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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Nov 01. 2020

헬렌의 집

스웨덴 가정집의 기록  |  Sweden


최근에 읽었던 책 때문인지 글의 주제가 이국의 집들로 향하고 있다. 피렌체의 꼭대기 작은 집에 이어서 내가 다녀온 스웨덴의 소박한 가정집에 대한 기록이다. 이 집에 대한 기억은 벌써 10년 전인 2010년의 것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이국의 집들은 줄곧 내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헬렌네 집은 도시와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 한적한 동네에 있었다. 숲을 따라서 난 도로를 따라서 집들이 드문드문 서있었는데, 헬렌네 집도 그중에 하나였다. 집은 2층짜리 목조주택이었다. 그 집에 가려면 입구로부터 마당을 가로질러서 난 길을 꽤 걸어 들어가야 했다. 집은 넓은 잔디밭을 끼고 있었다. 그 마당의 모습은 사람의 손길로 곱게 가꿔진 정원보다는, 나무들이 스스로 자라도록 내버려 둔 모습에 가까웠다. 평소 털털하고 꾸미지 않는 헬렌의 성격과 닮아있었다.



소설 속 식탁의 장면들

다이닝룸


시대가 다른 소설을 읽을 때 가보지 못하는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위해서는 상상의 재료들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한 번이라도 보았던 어떤 장면들이 그 밑그림이 되어준다. 실재하는 그 공간들을 먼저 떠올리고 그 위에 살을 붙인다. 헬렌네 집의 다이닝룸은 소설 속에서 고전스러운 저녁식사의 장면들 만날 때마다 매번 꺼내어보는 장면이 되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부엌이 나왔다. 부엌을 끼고서 왼쪽으로 꺾으면 긴 복도가 있었다. 그 복도는 거실의 문턱 앞까지 길게 이어져있었는데, 긴 벽에는 문이 하나 나있었다. 그 문은 다이닝룸으로 통했다.


다이닝룸은 그 이름처럼 ‘방’으로 존재했다. 소소하게 저녁을 먹을 때에는 부엌 옆에 놓인 4인용 식탁에 마주 앉아서,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특별한 날일 때에는 다이닝룸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했다. 방 안에는 10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었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타원형의 식탁 위에는 소박하지만 격식을 갖춘 식기들이 단정하게 차려졌다. 그 옆에는 그릇을 보관하는 클래식한 형태의 찬장이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창이 있어서 낮에는 햇빛을 방으로 가득 끌어들였다. 방의 한쪽 끝에는 거실로 통하는 작은 쪽문이 나있었다.


오래전에 지어진 집은 지금 시대의 집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 하나는 집을 구성하는 공간들이 정석대로 나눠져 있어서, 이 집의 다이닝룸처럼 각각의 ‘방’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집 안에는 그 방의 개수만큼이나 다른 시공간의 장면들이 생겨날 것이고, 그것은 부엌의 시간, 식탁 위의 시간, 거실에서의 시간이 모두 하나의 장면인 집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풍요로움 같다.


헬렌의 집에서 보낸 추석



방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공간

복도


이 집은 헬렌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인데, 옛날 방식의 목조 주택이어서 천정이 꽤 낮았다. 겨우 2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나지막한 높이였다. 바닥은 반질반질한 우드 파퀘트리(Parquetry; 나무 조각을 짜 맞춰서 만든 마루)로 되어있었고, 헬렌은 그 바닥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 공예품 같은 바닥을 잘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복도는 집안에서 다른 방으로 넘어갈 때에 꼭 거쳐가게 되는 공간이었다. 부엌에서 다이닝룸으로 넘어갈 때에, 2층으로 향하는 가파른 원형계단을 오르기 위해, 그리고 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거실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 복도를 지나야 했다. 우드 파퀘트리 바닥과 나지막한 천정 이 만들어내는 그 낮고 길다란 세계는 집 안의 모든 공간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따뜻하고 근사한 공간감이었다. 물이 빠진 녹색빛의 패브릭 벽 위에는 클래식한 갓 모양의 벽부등이 있었는데,  복도를 밝히는 불빛은 이곳에서부터 유일하게 퍼져나갔다.




