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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Aug 16. 2023

당신의 걸음에 발맞춥니다.

새벽 4시 57분 아직 사위가 어두운 길을 혼자 달려 나갑니다. 평상시 듣던 블루투스 이어폰도 착용하지 않은 채 식구들일 깰 새라 조용히 빠져나왔던 길입니다. 늘 달리던 길이지만 혼자 달리는 길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은 건 제가 여자이기 때문이지요. 갤럭시 워치 광고에서 밤길에 조깅하는 여자러너의 광고를 내보내고, 런던에서는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했다죠. 하지만 대한민국의 밤길은 그래도 왠지 뛰어볼 만하니 다행입니다. 조심은 해야 하지만요. 



혼자 조바심 내며 걷던 길에서 안심함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목적지였던 ‘서울식물원’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서울마곡식물원은 제가 사는 곳에서 2km 정도 떨어졌는데, 공원 밖의 둘레길은 2km 정도 됩니다. 집에서 출발, 안의 둘레길을 돌고 다시 돌아오면 도합 6km의 러닝을 완주하게 됩니다. 평상시의 페이스대로라면 35~40분 정도가 걸리니 유산소 운동량으로 딱 적당한 거리이기도 합니다. 


여름 무더위 햇살을 피해 1시간을 일찍 시작한 러닝인데, 공원 안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찬가지로 무더위를 피해 나온 중장년의 성인들이 두서넛 이상씩 모여서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 저기 달리러 나온 청년도 있군요. 크루 모임인가 봅니다. 3명이 모여서 뛰기도 하고요. 새벽 이른 시간이라고 집에 머물렀을 뻔 후회했을 했지 뭡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을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손을 맞잡고 반가움을 표하고 싶을 정도로 반갑습니다. 


하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만나는 사이입니다. 당신은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이른 아침에 산책을 나옵니다. 당신 곁에는 휠체어를 끌 것처럼 위풍당당한 보디가드 반려견이 있군요. 아마도 당신은 그 아이를 운동시킬 겸 이른 시간에 밖을 향했나 봅니다. 어느 날 아침 당신의 개가 딴짓을 하느라 휠체어를 멈추고 있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보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매일 아침 만나 뵈어서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잠시 발을 멈추고 옆에 다가섭니다. 

"반려견 이름이 뭔가요?" 

헉헉대는 것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신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아마도 당신은 불편한 다리 탓에 경계심이 생긴 건지, 중년의 퉁명스러움이 있는 건지 잘 대답하지 않네요. 


"네 안녕하세요." 

반려견이름을 물은 질문은 못 들었나 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당신의 미소를 본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혹여 불편해하면 어쩌나, 내 인사를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당신의 미소를 보았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길에서 마주치면 손을 마주 올리는 사이가 되었지요. 당신과 나의 눈높이는 약 5미터쯤 떨어질 때 딱 잘 맞습니다.

 

"오늘도 파이팅!"하고 외치고 지나치려는 내게 당신이 한마디 더 건네줍니다.

"어쩜 그렇게 한결같나요?"하고 나를 응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 힘이 납니다. 오늘 목표한 거리를 다 뛸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인사 외에 나에게 한마디의 말을 더 해준 당신이 고마웠습니다. 매일 아침 내가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듯 당신 또한 눈대중으로 나를 찾고 있었노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쉽게 유대감이 잘 생깁니다. 고정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리듬감이 맞으니까요. 반려견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은 또 그 반려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어 제게 미소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닮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가 봅니다. 


아침 이른 시간, 잠이 일찍 깬 아기도 만납니다. 유아차에서 세상을 마주하고 있을 아기들 눈에는 뭐가 남을까요? 아침 이른 햇살에 생동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내 발걸음은 더욱 흥이 납니다. 당신들이 있어서 오늘 밖을 나오길 잘했노라 생각이 듭니다. 나와 당신들이 이렇게 연결된 시간을 누려봅니다. 혼자 있고 싶어서 나왔던 밖에서 당신들을 만나 오늘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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