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모유수유. 아직 육아 짬이 길진 않지만, 출산 이후 지금까지의 다난한 여정 중에 단연 최고로 어려웠던 것을 꼽으라면 난 모유수유를 꼽을 것이다. 아아. 모유수유. 출산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기는 나와 있고, 내 몸은 회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유수유는 정반대다.
이게 사실 처음엔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모유가 아기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리고 내 젖을 무는 아기를 보면서 모성애가 터져 나오므로. 모든 시련을 딛고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난 모유수유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실제로 출산 전, 내 친구들의 대부분이 모두 모유수유 얘기만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난 출산보다 모유수유가 더 힘들었어." 하고 말했는데, 역시 인간인란 자기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동물이라니, 내가 딱 그랬다.
사실 나는 앓고 있는 지병 때문에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는데, 그중 수유 시에 먹을 수 없는 약이 한알 들어 있었다. 수유를 위해 그 약을 끊으면, 나의 지병은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 것이기 때문에, 담당 주치의는 되도록 모유수유는 되도록 길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출산 이후 엄마가 아프면 육아고 수유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이다. "뭐, 요새 분유도 좋잖아요? 초유만 먹이세요."
그런데 참 엄마 마음이라는 게 그게 어렵다. 수많은 육아서에는 유선염이 온다고 하더라도! 젖몸살에 고되더라도! 무조건 모유수유를 하라고 쓰여있고, 심지어 내가 먹이기 시작한 분유의 겉 포장에는 "엄마의 모유가 가장 좋은 음식입니다."라고 쓰여있기 때문에 쉽사리 모유수유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잘 들지 않는다. 게다가 <생로병사>에서도, 넷플릭스 <베이비스>에서도 주야장천 하는 말이 그거다. 처음 아기가 먹는 모유로 아기는 평생의 면역력을 획득한다고. 비만과 성인병도 예방되고, 엄마와의 애착형성에도 좋고 또 뭐더라... 아무튼 모유가 짱이라는 건데, 이 모유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누구의 가슴도 아닌 내 가슴인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내 경우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 주제에 가슴이 작기까지 해서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 모유가 차는 불편함이 지속됐다. 조리원을 누가 천국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불편함 때문에 때마다 유축을 했고, 젖을 물렸다. 밤에도 가슴이 댕댕거려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누구는 밤 중의 수유 콜은 받지 않고 잠을 잔다는데, 참나.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조리원 선생님은 가슴의 사이즈를 '그릇'에 비유했다.
"그릇이 작으면 물이 조금만 담겨도 쏟아질까 위태위태 하잖아요? 지금 경미님의 가슴이 딱 그래요."
"작군요."
"그릇이 작으니 조금만 차도 아픈 것이죠."
궤변이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왜 남자들이 가슴 큰 여자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지를. 아아. 인간이란 동물은 이렇게도 논리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모유를 생성하고 잘 지닐 수 있는 가슴을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것이라니. 심미적인 이유가 우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유는 나와라! 한다고 나오지도 않는데, 내 가슴 사이즈 (아니, 모유 그릇) 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니. 절망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