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집중력 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고 전해집니다.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더 늘여가기 위해서라도 체력을 기르려 노력한다는 겁니다. 제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도 바로 책 읽고 글쓰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작가 중 가장 잘 달리는 걸로 손꼽히는 그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꾸준히 3년 넘는 시간 동안 800회, 4,700 kml을 달려온 사람은 두 활동에서의 닮은 점을 찾아냅니다. 바로 목적성과 성취감, 규칙성과 지속적일 때 좋아지고, 지루함을 견디고, 도전의식이 필요하고 건강해진다는 점들이 두 가지 활동의 공통점입니다.
달리기는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빠르게 전신을 움직이는 활동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오늘은 얼마의 거리를 어떤 페이스로 뛸지 결정합니다. 목표는 내가 오늘 도착해야 하는 곳이 어딘지 잊지 않게 합니다. 낯선 길을 전속력으로 뛰지는 않죠. 러너들은 목적된 방향대로 길도 알고 도착지점을 확인하며 유유자적 뛰는 걸 선호합니다. 제가 주로 뛰는 거리는 6km, 집에서 2k 떨어진 서울 마곡식물원입니다 공원에 도착해 공원 내 호수둘레길을 돌아 나오는 거리지요. 바쁜 아침 40여분 걸리면 땀이 적당히 나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챙길 수 있어 좋습니다.
글쓰기에서 목적은 주제가 되겠지요. 내가 내 생각을 조리 있게 풀어내는 과정이 글을 쓰기 어렵게 혹은 필요하게 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 도착지이자 방향성인 '주제문'을 잘 잡아야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는 바른 러닝자세처럼 문법에 맞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죠. 내가 잠시 길옆의 다른 것을 주의 깊게 살필 때면 페이스가 흐트러지듯, 글쓰기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고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합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뭐였더라'라고 글 쓰는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글의 방향성이 혼란스러워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달리기 할 때 안전하지 못한 착지라고 할 수 있겠군요.
달리기는 아주 규칙적인 활동입니다. 팔다리를 교차해서 움직이고 다음 액션을 준비하도고 심폐활동을 일으키지요. 흡습합합, 나가는 호흡과 들어오는 호흡을 동시에 이루어야 합니다. 내쉬는 호흡에 들이쉬는 호흡을 잊지 않고 대기하고 있어야 하죠. 깊이 들이쉬기 위해서는 잘 뱉어야 하고요. 온몸의 움직임이 원활해야 달리기 페이스는 향상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걸음마에서 뛰는 것을 배워가듯 러너들도 바른 자세와 규칙적인 움직임을 차츰 익혀가는 거죠.
글의 리듬감은 분량에 맞는 글쓰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문장수를 맞추거나 주제에 맞는 단어들의 나열은 보는 사람의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또 맞춤법과 문법에 맞는 문장은 독자에게 안정적인 인상을 남기지요. 아이들이 걸음마 첫걸음이 흔들리듯 글도 수도 없이 고치고 지우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몸에 익듯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소설가 황정은 글은 "기립근"으로 쓴다고 했답니다. 앉아서 쓰고 읽고 고치기를 반복적으로 해서 써 내려가는 게 내 분신과도 같은 내 글이 되는 거지요.
달리기는 러너로 하여금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켜요. 내가 늘 달리던 거리지만 내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을 때 러너들은 마지막 남은 거리를 힘차게 달려갑니다. 자신의 페이스에 머무르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고 싶어 하죠. 혹은 익숙하게 뛰었던 거리에서 옆사람의 부추김 혹은 응원으로 조금 더 달리게 되지요. 한발 더, 한걸음 더 빠르게 달리는 도전과 기량이 좋아짐을 확인할 때 벅찬 승리감을 느낀답니다. 또 비가 오는 날 미친 것처럼 웃으면 하는 '우중런'과 혹한의 추위 속 입김을 얼리며 나아가는 한 발은 내 안의 한계를 넘어선 다른 나를 알게 합니다. 낯설다 너.. 그런데 좀 멋있다.
