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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Dec 27. 2018

그래, 힘들지만 잘 왔다!

겨울 제주도 여행 02

아이 둘을 혼자 데리고 여행을 간다는 것은 예상대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들을 챙기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추운 날씨까지 더해지니 짐도 늘어났다. 우리가 제주도로 떠나기로 한 날은 서울•경기권이 영하 14도 정도의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날이었다. 그나마 제주도는 영하 3~4도 정도라는 소식에 '남쪽은 따뜻해서(?) 다행이다' 라며 마음의 위안으로 삼기도 했다.


출발 당일 아침.

집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까지는 출근 전 남편의 도움으로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율의 어린이집 친구 W와 그의 누나 S, 이 남매의 엄마와 함께 공항버스를 타고 김포 공항으로 갔다. 다행히 버스 안에서 린은 아기띠 속에서 잠이 들었고, 율은 공항버스를 탄 것에 흥분하긴 했지만 주의를 주었더니 크게 떠들지는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출국 수속을 하고 짐을 맡긴 후, 1층 카페테리아로 가 다 함께 조금 늦은 아침을 먹었다. 카페테리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깨달은 것은, 어른 2명에 아이 4명의 구성이 어른 1명에 아이 2명일 때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어른 A가 카페테리아에서 주문한  밥을 가져올 때나 화장실에 갈 때, 어른 B가 아이들과 남아서 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율과 린을 데리고 왔다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운명이었겠다고 생각하니 이번 여행 동지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다.


제주도까지의 1시간 동안 비행은 아이들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스티커 책과 간식으로 수월하게 보냈다. 사실 린은 태어나고 첫 비행이었기 때문에 기압차가 걱정되어 이륙 타이밍에 가리개로 가리고 수유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최상의 컨디션으로 두리번거리며 기내 구경도 하고 일하는 승무원들에게 웃어주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비행기를 내릴 때 아이 둘과 짐을 혼자 챙기는 나를 보고 뒤에 있던 노부부가 도와주시며 '에구, 엄마가 참 용감하네!' 하고 한 마디 건네셨다. 별것 아니지만 뭔가 마음을 알아주는 칭찬 같아 제주도에 다녀오는 내내 큰 힘이 되었다.


제주도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서 율의 모습.

제주 공항에서 휘닉스 아일랜드까지 셔틀버스로 한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방에다 짐을 풀면서 S와W의 엄마에게 "지금 도착했는데, 여행 다 끝내고 집에 가는 날의 피로가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짐만 풀고는 휘닉스 아일랜드 안에 있는 섭지코지를 한 바퀴 산책하러 나섰다. 서울에 비해 덜 춥다고는 하나 바닷바람이 매섭다 보니 모자, 마스크, 장갑, 목도리로 완전 무장을 했다. 아이들은 추워도 밖으로 나가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셋이 누가 먼저 가나 달리기를 했다가, 줄을 서서 기차놀이를 했다가, 나뭇가지를 주워 이곳저곳을 찔러보기도 하며 본인들의 방식으로 이 산책을 즐긴다. 겨울 바다도 보고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도 보고 있는데 나풀나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도 오고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되어가니 기온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 다시 실내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섭지코지 산책. 겨울 제주도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중이다.

방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집에서 챙겨 온 몇 가지의 장난감으로 놀다가 싫증이 나면 그림도 그리고 색종이 접기도 하며 집에서처럼 저녁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에서는 가끔 친구들과 놀다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함께 여행을 와서는 다툼 없이 깔깔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니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왔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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