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덕후가 아닙니다. 또 하고 있는 일의 전문가라고 하기에도 뭔가 어색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사람일 뿐이죠. 다만 지겨워하지 않고 계속하는 끊어지지 않는 탄성을 가졌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어떤 일을 잘하기보다는 꾸준히 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게 있어 '달리기'란 밥처럼 탄수화물의 심심한 맛입니다. 맵고 짜고 톡 쏘는 자극적인 맛이 아니지만 늘 꾸준히 먹고 힘이 되어주는 동력 같은 자원이지요.
3년을 매일같이 뛰었더니 그전의 저를 아는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누어 저를 평가합니다. "그게 재밌냐?"라고 묻거나 "지겹다. 그걸 어떻게 하니. 넌 참 대단하다"라고 말합니다. 즉 제가 대단하다는 반응이거나 원래 너는 그런 독한 면을 갖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니 경계하자는 자세입니다. 이솝우화의 포도나무 아래 여우처럼 말이죠. 포도를 먹어보려는 시도와 노력을 폄하하는 마음이거나 되려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면 외부적 요인을 들어 애써 포기합니다. 돌아서서 입을 다실지언정 말이죠.
저는 독한 사람이 아닙니다. 의지력이 정말 약한 편이었어요. 공부를 좋아하지만 그것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금세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낄낄대는 아이였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학원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곤 했어요. 지금도 뭔가를 배우려면 인증이 있는 그룹에 들어가거나, 과정에 등록해서 나를 채근해 주는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학원에 관리비를 보태주는 잉여의 학생은 아니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마음먹으면 하는 인내력의 소유자였으니까요. 딸이 지금 고삼인데 딱 저를 닮았어요. 2%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눈치상 힘드니 그냥 98%까지만 하자고 생각하는 듯해요. 뭐 98프로라도 하면 어디냐 싶지만, 100을 채우고 싶은 게 또 부모맘 아닐까요? 울 엄마도 저를 보고 그랬을까요?
또 저는 취미 부자입니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활동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시간과 공이 남들보다 더 들어야 비슷한 성과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재능보다는 끈기, 요행보다는 정석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버티고 열심히 하는 활동들을 좋아해요. 책을 읽고 생각하거나, 글을 쓰거나 잘 늘지도 않는 운동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으로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취미부자로 사는 건 좋아하는 일들이 많고 어느 경지에 오르려 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걸 하는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랍니다.
저한테는 어떤 재능이 있을까요? 계획하고 그걸 수행하는데 능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걸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이 저입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가 아니라 누구보다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란 사람인 거죠. 그래서 만 3년 달리기를 주 5회 이상 하고 있나 봅니다. 그 정도 했으면 실력이 어마어마해야 하지 않나 여기시겠지만 실력이 대수인가요? 그걸 즐겁게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역사학자이자 유명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Outlier>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영역에서 그 시간 동안의 활동을 해내면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일컬어 '장인'이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유사한 사람들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지요. 자신의 직업영역에서 일정시간 이상 꾸준히 일하다 보니 사람들이 어느 경지에 올랐다는 점이죠. 1만 시간 동안 열심을 다한다면 그 사람은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루 3시간씩 365일 즉 10년 동안 하는 사람은 경지에 오르게 되지요.
'꾸준함'이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재능은 타고나야 하지만 후천적으로 자기의 역량을 향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재능, 즉 수많은 천재적 재능가들을 이길 수 있는 '치트키'가 바로 '꾸준함'이죠.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에서 결국 승리하는 쪽이 거북이라는 우화에서 우리가 알려주는 교훈은 꾸준히 하는 사람의 노고는 없어지지 않는다였죠. 토끼의 뜀박질을 엉금엉금 거북이가 이겨낼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거북이가 그늘에서의 휴식에 유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갔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로 되었지요.
오늘 아침에는 정말 오랜만에 제게 달리기를 왜 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던 동네 언니를 만났습니다. 10km 뛰고 와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라 누굴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달리기를 하는 저를 '세상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이라고 말했던 사람이었죠. 돌려 까기의 달인.. "너야 살기 편해서 달리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달리는 게 내 나이에는 안 되는 일이야."라고 말했었죠. 지금 제가 3년간 뛰어서 그분의 나이가 되었는데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 그분도 시작했더라면 지금처럼 병원을 전전하거나 과체중으로 살 빼는 고민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달리기는 힘이 드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할 때 반드시 페이스나 늘거나 주행거리가 늘 수 있는 활동입니다. 누구와의 경쟁이 아니고 스스로의 호흡이나 리듬감을 찾으며 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가 달렸던 시간을 부러워합니다. 저 높이에 달린 포도처럼 닿을 수 없는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달렸던 거리와 시간은 첫날 1km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제 손에 있는 포도가 달콤한 맛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무슨 맛인지 압니다. 그 포도는 내가 직접 맛봤으니까요. 적어도 너무 신맛은 아니었음을 장담합니다. 햇살과 비바람을 이겨내고 가을에 탐스럽게 열리는 포도의 맛입니다.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맛이랍니다. 정말 맛있어요. 진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