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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Jun 26. 2020

출산도 육아도 아닌 모유수유 (2)

이건 경쟁이 아니잖아.

출산을 하고 4일이 지난 후에, 나도 여느 산모들처럼 산후 조리원에 들어갔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 하는 것처럼 나도 조리원 투어라는 것도 하고 동네 친구들에게 자문도 구해서 석촌호수가 내다 보이는 (비교적?) 쾌적한 곳을 골랐다. 주변 사람들은 조리원은 천국이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조리원이 여간 답답하고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멋들어진 침대가 있긴 했지만, 난 그냥 우리 집 내 침대가 더 그리웠다. 집이라는 곳이 주는 상징성이 있지 않은가. 그냥 몸을 쉬이 늘어놓고 싶은 것. 내 주방에서 내가 원하는 식재료로 휘 요리를 만들어서 조용히 먹을 수 있다는 것. 허나, 그러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모유수유와 아기 돌보기.

방에서 보이는 석촌 호수. 그리고 빳빳한 호텔식 침구

이 조리원을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 때문이었다. 모유수유 라던지, 아기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모유수유는 절대로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에, 수유실의 선생님들에게 의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생님들의 친절하고 자상한 디렉션은 정말로 힘이 된다. 아아. 힘든 몸뚱이와 정신에 온기를 더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튼 선생님의 명확하고 따뜻한 지도편달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경쟁심. 모유수유실에 있던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 말은 바로, 뭐든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뭐라고. 모유 양에 보이지 않은 경쟁심이 발동한다 이 말이다. 


우리 조리원에서의 수유 콜의 플로우는 대략 이러했다. 

방에 있다가 모유 수유 콜을 받으면, 수유 쿠션을 가지고 터벅터벅 수유실로 간다. 아기는 수유 전 몸무게를 잰다. 이 체중계는 아주 정밀하다. 수유를 한다. 그리고 다시 아기의 체중을 재어 얼마나 먹었는지를 기록한다.  

조리원 벽에 걸려있는 포스터

이 마지막 과정에서 어느 아기가 얼마를 먹었는지를 소리 내어 말하기 때문에, 수유실의 산모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좀 문제였던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누구는 60~70ml를 막 먹이고 뿌듯하게 돌아가는데, 나는 0을 넘어서 젖이 나오지 않아 되려 아기의 체중이 마이너스가 되는 일도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아기는 온 힘을 다해 빠는데 내 젖은 나오질 않는다.......... 


경쟁이 아닌걸 모두가 아는데, 경쟁하는 자들의 모습. 수유 양에 따라 의기양양하게 돌아가거나 축 쳐져서 돌아가는 모습이라니. 이건 어딘가 이상하다. 아 맞다. 우린 한국인들이지. 뭐든 경쟁하려 드는 한국인. 


이건 경쟁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다들 잘 해내는데 내 젖만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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