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 피천득의 <인연>이 사무치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의 <인연> 중 저 글귀가 사무치게 생각나는 밤이다.
최근에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대한민국 지영이를 생각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림책 심리치유를 공부하면서 강연 주제로 '김지영을 위하여'라고 잡았고 우리 모두의 지영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는 날들이었다.
이번에는 윤희다.
어제 친구들과 오랜만에 밤마실로 선택한 영화 <윤희에게>를 보고는 마음이 복잡했다. 정보 없이 보러 간 심야영화가 마음을 흐트러뜨려버렸다. 분명, 술 대신 선택한 '낭만'이었는데.
중년의 윤희(김희애. 김희애라 다행이다. 다른 배우였으면 무게감이 덜할 것 같았다)는 늘 똑같은 팍팍한 삶에서 탈출할 방법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혼을 하였고 고등학생 딸 새봄이와 평범한 일상에 회사의 급식소에서 일하는 고된 삶이기도 하고 외로움이 덕지덕지 온몸에서 떨어지고 있는 짠한 삶이기도 하다.
김희애라서 가능한... 이런 외로움과 사연 있을 것 같은 엄마의 공기...
새봄 이가 먼저 받게 된 일본에 사는 쥰에게서 온 편지. 윤희에게 온 편지를 새봄이는 몰래 먼저 본 것이다. 엄마를 부추겨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데 시간의 흐름과 마음의 격랑을 보여주는 기차 씬이 한없이 인상적이었다. 그간 겨울밤의 폭풍 같은 시간들은 절제되고 공중에 흝어져 기차 안에서 바라본 기차 씬에서만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영화가 재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상업영화의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냥 더 더 재밌길 바랬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 영화니깐. 여러 뭐로 아쉽기는 하다.
결과와 현재만을 보여주고 군더더기 없이 여백을 두었기에 얼마나 윤희와 쥰이 격정적인 사랑을 했는지는 오롯이 관객에게 맡겨진다. 그 부분이 너무 거세되어서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퀴어라는 장르로 묶여있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고통이 있는 이별을 예상할 수는 있으나... 앞에 현재의 윤희와 쥰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할애했다
클라이맥스는 아쉽게 짧고 피천득의 인연처럼 아니 만났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 같았다. 오히려 아니 만난 것 같은 그런 만남이었긴 하다. 그러나 영화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니, 만남을 통해 용기를 가졌는지는 새봄이 와 여행을 통해 용기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디딘 듯 떨림과 희망을 안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단 한 번의 사랑, 이별 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다시 살아지는 두 여자. 윤희의 중년으로서의 성장 이야기 같다.
영화 중 '만월'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초승달을 보며 만월을 이야기한다.
'윤희에게' 이전 제목이 '만월'이라고 했다. 초승달이나 그믐달이나 달은 그대로인데 우리가 보는 달의 형태는 다르게 보인다.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도 있겠고 꽉 찬 달만큼이나 이제는 꼭 한번 봐야만 하는 그리움의 한계치를 넘어선 둘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지는 때가
쥰이 위와 같은 이유로 편지를 썼다고 했다
쥰은 그래로의 삶을 지속하고 있었고 윤희는 도망간 이로 예상을 해본다. 그래서 그 이후의 삶은 형벌이라고 윤희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 둘은 현재 진행형의 사랑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늘 그리워하고
늘 꿈에서 함께하고
늘 마음이 함께하는 삶
멀리 있어도 둘은 한 번도 서로를 포기한 적이 없는 듯하다.
눈이 언제 그치나.
눈은 언제 오나.
당장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습관처럼, 주문을 외우듯 읊조린다.
그리워하는 것에 대하여 자포자기하듯 내뱉어지는 그녀들의 말....
절제와 순백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눈이 시종일관 배경으로 나와 잠시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잔상이 남아 글도 쓰고 싶어 졌다.
미소가 없는 윤희가 영화의 마지막엔 웃는다. '나'를 넣어가면서 자기표현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도 한다. 윤희의 성장이다.
우리 주변 윤희처럼 나를 숨기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
편견에, 다름에 상처 안고 꽁꽁 숨기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윤희들. 언제쯤 우리는 너그러워질까, 언제쯤 우리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함이 발휘될까.
윤희의 사랑은
괜.찮.다
괜 찮다
괜찮 다....
어떠한 사랑도 괜찮다.
위로를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