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는 작가 Aug 28. 2023

모성 잔혹 투쟁사_마스크 걸

얼굴만 빼고 몸매는 완벽한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여자의 얼굴만 보았다. 일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그녀인데 얼굴만 딱 보고 업무적, 상투적인 대화 외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못생긴 대로 존재하는 여자는  '존재감'을 상실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그녀를 이용했고 또 배신했다. 그녀는 아름다워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본얼굴을 알고 이용했던 남자 둘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의 남자친구까지 셋을 살해한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아니 요새의 자극적인 콘텐츠들, 특히 웹툰을 기반으로 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과한 설정과 폭력성이 난무한 볼거리 많은 드라마를 찾아본다. 넷플릭스에 <마크스걸>이 발표되자마자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를 다음날까지 완주했다. 60분 정도 분량의 7회 차 드라마에는 여성들의 현실적 액션과 피비린내 나는 분투가 가득했다. 아, 할 일이 쌓였을 때 드라마 보는 꿀잼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김용훈 감독은 동명의 웹툰을 기반으로 이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작품은 캐스팅이 신의 한 수라고 봐도 좋다. 

주인공 김모미 역은 이한별, 나나, 고현정이 나눠 맡는 ‘3인 1역’을 시도했다. 이한별은 외모 때문에 연예인의 꿈을 포기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직장인 김모미’다. ‘성형 뒤 김모미’는 현업 가수 나나이고, 고현정은 교도소에서 중년이 된 ‘죄수번호 1047 김모미’다. 김용훈 감독은 “3인 1역은 어려운 선택이었다. 보통은 특수분장을 하지만, 배우의 표정과 표현을 살리고 싶어서 강행했다”라고 설명했다. 모미의 절대적 라이벌이자 그녀가 죽인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 역은 배우 염혜란이 맡았다.  또 남자 조연 주오남역의 '안재홍'은 탈모증상의 과장을 완벽히 소화했다. 

이미지 넷플릭스제공 (마스크걸 모미)

전체 7회 중에서 이한별이 1~3회, 나나가 4~6회, 고현정이 6~7회에 등장한다. 각각의 배역 비중이 크지 않지만 캐릭터가 강렬하고 연기도 좋아 존재감이 상당하다. 나나는 동적으로, 고현정은 정적으로 극과 극의 변화를 준다. 고현정은 교소도에서 내내 머물며 변화하는 내면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즉 우리가 미모를 판별하는 순위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일 수 있는 나나는 자신과 춘애, 그리고 딸아이 미모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남자들을 찌르고 발로 찬다. 또 한국의 중장년에게 이쁜 여자 배우로 알려진 고현정은 무미한 표정으로 생명감을 잃은 듯한 얼굴로 지키고 싶은 것들 앞에서만 생기를 보인다. 상대적으로 동일인물 역할이나 성형수술 전의 못생긴 모미 역의 이한별 배우의 춤과 댄스는 그녀의 욕망을 마음껏 발산해 보이는 듯하다. 

이미지 넷플릭스 제공(감옥에 갇힌 모미)
이미지 넷플릭스제공(성형 후 모미)

드라마는 '욕망하는 여인들의 발산하는 생명감'을 다룬다. 모미는 행복하고 싶었다. 그녀의 행복은 짝사랑하던 직장상사가 자신을 봐주는 것,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 인터넷 방송에서 춤을 추지만 그녀를 봐주는 팬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상사는 그녀의 친절까지 혐오스럽게 보고 자신과 어떤 관계라도 생길까 뒷걸음친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만난 팬은 친절을 가장한 그녀와의 성관계에만 관심을 보이고 그러다 우발적으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모미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주오남을 이용한다.


주오남은 오덕, 찌질남으로 분한다. 그 또한 대한민국에서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로 사는 비애를 충분히 느끼고 생존해 왔다. 종교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가진 어머니 곁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본 성인 야동을 마음껏 소비하고, 또 거기서 발견한 마스크 걸과 행복하고 싶었다. 마스크 걸은 오남의 마음을 받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해서 대신 시체를 처리해 주고,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오남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미를 견딜 수가 없다. 나만 사랑해 주면 되는데, 그럼 나는 너의 얼굴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데 라는 오남의 생각은 그래서 이기적이다. 모미는 그저 예뻐지고 싶다. 오남의 사랑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미지 넷플릭스 제공(아이시테루, 주오남)

김경자는 아들이 잘 커주기만을 바랬다. 이혼녀로 혼자 녹녹지 않은 살림으로 오남을 키우려 뼈 빠지게 고생했지만 '내 새끼'가 잘 자라만 준다면 내 뼈 따위는 부스러져도 된다는 마음이었다. 경자는 오남이 불현듯 사라지고 그게 모미, 마스크 걸과 관련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녀를 추적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김경자가 컴퓨터를 배우고, 성형을 하고, 총을 하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수에의 일념을 불태우는 모습에 그 뜨거운 가슴에 우리는 화들짝 놀래게 된다. 


모미가 경찰에 붙잡혀 갓난쟁이 딸 '미모'(모미는 딸이 예쁘길 바랐나 보다. 이름이 미모 그 자체이다)를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엄마에게 맡겨둔 채 시들어 간다. 감옥이라는 공간에서는 예쁜 얼굴이 아무 소용없다. 흐르는 시간만큼 성형한 얼굴도 늙고 자신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여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것 외에 발끈해 한놈만 계속 패는 것 외에는 그렇게 늙어가고 싶었다. 김경자가 자신의 딸을 죽일 거라고 협박하기 전까지 감옥생활에서 어긋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김경자가 자기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가듯 모미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딸이지만 미모를 구하기 위해 다시금 일어서 싸운다. 


작품은 성인이상 관람등급을 받았다. 핍진성 있는 폭력의 묘사가 드리워져서일 게다.  드라마에서 가면을 쓴 모미의 모습은 섹시하다. 김완선의 <리듬을 쳐줘요>와 손담비의 <토요일밤에>의 섹시 댄스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모미의 모습은 멋지다. 하지만 모미 앞에서 가면을 벗어던진 사람들의 본얼굴은 추하기만 하다. 모미의 성인 방송에 별풍선을 싸주던 팬카페 회장이 중학생이라는 점, 미모를 괴롭히기 위해 교묘하게 초등학생들을 가스라이팅하는 현남할머니의 악랄한 얼굴, 잘생긴 외모로 좋아하는 상대를 이용하려는 채이남자친구까지 상대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민낯은 참기 어려운 모습이다. 


우리에게 몇 개의 페르소나가 있을까?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우리는 얼굴을 포장한다. 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에게 웃어 보이고, 또 내게서 멀어졌으면 하는 대상에게는 짜증 나는 얼굴을 들이민다. 우리가 가려놓고 싶은 모습은 우리의 욕망이다. 예쁘게 보이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대상 곁에 머무르고 싶은 그 본능이다. 우리의 발현은 미적이지 않더라도 욕망만은 아름답다. 뜨겁게 욕망하는 대상 앞에서 우리는 눈이 먼다. 홀린 듯 그 대상의 미에 빠져든다. 이 드라마는 바로 생동하는 존재의 뜨거운 욕망을 그렸기에 인기리에 회자되고 있다. 우리는  욕망의 마스크를 쓰건, 그걸 벗어던지던 욕망을 구현하는 모습은 그릇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헬창 엄마와 이만보 선생 그리고 운동거부증 자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