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는 작가 Aug 10. 2023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게 아니야

요즘 여름날씨에 에어컨이 없다는 가정은 세상 종말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번 폭염은  직장인에게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과 남성도 양산을 소지하는 게 유행이라는 보도도 등장했습니다. 연일 더위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가운데 러너들은 폭염 속에 어떻게 할까요? 더운 날 그들에겐 무슨 비책이 있을까요? 


크게 둘로 나뉘는 듯합니다. 달리거나  달리지 않거나. 빤한 말이지만 달리기 인플루엔서들은 연일 체감온도와 함께 땀 젖은 분투 달리기 사진을 올리는데 열중합니다. 연예인이면서 달리기 인플루엔서인 '션'은 8월 15일 81.5킬로미터를 달리는 캠페인을 열고 연일 그 준비과정을 올립니다. 열기가 더해지는 한여름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팬들의 응원도 폭발적이지요.  


초보러너들은 기온이 내려앉을 때까지 쉬어갑니다. 더위 한가운데 서있는 것조차도 힘겨운 마당에 달리는 건 생각하기 조차 어렵죠. 다시금 날이 시원해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돌고 있고요 곧 있으면 선선해질 텐데 지금 이렇게 힘들게 무리하면 되나요? 건강하기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닌가요? 


가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로 나뉘기도 하는가 봅니다. 취미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만둘 이유가 있지만, 여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겠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의 온도에도 밖에 나가 섭니다. 지금 당장 뛰는 연습을 해야 하는 절심함은 체감온도가 영상 40도일 때나 영하 20도일 때 모두 그들을 밖으로 내몹니다. 마치 오늘을 견디는 사람처럼 그 어떤 한계를 정하지 않아요. 그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환경의 위기와 급변은 우리나라에도 여름과 겨울이라는 두 계절만 남겨놓은 듯합니다. 러너들에게는 혹서기, 혹한기의  극한 시간을 넘어서는 한계 달리기로의 세계가 남게 된 셈입니다. '아 참 달리기 좋은 계절이구나' 하고 느끼다 보면 봄과 가을은 어느새 저 앞에 달려가 버립니다. 쫓을 새도 없이 말이지요. 

그렇다면 달리기 어려운 혹서기, 폭염기에 인플루언서도 아닌 저는 왜 달리고 있는 걸까요? 


한여름에는 새벽 6시에도 대기 온도가 27,8도 체감온도는 이미 30도를 웃도는 경우가 생깁니다. 바깥운동하러 나오기에 가장 험준한 고비라는 현관령을 넘었으니 덥다 느껴도 슬슬 뛰어볼까요? 호흡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숨을 코로 깊숙하게 받아들입니다.흡흡합합. 내 페이스보다 조금 느슨하게 시작합니다. 여름날의 달리기는 성장보다는 수긍에 집중합니다.


바깥의 온도, 대기의 열기, 햇볕의 뜨거움이 당신 발목을 잡을 겁니다. 자꾸만 속도를 늦추고 거리를 줄이라고 스스로를 체념하기도 합니다. 이 뜨거움에 도저히 적응이 안 될 때 밖을 나선 스스로에게 용기와 응원을 불어넣고 좀 느슨해져도 좋습니다. 이미 길 위에 선 그 자체가 승리자의 것이니까요.


해가 뜨거운 아침이나 낮보다, 여름밤더위가 가실 무렵 달리기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여름햇빛이 노골적인 아침보다 밤의 달리기는 좀 낭만적이기도 합니다. 거리의 불빛이 아름답게 느껴질 무렵 나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세요. 천천히 내 몸에 긴장을 풀어가며 다소 느린 템포의 발라드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 오늘의 달리기는 휴식에 방점을 두려는 것이니까요. 


달리기를 마치고 미온수에 몸을 쌓은 뒤 시원한 음료 한잔을 내게 선사하세요. 오늘 나는 내가 할 일을 했으니 이제 쉴 일만 남았거든요. 여름 달리기는 수분을 더 많이 배출시키니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승리한 사람에게 시원한 맥주의 청량함만큼 큰 포상이 어딨 나요. 당신은 오늘의 더위를 이겨냈고 그 승리감을 잠시 누리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저는 달리기 기록을 누적해 쌓거나 매일의 풍경을 기록하는 걸 좋아합니다. 하루하루 내가 성장해 가는 걸 측정해 가며 쾌락을 느낍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오늘 길 위에 있었다는 걸 거리풍경사진으로 나는 알고 있으니까요. 같은 시간에 시작하지만 여름 무더위의 시간은 가을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말 달리기 좋은 때를 곧 맞이할 겁니다. 달리기를 이미 좋아하는 사람도 혹은 멈추고 있는 사람도 모두 코를 벌렁거리는 그 시간이 다가옵니다. 러너의 계절이 코 앞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신포도인지 아닌지는 먹어봐야 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