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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Sep 20. 2020

나의 방을 상상하는 일

일곱 평의 캔버스  |  Seoul


나는 모든 방에 대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여행지의 방, 소설 속의 방,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속의 내밀한 방에 대한 묘사,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매일 오르던 계단 위의 방,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나오는 헤밍웨이의 호텔 꼭대기층 작업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주인공이 살던 피렌체의 방, 런던에서 지냈던 다락방, 회사 선배가 뉴욕에서 살았던 방 이야기 등. 이 세상 모든 방에 대한 문장과 구절들을 사랑한다. 방에 대해서는 너무 할 말이 많아, 방에 대한 기록만 모아서 나중에 글로 묶어봐야지 하는 생각도 하곤했다. 그만큼 방에 대한 나의 생각은 각별하다. 공간에 대한 나의 모든 여정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집을 계약하고 나니 일곱 평 짜리 빈 캔버스를 갖게 된 기분이었다. 어떤 가구로 채워야 할까 한 달 동안 고민했다. 사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미 나의 두 번째 방을 머리로 그리고 있었다. 방의 실체가 아직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떠오르는 생각을 텍스트로 마구 적었다.


그때의 아이폰 메모.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2018. 05

- 여러 가지 일상이 담기는 커다란 테이블
한쪽에는 온갖 잡지들을 벌려놓고 스크랩 중, 한쪽에서는 글을 쓰고, 앞에는 창이 있어 밖을 내다보며 빵과 커피를 먹는다
- 흰 벽면에는 스케치, 끄적임, 영감을 주는 이미지, 일상을 지탱하는 글귀들, 용기를 주는 따뜻한 엽서들, 그리고 언젠간 가공되어 꽃을 피울 생각의 재료들이 던져져 있는 벽
- 방 한편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상의 사물들을 마치 가게의 쇼룸처럼 놓아둔 테이블
- 아침에 빛이 깊숙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
노을 지는 모습을 기다리는 창가 옆 침대
침대는 헤드 없이, 매트리스만 있어도 좋고
- 바닥에는 벽에 기대 놓은 액자들과 잎사귀가 작고 예쁜 화분들
- 영감을 곡으로 옮겨줄 피아노 건반
- 무용을 할 수 있을 만한 빈 공간


나는 어릴 때부터 쭉 동생과 같은 방을 써왔다. 싱가폴로 회사를 옮기면서 얻었던 집이 나의 첫 독립 공간이었다. 싱가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동생과 함께 쓰던 방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가족과 떨어져서 살다가 내가 돌아와서 가족이 완전체가 된 반가움과 애틋함의 감정에, 내 방에 대한 열망이 잠시 가려져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공간이 없어진 데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정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나서 험한 하루의 문을 닫고 돌아갈 수 있는 나의 작은 세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두 달 정도 고민했다. 다시 집을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주저되어서. 그리고 돈이 많이 들 테니까. 그러다가 나에게는 나의 공간이 곧, 나라서, 나의 공간이 없으면 나의 세계도 없어지는 것이라서, 결국 다시 나의 공간을 찾기로 한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나의 집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서울 중심부에서 점점 밀려나다가, 마포구청 근처에 일곱 평 짜리 오피스텔을 얻었다. 나는 조심성과 겁이 많은 편이라 결정을 내릴 때 오래 걸리고 주저함이 많지만, 혼자 가서 이 집을 보고 이 정도면 되었다 하고 결정했다. 내 공간에 담고 싶은 일상에 대한 그림이 명확히 있었기 때문에, 그 범주에만 들어온다면 비용과 집의 크기 사이에서만 타협하면 되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험난했던 하루의 문을 닫고서 안전한 나의 작은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선반 위의 작은 스탠드를 켰다. 그러면 방이 노란 불빛으로 가득 차고 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 방에 놓인 가구들은 이사하기까지 한 달간 매우 심사숙고해서 산 것들이었다. 매장에 여러 번 가고 카탈로그를 샅샅이 정독하고, 한참을 고민 또 고민해서 골랐다. 사실 내가 직접 쓸 가구를 사는 게 서른이 넘어서 그때가 처음이었다(싱가폴에서 살았던 집은 Fully-furnished 이었으므로.) 나는 주로 개인보다는 기업 고객을 상대로 일했기 때문에 평소 하나에 수백 수천만 원짜리 가구를 제안하고 발주하면서도, 나를 위해 가구를 사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처음이었다. 일이란게 그런 것이지.. 그리고 내 통장에서 나가는 돈이다 보니 어찌나 신중해지던지. 온 지구에 있는 가구와 조명 브랜드란 브랜드는 다 뒤져볼 기세로, 가격 대비 내가 얻게 될 효용을 철저하게 계산하면서.




