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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May 15. 2020

출산도 육아도 아닌 모유수유 (1)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모유수유. 아직 육아 짬이 길진 않지만, 출산 이후 지금까지의 다난한 여정 중에 단연 최고로 어려웠던 것을 꼽으라면 난 모유수유를 꼽을 것이다. 아아. 모유수유. 출산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기는 나와 있고, 내 몸은 회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유수유는 정반대다. 


이게 사실 처음엔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모유가 아기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리고 내 젖을 무는 아기를 보면서 모성애가 터져 나오므로. 모든 시련을 딛고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난 모유수유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실제로 출산 전, 내 친구들의 대부분이 모두 모유수유 얘기만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난 출산보다 모유수유가 더 힘들었어." 하고 말했는데, 역시 인간인란 자기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동물이라니, 내가 딱 그랬다.


사실 나는 앓고 있는 지병 때문에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는데, 그중 수유 시에 먹을 수 없는 약이 한알 들어 있었다. 수유를 위해 그 약을 끊으면, 나의 지병은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 것이기 때문에, 담당 주치의는 되도록 모유수유는 되도록 길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출산 이후 엄마가 아프면 육아고 수유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이다. "뭐, 요새 분유도 좋잖아요? 초유만 먹이세요."

양이 너무 적어 분유 보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 엄마 마음이라는 게 그게 어렵다. 수많은 육아서에는 유선염이 온다고 하더라도! 젖몸살에 고되더라도! 무조건 모유수유를 하라고 쓰여있고, 심지어 내가 먹이기 시작한 분유의 겉 포장에는 "엄마의 모유가 가장 좋은 음식입니다."라고 쓰여있기 때문에 쉽사리 모유수유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잘 들지 않는다. 게다가 <생로병사>에서도, 넷플릭스 <베이비스>에서도 주야장천 하는 말이 그거다. 처음 아기가 먹는 모유로 아기는 평생의 면역력을 획득한다고. 비만과 성인병도 예방되고, 엄마와의 애착형성에도 좋고 또 뭐더라... 아무튼 모유가 짱이라는 건데, 이 모유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누구의 가슴도 아닌 내 가슴인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내 경우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 주제에 가슴이 작기까지 해서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 모유가 차는 불편함이 지속됐다. 조리원을 누가 천국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불편함 때문에 때마다 유축을 했고, 젖을 물렸다. 밤에도 가슴이 댕댕거려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누구는 밤 중의 수유 콜은 받지 않고 잠을 잔다는데, 참나.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조리원 선생님은 가슴의 사이즈를 '그릇'에 비유했다. 


"그릇이 작으면 물이 조금만 담겨도 쏟아질까 위태위태 하잖아요? 지금 경미님의 가슴이 딱 그래요." 

"작군요." 

"그릇이 작으니 조금만 차도 아픈 것이죠."


궤변이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왜 남자들이 가슴 큰 여자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지를. 아아. 인간이란 동물은 이렇게도 논리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모유를 생성하고 잘 지닐 수 있는 가슴을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것이라니. 심미적인 이유가 우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유는 나와라! 한다고 나오지도 않는데, 내 가슴 사이즈 (아니, 모유 그릇) 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니.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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