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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seol Sep 24. 2024

발코니 가든 프로젝트

철둑 너머 할머니의 화단에는 채송화며 봉숭아, 샐비어, 맨드라미, 과꽃 같은 일년생 꽃들이 여름까지 자라고 피었다. 늘 응달인 축축한 화단에서 식물들은 오직 할머니의 정성을 먹고 자랐다. 고기를 먹지 않아 보살이고 몸이 영 부실한 할머니가 조막만한 손으로 꽃을 피우고 꽃씨를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또 꽃을 피우길 반복했다. 땅이 모자란 할머니는 시장에서 플라스틱 화분이나 스티로폼 상자를 주워다가 거기에도 꽃씨를 심었다. 화분에 꽃이 피면 할머니는 집 밖 담장 아래 그것들을 나란히 세워두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할머니의 담장 아래에서는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제작 각인 꽃들이 사람보다 먼저 손님을 맞았다. 언젠가 엄마가 알뜰살뜰 키운 것들을 왜 집 밖에 내놓느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웃으라고.
지나가는 사람들, 이쁜 꽃 보고 한번씩 웃고 가라고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마주하면 언제나 기분이 산뜻해지는 장면 중에 하나를 책에서 만나니 참 반가웠다. 


세비야 여행 갔을 때, 유럽 건물 양식이 색다르고 멋지기도 했는데 집집마다 발코니에 생기 가득 꽃과 식물들이 잔뜩 나와 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식물을 야외에 두면 빛과 바람을 양껏 받으며 쑥쑥 자랄 수 있으니 식물에겐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걸 혼자 향유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유하려는 마음들이 보여서 더 아름다웠다.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는 베란다나 집 앞에 쫑쫑쫑 놓인 화분들이 다르게 보였다. 골목 골목 걸어다니며 관찰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 혼자의 발코니 가든 프로젝트!


집마다 가게마다 화분이 특히 많이 나와 있는 동네들은 유독 애정이 갔고, 계단마다 작은 화분을 하나씩 올려둔 집도 정겨웠다.  

식물 놓인 집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식물의 종류도 놓인 모양도 다르니 사람이 특성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밖에서 보며 그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까 혼자서 그려보곤 했다. 해방촌에 살 때 한 집은 멀리서 보면 유독 한 곳만 초록이 무성한 곳이 있었는데, 언니랑 지나가면서 저 집주인분은 식물을 진짜 잘 키우신다- 했는데 나중에 해방촌 로컬 잡지에 실린 그 분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덤덤한 말투로 책의 문장과 비슷한 답변을 하셨던걸로 기억한다. 


또 겨우내 꽃다발을 꼭꼭 꽂아두시던 수영장 앞 화원도 떠올랐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보통 화원 앞에 식물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있는데, 겨울에는 대부분이 자취를 감춘다. 조금은 삭막하고 어깨가 자연스레 움츠러드는 겨울날에는 발코니 정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무심하게 한통 툭 빼두신 것 같지만 부지런히 꽃을 내놓는 따뜻한 마음 덕분에 아침 수영 가는 길, 책 반납 하러 오가는 길이 환해졌다. 


봄이 되면 꼭 화분이나 꽃을 사러 가야지 생각했는데 날씨가 풀인 초봄에는 이번 겨울 정말이지 너무 길었다고, 봄을 즐겨야한다며 열심히 밖으로 쏘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어느날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떠올라서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꽃집에 들렀다. 겨울에 꽃들 밖에 꽂아두신 거 봤다고, 감사했다고 소심한 인사와 함께 하얀 겹꽃이 오밀조밀 귀여운 포트를 사왔다. 


발코니 정원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을 얼굴을 상상하곤 했지만 이렇게 직접 감사하다 전할 길은 잘 없었는데. 좋은 풍경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좋았던 날은 더 좋아졌고 힘들 때도 문득 발견하곤 싱긋 미소 짓고 앞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고 전하고 싶었는데. 뭔가 그동안의 마음의 빚을 갚은 느낌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보이는 발코니는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함께 공유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올해 봄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자라난 야생화















약간의 어수선함과 쿨함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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