책상 이야기


싱가폴에서 꾸린 나의 첫 번째 집에는 책상이 없었다. 거실과 부엌을 구분 짓는 아일랜드 조리대 겸 싱크대가 있었는데, 이걸 아쉬운 대로 책상처럼 썼다. 인덕션의 빨간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싱크대 안으로 물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싱크대 위의 물기를 열심히 닦으면서 포개 놓은 식기들과 사이좋게 공간을 나누어 썼다. 그러다 보니 책상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커다란 책상을 갖고 싶었다. 한 6인용짜리 나무로 된 책상. 그 위에 담고 싶은 일상이 많아서였다. 하지만 첫 집이다 보니 침대를 포함해 여러 가지 살 것도 많고 공간이 협소해서, 크고 번듯한 책상은 우선순위에 밀려났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능만 족하자며 1.2미터짜리 하얀색 이케아 책상을 샀다. 나중에 큰 공간을 갖게 되면 2미터가 훨씬 넘는 책상을 사리라 하고.

책상은  창가 옆에 두었다. 책상 위에는 그때 나의 기분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책 몇 권을 꺼내놓았다. 일주일 동안 오며 가며 뒤적거리기 위해서.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도면과 트레이싱지 더미가 위에 잔뜩 쌓였다. 허전한 밤이면 위안을 주는 달콤한 것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빵과 커피를 먹으면서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책상의 한 귀퉁이는 테이블 스탠드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모양이 아름답고 기능에도 충실한 Artemide사의 Tolomeo라는 이름을 가진 조명인데, 이 집에서 가장 아끼던 것 중 하나였다. 이 조명이 켜질 때면 내게 무언가 의욕이 있다는 것이었다. 밤이 되었다고 해서 이 조명이 항상 켜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조명을 켰다는 건 책상 앞에 앉았다는 것이고, 대개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나 주말 저녁에 뭔가 쓰고 싶은 아쉬움이 생길 때마다 불이 켜지곤 했다.




선반 이야기


그리고 검정에 가까운 무지 선반이 있다. 선반을 잡고 있는 X자의 사선 구조가 건축적이라 맘에 들었다. 그리고 뭔가 집에 국한된 분위기가 아니라 중성적이어서 좋았다. 실리적인 효용도 사실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방 크기를 생각해서 가로 2단에 세로 3단으로 들여놓았는데, 나중에 원하면 옆으로도 위로도 단을 계속 추가해서 늘릴 수가 있었다.


가장 윗 선반에 오르는 물건들은 그 때의 가장 꽂혀있는 머릿속 주제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여행을 구상 중일 때는 LOST-IN 시리즈의 감각적인 표지가(그래픽과 타이포가 인상적인 여행책), 왠지 조금 자존감이 떨어지고 힘든 때에는 울프 일기와 같은 책이 올랐다. 그리고 옆에는 집안의 유일한 시계였던 작은 무지 탁상용 시계가, 그 옆에는 내가 유일하게 모으던 반지들이, 그 옆에는 내가 좋아하는 향수 몇 개가, 이케아에서 산 오브제 형태의 램프가, 그리고 아주 가끔 꽃이나 식물이 주는 생기가 그 위에 놓이기도 했다. 선반 위에 있는 사물들을 그때의 관심사에 따라 재구성하고 계속 업데이트하는 일이, 가게 쇼룸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흰 벽은 생각의 캔버스