글쓰기는 이미 시작하려 하는 시도부터 도전입니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 사람들은 '쓰기'는 넘어서야 할 거대한 벽과도 같아요. 쓰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 않고 게으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쓰기'는 도전과제와 같습니다. 또 퇴고과정은 얼마나 지루하게요. 그걸 버티는 완성된 글 한편은 도전과제에 대한 나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생각하고 입으로 내뱉고 문단을 옮기고 문장을 다시 지웠다 쓰는 과정은 그만두고자 하는 유혹에 도전하는 승리자의 과정과도 같습니다.
달리기는 러너스하이가 느껴질 때까지 '지루함'을 참아야 합니다. 뛰려고 나왔는데 체온과 심박동이 오를 때까지 괴로울 수 있는 지루함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순간을 즐겁게 하려고 비트 빠른 음악을 듣곤 합니다. 저만의 리스트를 준비해 두죠. 주로 혼자 뛰는 저에게 드라마틱한 성적도, 또 누군가의 자부심 섞인 호응이 없는데 꾸준히 하는 이유는 그때까지 버티는 인내력이 강해서인가 봅니다. 지루함을 이기는 인내심은 그 어떤 사정에도 그냥 길을 나서는 게 다이지만요.
글쓰기, 지루함 그 자체입니다. 텅 빈화면에 깜박이는 커서표시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인가'하는 성찰적 질문을 떠올립니다. 또는 오늘 글쓰기를 안 할 다양할 핑계를 찾습니다. 그러다 결국 쓰고야 말죠. 내가 할 일을 해나가듯 마감에 맞춰 글을 완성합니다. 뇌에 강력한 스트레스를 주는 데 어깨에 힘을 주고 글을 쓰고 있는 제 모습은 어딘가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루함을 이겨, 분량을 채우는 여전사의 모습랄까요.
달리면 내 몸이 건강해집니다. 인류에게는 '달리기'가 가장 최적화된 운동입니다.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허리는 현대생활의 필수도구 핸드폰과 컴퓨터 사용을 위해 구부정하게 되었죠. 또 과영양상태는 후덕한 배둘레살을 남겼고요. 또 앉아서 일만 하는 일개미성 인간들은 다리의 강인한 힘을 잊고 삽니다. 달리기는 인간에게 본능을 깨웁니다. 뛸 때의 충격은 뇌파와 심장박동을 높이고, 또 깊이 호흡하며 심폐 지구력을 향상하죠. 즉 뛸 수 있는 상태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달리기'입니다.
글을 쓰면 내 사고가 단단해집니다. 내 정신 속에 흔들리는 생각들은 내가 표현하고 뱉을 때 내 생각이 됩니다. 그게 홍세화 작가가 <생각의 좌표>에서 말했던 지점입니다. 내 생각의 좌표를 알는 것이 바로 나를 아는 공부인 셈이지요. 내 글은 곧 내 생각의 발화이니, 글쓰기는 내 사고를 나타냅니다. 글쓰기 훈련은 사고를 단단히 해주는 과정인 거죠. 글 쓰는 사람은 조리 있게 말하거나 생각을 표현하는데 능숙합니다. 입력값을 표현수단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글쓰기이니까요.
달리는 작가, 제가 스스로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문장 위를 달리고, 길 위를 뜁니다. 달리는 순간의 운동력을 기억해 두었다 자판의 타격감으로 표현합니다. 다양한 정보들을 글 쓸 때 뇌의 시냅에서 연결하듯 내 전신의 세포들이 달리며 연결됩니다. 글쓰기 위해 뛰고, 뛰는 이야기를 글로 만듭니다. 예비 작가가 달리기에 빠지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노력으로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는 두 활동에 흠뻑 빠져 있느라 러너스하이 혹은 글쓰기의 최전선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