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페미니즘=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 (두산백과사전)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시스템에 균형을 이루자고 하는 것. 불평등한 것을 평등한 것으로 제자리를 찾자고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
'페미니즘'이네 '여성 혐오'네 이런 류의 단어들을 끄집어내서 문학을 흠집 내는 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들인가 생각해본다. 아무도 안 찾는 곳에서 한번 거르자면 시작은 내가 예측하는 그 사이트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싸우고 싶어 안달 나서 조롱하고 비웃고 비하하고 비난하는 그 사이트.
3년이 지났지만 조금도 안 변했다고 할 수 있고 아주 조금은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내가 변했으니까 내 기준으로는 그때 상황과 조금은 바뀌었다. 근처 도서관에서 페미니즘 강의 10강을 수업을 지역민을 위해 만들기도 하고 여성주의 책도 아주 많이 읽었으며 여성주의=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감각이라는 것은 이제 조금 익숙하지만 단어의 거부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익숙함이란 것은 내가 아이를 낳아서 달라진 경우이다. 평등과 균형을 생각하면서 살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드디어 한달음에 읽기 시작한 82년생 김지영.
잡음이 잦아들 때쯤 혼자 곱씹어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지 어언 3년째다.
내 사랑 정유미와 공유가 나온다길래 , 개봉한다길래 책을 잡고 3시간 만에 완독 하였다.
표지에 '조남주 장편소설'이라는 소제목이 무색하다. 소설이 아닌 것 같은 소설이라서.
이미 문학의 가치는 넘어섰다고 본다. 왈가왈부 이슈들이 많기 때문이다.
책이 이슈화되기는 참으로 어려워서 이 자체로도 매우 가치가 있다. 영화도 많이 봤으면 좋겠지만 역시나 말하기가 딱 좋은 주제라서 당분간 이슈가 될 것 같으다.
( 블로그에 쓴 글을 옮겼습니다. 그 사이에 시간이 조금 흘러 영화는 개봉하였고 매우 호평을 받고 있네요 )
3시간 만에 읽히는 소설책에 이 사회가 할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리되지 않은 우리 문제, 정립되지 않은 시스템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문체와 스토리는 극적이거나 재미있거나 흥미롭지가 않았다. 그래서 실망을 했다. 그런데 잔상이 남고 과제를 던져준다. 어디에나 있는 김지영, 내가 지나왔던 김지영의 시간들... 내 딸내미가 겪을 김지영의 걱정들.
이 소설의 발화점들은 각주에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이유와 근거와 팩트로 우리 김지영이가 이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소설 속 각주들. 사실'빙의' 소재가 어색하긴 했으나 어제 본 영화 '조커'로 이해가 되었다. 쌓이고 쌓인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과 상처들, 삭히고 삭혀 이상 물질이 되어 어느 순간 발현되는 내 안의 정신병....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김지영 대신 내 이름 석자를 넣어도 전혀 어색함 1도 없는 소설이다.
누가 김지영이고 누가 박*혜인지 모를 정도다.
지영이의 엄마, 미숙 여사가 딸 셋 아니 넷을 품고 성별을 알았을 때 엉엉 울었다는 것과 세상 빛을 보기 전에 죽은 아기도 딸이었다는 것마저 닮았다. 우리 가족이 그랬다. 독자의 집에 줄줄이 셋이 딸이었고 마지막 빛을 못한 아니도 딸이어서 엄마는 이상한 죄책감을 가진채 할머니께 모진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다지.
20대 광고대행사에서 억지로 상사와 블루스를 치며 엄청난 수치심과 너무나 싫은 그 감정들 때문에 눈도 마주치기 싫었던 일들... 야근 후 길을 가다 어느 미친 새끼가 음담패설을 하며 지나가도 큰소리 한 번 못 냈던 크고 작은 봉변들을 나열을 하자면 수도 없다. 여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에 당했던 일들이라고 굳이 명명 지어 놓고 얼버무려본다.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흔히 있는 일이라고 친구들끼리도 말하며 지나갔었다.
억울하다기보다는 적어도 한 번씩은 겪어볼 만한 일들이라 그러려니 넘어갔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김지영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시험 쳐서 들어간 회사에서도 이 애가 임신하면 곧 그만두겠지.... 못 미더워지는 나이 때가 오면 잠깐의 공백기에 자리 없애기는 부지기수다. 내가 오너라도, 오늘내일 벌어먹고사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어쩔 수가 없다고 인정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사회가 전반적으로 신뢰하고 배려하고 그런 분위기에 기본적인 법제도가 받쳐준다면 서로 미안해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을 텐데.
- 일본, 베트남 베스트셀러를 달리고 있다/ 사진은 일본판 김지영-
영화에서는 김지영이 조금 더 섬세하게 그려졌으면 좋겠다. 너무 담담하게 그려낸 것이 사실 심심하다. 어쩌면 이걸 노렸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더 극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상황과 감정들이 섬세하고 세밀했으면 좋겠다. 현실은 마냥 담담하지만은 않다. 굉장히 절박한 사람도 있고 감정적으로 폭발하여 망가진 가족도 있으니까.
의도된 소설이라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실 섬세한 사람이 겪는 상처와 김지영 이후의 여성들이 겪는 부조리는 다른 방향으로 더 큰 것일 수 있겠다.
40대 정신과 의사가 화자이며 마무리를 짓는 뒷부분에 선심 쓰듯 이해와 공감을 이야기하는데 역시나 허를 찌르며 소설은 끝났다.
자기도 미처 몰랐던 세상이 있더라 라고 이야기하면서 동료 의사인 아내의 경력단절을 그저 '방관'하기만 하며, 일 잘하고 괜찮은 직원이 전전긍긍하며 사표를 냈더니 역시 육아문제 해결안 된 여자는 안된다며 이야기를 맺는다.
( 다행히 영화가 더 낫다는 사람이 많으며 엔딩은 이런 식이 아니라서 사회적 책임을 3년의 시간 동안 더 갖게 된 듯한 원본 편집. 맘에 듭니다)
요즘 여자들 괜찮지 않아?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이제 많이 좋아졌잖아.
요즘 여자들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
남자들도 맞고 산다!
너는 편해서 지금 그런 말이 나오는데 말이야~
옛날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냐.
네가 맞고 자랐니? 성폭력을 당했니?
심지어 지영이의 남편은 100점인데.
이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기엔 진짜 그 운동하는 분들에게 죄송한 용어다. 그냥 와이프나 내 여자 사람 친구, 누나와 여동생,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각주에 근거 달고 담담히 소리 내고 싶었던 것뿐이다.
공감 못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한국 여자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15년 차 만년과장인데 결혼은 안 할 거지? 확답을 받으려고 사적인 영역을 수도 없이 개입하는 회사. 일찍이 결혼하여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신없이 지나간 10년 후 이제 조금 고비를 넘겼는데 요즘 친구들은 일하고 싶고, 남편이 저렇게나 도와주는 데 힘들어하는 것에 대하 공감이 안 되는 사람도 있었다.
<82년 김지영> 이 대한민국 대표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세대를 지나면서 김지영이 어떤 고민들로 힘든 시기들을 괴로워했고 고민했는지 조금을 알 수 있는.. 경험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부디 대결의 구도에서 이해와 시스템 재점검의 관점으로 이해되길.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내는 일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도 아니었지만 김지영 씨에게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고 진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내 수입으로 내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보람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145p)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 부블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쩐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라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살림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149p)
- 아이와 성평등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그림책- ( 더 업데이트해야겠네요)
산딸기 크림 봉봉
돼지책
종이봉지 공주
용감한 아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