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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Jul 04. 2024

얼룩 고양이와 새끼들, 그 짧은 만남

낯선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건 지난 5월 어느 날이었다. 순한 눈빛이었다. 흰 털 바탕에 연갈색 털이 어울렸고, 작고 앳된 얼굴에 몸매는 날렵했다. 맑은 햇볕 아래 휜 털이 깨끗했다. 길바닥을 굴러도 자기 몸 관리를 할 줄 아는 놈이지 싶었다. 나로 말하자면 도시에 반려묘를 두고 온 터이기에 쫓아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전부터 봐왔다. 녀석은 머리가 크고 몸은 온통 까맣다. 털은 엉겨있고 몰골은 꾀죄죄하다.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꼬리 중간이 잘록한데 노숙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부스스하게 살찐 몸으로 느릿느릿 걷는다. 뒤뜰에서 앞마당으로 늘 일정한 경로를 따라 사라진다.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어디까지나 사람 얘기다. 검둥이와 마주치면 반갑지는 않다. 마주치기 꺼려져 외면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떨떠름함을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차에 얼룩이를 만났다. 날렵하고 말간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이것도 본능이다.

도시에 두고 온 우리 집 샴고양이 홍이. 보고 싶다

보름 전쯤이었을까? 야외테이블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얼룩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아예 두어 발치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만만해 보였나? 그런 생각을 하느라 내가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이면 신경 쓰였을 텐데 어쩐지 싫지 않았다. 다가와 냄새를 맡다가 발바닥에 묻은 페인트를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텃밭에 물을 주고 뒤뜰로 이동하던 중 뭔가 움직임을 느꼈다. 쥐? 새? 그 형체나 동작이 컸으므로 나는 꽤나 놀랐다. 눈을 돌려 가장 구석진, 돌 탁자가 놓여있는 곳을 바라보다 흠칫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놀랐지만 나 때문에 그들도 놀랐다.


아주 작은 고양이 네 마리가 뒤엉켜 놀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누워서 버둥대다가 서로 올라타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나를 보고 놀라 돌 탁자 밑으로 숨었다. 누운 채로 천천히 고개만 돌리는 커다란 몸집의 어미는 바로 얼룩이였다. 얼룩이는 태연했다.


그저 옆으로 누운 채 마치 ‘네가 여긴 웬일이야?’라는 눈빛으로 고개만 돌렸다. 내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가만히 있음으로써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것만 같았다. ‘이 녀석 그때 이미 새끼를 배고 있었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동 없음에 다시 새끼들은 쉬었다가 놀고, 놀다가 쉬기를 반복했고 그러다가 어미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미는 조용히 쉼터가 돼 주었다.


날렵한 몸뚱이 때문에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았음에도 말이다. 어디서 아이를 낳고 이만큼 키운 것일까? 페인트칠하며 마주한 게 일주일 남짓, 새끼들은 벌써 꽤 자라 있었다. 어미젖을 찾아 투닥거리며 서로 밀치는 걸 보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섰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동물을 돌볼 자신이 없다. 일단 키우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기엔 생활에 제약이 너무 크다. 때맞춰 먹이를 주어야 하고 집을 비울 수도 없다. 그래서 개도 닭도 키우지 않고 있다. 더 나이 들어 집에만 있게 되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지?’ 싶었다.


그냥 모른 체하기로 마음먹었다. 모처럼 글을 쓰겠다고 거실 탁자에 앉아 꼼지락거리다가 기어코 밤을 새웠다. 새벽 어스름에 얼핏 창밖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모습이 어렴풋했다.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창가로 다가갔다. 놀랍게도 폴짝거리는 새끼 고양이들이었다. 어미를 닮은 얼룩무늬 새끼들이 앞마당에서 뒹굴고 엉키며 힘차게 뛰놀고 있었다.


새들도 겨우 깨어나 아무런 방해가 없는 시간, 고양이들은 스스럼이 없었다. 터져 나오는 생기를 감추지 않고 겅중겅중 뛰었다. 오직 뛰고 노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무슨 영문인지 겁을 먹고 데크 밑으로 숨었다가 다시 튀어나와 세워놓은 승용차 밑으로 연신 들락거렸다.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힘차게 발을 굴렀다.


멀리서 바라보는 내 입가에 반사적으로 미소가 흘렀다. 순간 녀석들이 부러웠다. 여기 온 지 삼 년, 나는 마당에서 저리 즐겁게 뛰어논 적이 없었다. 심고, 뽑고, 깎고, 자르고, 키우는 데 힘쓰느라 신나게 뒹굴지 못했다. 마당은 관망의 대상이었다. 그렇다. 마당은 저렇게 쓰는 것이다.


해가 뜨기 전 잠이 들었고 깨어선 그 새벽을 잊고 지냈다. 어릴 적 친구가 며칠을 머물다 갔고 장맛비가 시작됐다. 다시 생각났을 땐 이미 고양이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간혹 개인 날도 있었지만 볼 수 없었다. 폭우와 강풍, 장마에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계속되는 궂은 날씨가 못마땅했다.


종일 비 내리고 땅이 젖었다. 흙은 물러져서 신바닥이 물컹거렸다. 텃밭에 쓰러진 옥수숫대를 세우려다 두둑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그때 홀연히 검둥이가 지나갔다. 여전히 앞마당 쪽으로 터벅터벅 순례하는 중이었다. 동시에 얼룩이가 떠올랐다. 폴짝거리던 새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텃밭에서 나오지 못한 채 한동안 그 새벽을 돌려보았다.


장마는 길어질 예정이다. 긴 장마 끝에 성큼 자란 모습으로 다시 온다면, 뽀송뽀송 마른 마당으로 겅중겅중 뛰어온다면, 마당에서 평화롭게 달아나고 쫓아가고 맴돌고 올라타며 논다면, 땅바닥에 배를 깔고 고개만 젖힌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면, 이번엔 슬그머니 아는 척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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