나는 어떤 목적지의 공간에 도달하기 직전에 ‘거쳐가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복도나 전실 같은 공간들이 그것이다. 우리가 우아하고 근사하다고 느끼는 공간들에는 항상 그 기대감을 안고 지나던 복도와 전실들이 있었다. 호텔의 스위트 객실을 떠올려보면 두 짝으로 된 커다란 입구 도어를 열고 들어가서, 콘솔 위에 꽃장식이 놓인 현관에서부터 거실을 지나 침실에 이르기까지, 근사한 전실들과 복도를 거쳐서 지나가도록 설계되어있다. 그 공간의 여정에서 오는 풍요로움의 감정이, 우리가 느끼는 우아함과 근사함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늘날의 집의 원형 속에서는 방과 방끼리 서로 합쳐지고 연결되면서, 이런 근사한 전실들과 몇몇 공간들은 거의 사라진 모습이다. 소유할 수 있는 집의 크기가 한계가 있다 보니 방의 기능들을 합쳐서라도 가능한 한 공간을 크게 쓰길 원한다. 사방으로 열려있는 거실로부터 각자의 사적인 방에 이르기까지 그 두 공간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없다. 문턱을 넘으면 바로 방 안으로 떨어지는 집의 반경 안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 집에서 유독 복도의 존재가 클래식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노란빛으로 채워진 밤의 장면들

조명 이야기


그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둑하지만 따뜻한 오렌지색 빛으로 가득 찼던 밤의 장면들이다. 밤이 되면 온 집안에 있는 불을 모두 켜도 꽤 어둑어둑했다. 그 장면이 낯설었고 눈이 침침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헬렌이 속한 세계에서 밤의 집은 항상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국의 집에 가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집의 원형 속에서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보통은 방 한가운데 하나쯤은 커다랗게 달려있을 조명이, 그 집의 천장에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곳곳의 벽부등, 플로어 스탠드, 테이블 램프들로 집을 밝혔다. 그 조명들은 빛을 벽이나 천정면에 한번 더 부딪히게 해서 빛을 부드럽고 은은하게 퍼져나가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 오렌지 빛으로 가득 찬 밤의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던 나머지, 그 집에 가구가 어땠는지 벽의 색깔이 어떠했는지와 같은 것들은 속속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벽의 색깔은 벽지 위에 오렌지 빛깔의 조명이 한번 덧입혀진 색이다. 내가 기억하는 거실의 장면은 어둑하고 차분한 밤의 공기 속에서 한쪽에는 플로어 스탠드가, 한쪽에는 크리스마스 전나무에 둘러진 작은 전구들이 빛을 내고 있던 모습이다.


다른 친구들과 항상 같이 갔었던 헬렌네 집에 혼자 가서 자고 왔던 날이 있었다. 따뜻한 빛으로 가득 채워진 밤의 거실에서 스웨덴 출신의 가수 아바 ABBA의 노래들이 나오는 맘마미아를 틀어놓고서 소파에 기대서 헬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벌써 꽤 오래된 기억이라 그 날 하루 동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렌지빛으로 가득 찼던 거실에서의 따뜻한 밤의 장면 만은 잔상처럼 남았다.


이 집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내 방에 딱 필요한 만큼만의 빛을 들인다. 헬렌의 집보다는 조금 밝지만, 창밖에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의 방들 보다는 더 낮은 조도의 빛으로 방 안을 채운다. 천정에는 방 전체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등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걸 켜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방에 있는 시간 동안에 낮에는 커튼을 걷어서 햇빛을 방 깊숙이 받아들이고, 밤은 따뜻한 노란 불빛으로 가득 채운다. 아침에는 사선의 빛줄기가 방 안에 드리워지는 모습을 보고, 낮에는 햇빛을 방안 가득히 들이느라 다른 조명을 켜지 않는다. 방안이 바깥보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방 곳곳에 놓인 테이블 램프를 하나씩 켠다. 그러고 나면 낮보다 내밀하고 고요한 밤의 시간이 시작된다.




헬렌네 집에서 보낸 밤의 시간들






내 방을 채우는 빛의 기록들

첫번째 독립공간이었던 싱가폴 집


한국에 돌아온 뒤, 두번째 독립공간


다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집, 나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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