 외 생활 면에서는 할 건 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지겨워 병에 걸린 채 4년 동안 회사를 다니다, 결국엔 직장 상사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냥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다들 알겠지만, 회사에는 말할 수 없는 숨 막힘이 있다. 대부분의 마케팅 영역에 있는 상사들은 힙스터 코스프레 같은걸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상사의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고, 나도 설득을 위한 일을 하라 강요받았다. 또 회사 특유의 어쩔 수 없는 내적 구림, 일상에 짓눌린 사람들이 내뱉는 무거운 공기들. 이런 것을 나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적으로 싫어하는 상사가 환하게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뻐드렁니가 거슬렸고, 팀장이란 여자가 나긋이 내 이름을 부를 대마다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럼 별수 있나, 관둬야지


원래는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쌓고자 회사를 들어갔는데, 나올 땐 결국 사람이 싫어서라니. 참나. 하긴, 그 인사이트라는 게, 스트리트 파이터의 상대 파이터의 에너지 게이지가 채워졌다 떨어졌다 하는 것처럼 눈에 정량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또 이게 내가 작심해서, 인사이트를 챙겨야겠어! 하면 챙겨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4년 동안  뭔가는 배웠겠지 뭐.


아 모르겠다,

4년 전의 퇴사와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한 번의 퇴사로 증명된 것은 나는 회사 체질은 절대 아니라는 것. 곧 죽어도 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의지가 굳어졌다.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알바천국을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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