싱가폴 집에는 모든 벽이 흰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아무거나 부담 없이 붙일 수 있었던 그 맨 흰 벽이 그립다(벽지 위에는 아무거나 잘 붙지 않으므로). 그 벽은 생각의 캔버스였다. 가장 위의 메모지에는 Arrays of fleeting thoughts라고 적어두었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본 이 문구가 이 벽의 이름으로 꼭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이나 순간 스쳐 지나간 찰나의 단어들을 잡아서 벽에 걸어두었다. 벽에 던져진 생각의 배열들은 그 때의 생각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이 집에서는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흰 붙박이 장이 빈 캔버스가 되었다. 매끈한 표면 위에 마스킹 테이프가 제법 잘 붙고, 문짝이 나눠져서 생긴 경계가 자연스럽게 칸을 구분해주어, 마치 공책을 나눠쓰듯 할 수 있었다. 막 끄적거린 스케치들, 일상을 지탱해주는 문장들, 순간 떠오른 단어와 영감들, 용기를 주는 따뜻한 엽서들, 가게에서 집어온 명함, 스크랩해놓은 잡지의 한 페이지, 좋아하는 가구 브랜드의 카탈로그 같은 것들이 벽에 붙었다.



이 방에 살다가, 예전에 비행기 안에서 방을 상상하며 써두었던 아이폰 메모를 우연히 다시 발견하고는 놀랐다. 내가 이런 걸 적었었는지 기억도 못했었던뿐더러, 커다란 공간과 책상 말고는 얼추 내가 원하는 일상의 모습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은 무의식 중에도 생각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독립해서 처음 자기 집을 갖게 되면, 평소 집에 대한 생각을 특별히 해본 적이 없던 터라 갑자기 막연한 감정이 드는 것이 대부분일 것 같다. 자기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상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아주 특이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심지어 공간을 다루는 업을 가진 나조차도 내 집에 대해서는 꽤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살면서 특별히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든 집의 구조가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의 거실에서 자라왔고, 우리 집 거실도 친구네 집 거실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자라면서 본 것들이 곧 나의 세계관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 온 집의 거실이란 그런 공간이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티비가 있고 맞은편 벽에는 소파가 있는 그 배치는 이미 고정되어있고, 거기서 티비를 뭘로 할까 소파를 뭘로 할까 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극단적으로 거실에 침대를 놓거나 나에게 필요한 다른 공간으로 구성할 생각은 애초에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사를 앞두고나면, 부랴부랴 사람들이 이사나 혼수를 준비할 때 많이 가본다는 가구점들을 검색하고 급격하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본 것 중에서 가장 “괜찮았던” 것으로 고르게 된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가구는 목돈이 들고 한번 사용하는 기간이 길다. 그런데 비해 막상 상황이 닥치면 급박하게 고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선의 선택인지 확신이 서지 않고 항상 아쉬움이 남아, 비용과 이상 속에서 적당한 타협을 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나의 경우에는 예전에 지나가면서 써두었던 시덥잖은 메모들이 집의 상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그 갖고 싶은 일상의 archive는 계속 쌓이고 있다. 언젠가는 집에 두고 싶은 가구와 조명의 리스트가 예전보다 더 쌓였다. 그리고 그 방의 모습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어간다.




방에 대해 쓸 용기가 없어졌다가, 어제 사적인서점에서 데려온 책들 덕분에 다시 용기가 생겼다. 어제는 글을 마저 이어나갈 용기를 얻기 위해서 책방에 갔었다. 그리고 그 책 속의 문장들 덕분에, 예전에 끄적거려놓은 방에 대한 나의 문장들을 마저 이어서 쓸 수 있었다. 아무리 시시콜콜한 TMI여도 나만 쓸 수 있는 가장 진실된 문장과 소재들이란 나에게는 이런 것들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 방에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서, 예전의 방을 상상하면서 문장으로 기록하는 것도 나에겐 즐거운 일이다. 머릿속의 기억은 조금 어렴풋해졌지만, 공간의 문장들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그리고 방에 대한 기억들


책상 위의 모습들


선반에 대한 나의 애정

이 집에서의 모습은 아니지만, 뒷모습도 멋진 선반과 그 위에 차린 쇼룸


흰 벽은 생각의 캔버스

이 집에서 생각의 캔버스가 되었던 흰 벽
싱가폴 집에서의 흰 벽


그리고 방에서 보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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