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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 Dec 14. 2020

가게의 방들

방을 닮은 가게들  |  Hay house, Glyptotek


  방이라는 공간은 신기한 시공간이다. 호텔도 가게도 방의 모습을 닮아 있을 때 더 근사해진다. 우리가 ‘발견했다’라고 느끼는 가게들은 누군가의 내밀한 방을 닮았다. 가게라는 공간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개방된 공간이지만서도 역설적으로 더 내밀해질수록, ‘내가 발견했다’라는 사적인 감정이 들수록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헤이 하우스 Hay house는 누군가의 집을 닮았다. 집을 닮았다는 의미는 완벽하지만 닿을 수 없는 이상의 쇼룸이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고 그 안을 구경하는 경험과 닮아있다는 점이다. 코펜하겐의 거리 한복판에서 헤이의 주소지를 찾아가다 발견한 것은 커다란 간판 대신에 석조건물 2층에 걸려있던 까만색 깃발이었다. 1층의 커다란 대문을 지나, 복도로 걸어 들어가서 그 끝에 놓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의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까지 그 잠시 유예된 시간 동안 기대감은 더 부풀어올랐다. ‘찾아’ 가는 몇 걸음 덕에 브랜드와 나 사이에 사적인 유대가 생긴 것 같은 특별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온 헤이의 공간은 내밀한 집을 닮아있었지만 그 안의 공기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사적이지만 적당히 개방적이고, 무심하고 편안한 어떤 적절한 지점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느껴졌다. 집의 현관을 닮은 근사한 전실을 지나서 침실을 한 바퀴 돌고, 부엌을 들렀다가 다이닝 공간을 지나쳐, 거실의 아름다운 원형 계단을 넋 놓고 보며 잠시 소파에 앉아있다가 그 아름다운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랐다. 계단은 1명만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내밀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은 것들을 향해서 가구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그 안을 탐험해 다녔다. 헤이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어떤 명확한 동선을 따라가며 보도록 정해주지 않고, 여느 가구점처럼 내가 지나다니는 곳마다 직원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따라다니는 일도 없었다. 가구를 만져보고 앉아보고 사용해보도록 무심히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약간 헝클어트리더라도 괜찮을법한 그런 편안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오래된 친구의 아파트같이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창립자 롤프 헤이의 말처럼 내밀하고 다정한 공간이었다. (* 매거진B, Hay편의 인터뷰 중에서)


이리저리 소파를 옮겨앉으며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메모장에 간단히 기록해두었다가,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 다시 옮긴 공간의 기록.




  책을 읽다가 발견한 근사한 단어가 있다. ‘분더캄머 Wunderkammer, 호기심의 방’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에, 진귀하고 신기한 사물들을 수집해 모아두는 호화로운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을 ‘경이의 방’, ‘호기심의 방’으로 불렀다고 한다. 말 그 자체로 어떤 광경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그 단어를 접한 순간에 떠올랐던 곳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 ‘호기심의 방’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립토테크 미술관 안에 있던 뮤지엄샵은 깊고 짙은 초록색으로 칠해진 벽면과 정원 너머로 보이는 이국적인 열대 식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호기심의 방 안에서는 어떤 고고학자의 방을 탐험하면서 그의 진귀한 수집품들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빈치 코드 같은 분위기의 영화에서 마치 카메라의 프레임이 사물에서 사물로 클로즈업하며 옮겨 다니는, 신비로운 분위기 속 낮고 내밀한 시선들처럼 물건과 물건 사이를 탐험해 다녔다.


  이국에서 온 낯선 장신구들, 손그림으로 기록한 식물도감들, 명화를 다룬 두꺼운 예술책들, 곳곳에 놓인 흉상과 석고조각품들, 소소한 일상 문구 용품들이 뒤섞여있는 방안을 찬찬히 탐험했다. 손에 닿는 높이의 진열대에서부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하는 높은 벽장 위 선반으로 시선을 옮겨 다니며, 나무 프레임으로 짜여진 클래식한 유리 장식장 안도 들여다보았다가, 가게 안쪽에 위치한 좀 더 내밀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도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미술관 샵들은 세련되고 새초롬한 얼굴로 갖고 싶은 물건들의 아름다운 배열을 선보이는 자본주의적인 방에 가까웠는데, 이곳에서는 왠지 누군가의 방으로 걸어 들어와 수집품을 구경하는 듯한 사적인 기분이 들어 가게 안이 왠지 특별한 시공간 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친구의 아파트를 닮은 헤이의 집

Hay house, 19/10/14





미술관 속 호기심의 방

Glyptotek, museum shop, 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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