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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방순미

짧은 시 깊은 감동, 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24


뼛속 녹아들어

떼어 낼 수 없는

상고대 그 얼음꽃

ㅡ 그리움 / 방순미


Nostalgia

by Bang Soon-mi


Seeping into my bones,

never to be torn away,

hoarfrost—those frozen blossoms.

♧ 우리에게 상고대가 사라지면 어떨까? 삶이 무미해질지 곤란해질지 대단한 거 같지는 않아 보인다. 상고대를 평생 보지 못한 이도 있으니 말이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데 익스트림 롱샷(먼거리 촬영)이라 설경인지 상고대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덕유산과 한라산 정상이니 상고대가 피어 있었을 것이다. 상고대 절경에서 태백, 소백이 빠지면 매우 섭섭하다. 오죽했으면 백(白)산이 했으랴.

금방 상고대는 '핀다' 했다. 내리지 않고 핀다. 겨울 산행의 백미는 넋을 잃을 정도로 환상적인 나무 얼음꽃이다. 겨울 정령이 늦가을에 산을 넘어오면서, 또 봄 정령이 온다는 전갈을 받고 물러나면서 차거운 입김으로 남긴 희디흰 얼음꽃밭이다. 간혹 강의 요정 에코가 춘천 소양강은 지나면서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정작 한 겨울보다 환절기에 주로 생성되고 불어오는 쪽으로 핀다.

간혹 헷갈리기도 하는데 눈이 쌓인 것은 눈꽃 곧 설화(雪花), 쌓였던 눈이 얼면서 얼음 알갱이가 줄기에 매달리는 것은 빙화(氷花)다. 그러나 상고대는 재료가 대기 중의 차가운 수증기다. 그러니 미세한 물방울이 얼어붙은 상고대와 설화는 완전히 다르다.

기상학 사전에는 '일반적으로 상고대는 영하 6℃ 이하로 기온이 낮고 3m/s 정도의 바람이 약하고 안정된 공기층에서, 상대습도가 90% 이상으로 공기가 충분한 습할 때, 잘 형성된다. 통상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


상고대 이름이 한자어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서리와 높은 지대에 연관하여 상고대(霜高帶)로 하는데 분명이 토박이어 사전에는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수록하고 있다. 옛말인 ‘산고대(아래 아)'는 17세기 문헌에 나타나고 서리꽃(화상花霜)으로 부기해두었다.

이외 상고대는 다양한 이름을 지닌다. 나무에 생긴 서리라 하여 '수상(樹霜)', 작은 얼음 이미지로는 수빙(樹氷), 큰 것은 '조빙(粗氷)' 무빙(霧氷)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고개 숙이며 늘어진 나무 얼음꽃이 마치 벼이삭처럼 보여 수가(樹稼)라고도 한다. 작명 상상력에 감탄한다. 영어로는 서리라는 의미로 'Air Hoar', 연한 서리라고 하여 Soft Rime, 큰 것은 Hard Rime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까다로운 메커니즘(machanism)으로 만들어지고 이름 붙여진 상고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지 설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만들어진 얼음(서리) 꽃이어서인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시인은 산악인이기도 하다. 보태어 표현하면 설악산을 누구의 카페 드나들듯 했다. 경이로운 상고대를 자주 접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시작노트를 썼다.

'그리움이란 생각을 하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난데없이 찾아드는 그리움으로 애꿎은 술로 쓸쓸한 날을 보내기도 했다.

산을 좋아하다 보니 겨울에 능선 꼭대기 찬바람 맞으며 눈부시게 핀 상고대를 자주 만난다. 그때 간밤 힘들게 했던 그리움은 이렇게 아름다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며 억지로 떼어낸다면 서로 상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서처럼 생각이 나면 가슴에서 상고대처럼 피고 빛을 받으면 흔적 없이 사라지듯 그리움은 내게 얼음꽃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김경미 교수는 이 시를 번역하면서 번역어로 선택한 의미를 자세히 보내왔다.

'상고대에 스며든 '그리움'은 단순한 과거 회상에 머무르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서늘하고, 동시에 애틋함이 배어든 복합적인 정서로 다가온다. 시인은 이러한 '그리움'을 나뭇가지 위에 맺힌 얼음 결정체인 "상고대"(hoarfrost)라는 자연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사실 이 시의 제목인 "그리움"은 영어로 "longing", "yearning", "remembrance" 등 여러 단어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그리움'은 단순한 갈망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애틋한 감정까지도 담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이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로 "Nostalgia"를 선택해 보고자 한다.

또한 "뼛속 녹아들어"라는 구절은 단순히 "melting"(녹아드는)이 아니라 "seeping(스며드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아주 서서히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결국에는 '뼛속'에 각인되는 가슴 절절한 그리움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 시에서의 그리움은 결국 "떼어낼 수 없는" 운명적인 애착과 감정으로 귀결된다. 마침내 "상고대"의 형상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그리고 이 그리움의 "상고대"는 차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얼음꽃"의 결정체로 구현되어 있다.'


시인도 시인이거니와 김교수의 해설도 그리움이 절절하다. 내 시각으로는 기상 과학이 시문학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서두에 필자가 언급한 말을 취소해야겠다. 우리에게 상고대가 사라져도 대단한 것 같지는 않다는 말.
깊이 생각해보니, 상고대가 없어진다는 건 과학으로는 지구온난화가 심해진다는 뜻이니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유엔정부간 기후위원회(IPCC)가 세기말까지 전 지구의 평균기온은 4.6℃ 상승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여기에 한반도 기온은 세계 평균보다 더 높이 상승하여 5.7℃ 상승할 것이라 우리나라 기상청이 내다봤다. 이럴 경우 태백산맥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전지역이 아열대 기후구로 바뀐다. 겨울이 사라지고 여름이 길어져 식물 생태가 대폭 바뀐다. 상고대는 일식만큼이나 드물게 일어난다.
메타포로 쓰인 과학적 상고대가 인문학적 그리움이라면 그것 없이 사는 삶이란 얼마나 또 무미건조할까? 기억보다 추억에서 돋아나는 그리움은 고독한 신이 인간에게 준 아름답고 따뜻한 시간의 여백이다.
※ 방순미: 1962년 충남 당진 출생. 2010년[심상]신인상. 시집 [물고기 화석]외 3권, 산문집 [백두대간, 네가 있어 황홀하다]. 현재 <한국시인협회>, <우리시진흥회>, <물소리시낭송회 >외 다수 활동 중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사진 임흥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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