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급식백선생 Dec 15. 2020

운전

그동안 길바닥에 쏟아부은 돈과 시간과 체력은 얼마만큼일까?

[명사] 운전(運轉)
기계나 자동차 따위를 움직여 부림.



 나는 매일 50km 남짓한 거리를 혼자 운전하며 출퇴근한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중소도시. 그리고 나의 직장은 거기에서 좀 더 떨어진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나에게 매일의 직장생활은 운전으로 시작해서 운전으로 끝나는 것이다. 초창기 몇 년은 같은 직장 내의 구성원들끼리 카풀팀을 구성하여 출퇴근을 하였지만, 개인적인 성향 덕분에 이내 홀로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1시간 30분씩 혼자 운전하며 출퇴근한 것도 벌써 5년 남짓. 그동안 길바닥에 쏟아부은 시간이며, 기름값이며, 소진된 체력은 어느 정도 일지 쉽사리 가늠이 안된다.


 직장을 선택할 때 출퇴근 거리는 중대사항이다. 사회 초년생인 경우는 웬만하면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고. 가정을 꾸리고 난 경우라면 주말부부를 하던지, 아예 생활 근거지를 통째로 옮기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면 사람이 지치고,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가장 계산이 편한 것은 교통비. 거리에 따른 기름값을 일할 계산하고, 매일 운행하는 거리에 따른 차량의 감가상각을 따지면 답이 나온다. 우리 집은 두 부부가 각자 출퇴근을 하던 상황이라 매달 주유비에 책정되는 생활비만 해도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기름을 많이 소비하며 환경파괴의 공범으로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덤이다.


 운전을 할 때 소비되는 심력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테지만, 나는 50km 거리를 운전할 때에도 중간에 꼭 한 번은 쉬어야 안전운전이 가능하다. 특히 퇴근길에는 한번 쉬어주지 않으면 졸음운전으로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 예전에 카풀을 했을 때는 90% 이상의 확률로 차 안에서 잠을 잤으니. 혼자서 운전하는 게 체력적으로 조금은 버거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제일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이다. 매일매일 1시간 30분씩 운전하는 것. 이는 마치 남들은 하루 24시간씩, 나는 하루 22.5시간씩 살고 있는 꼴이 아닌가? 남의 차를 얻어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그 시간에 잠을 자던지, 뭐라도 들여다볼 수 있을 텐데. 앞만 보고 운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꼼짝없이 낭비되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만사 온갖 일에 관심과 흥미를 느낀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재미있는 것 투성이라, 가끔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아내는 잠이 들 때쯤이면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나는 꾸벅꾸벅 잠이 올 때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이것저것 살펴보다 결국 졸음에 못 이겨 스마트폰을 떨구고 나서야 잠에 드는 스타일이다.


 그런 생활습관을 가진 터라 일상에서 '사색'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존재할 틈이 없었다. 생각에도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주위에 관심 쏟을게 많은 상황에서는 좀처럼 머리를 비울 겨를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루 1시간 30분의 운전은 나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꼼짝없이 앞만 보며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듣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것이다.


 찰나의 생각들은 마치 꿈과도 같아서 번뜩이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잔뜩 실행한 뒤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스치는 생각들은 말 그대로 스치며 사그라진다. 그런데 매일 반복해서 운전을 하다 보면 그렇게 스치는 생각들이 두 번, 세 번 머릿속에 계속 맴돌게 된다. 출근할 때 한번, 퇴근할 때 한번, 며칠이 지나서 다시 한번.


'한번 적어서 정리해봐야겠다.'


 어느 순간 복잡해져 버린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스마트폰 메모장에 수많은 오타를 내가며 떠듬떠듬 쓴 생애 첫 창작품을 보니 작은 희열이 느껴졌다. 이후로 같은 패턴이 얼마간 계속되었다. 운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반복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해 보고. 그렇게 평생 한 번도 열망해 본 적 없었던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고 결국은 브런치 한구석에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다고 했던가?

누구에게도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장거리 출퇴근 이건만, 한편으로는 생각의 진원이 되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름값과 시간과 체력을 조금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