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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Oct 04. 2023

만약(IF)이 궁금한 외계인(ET)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이고양 일상 리뷰 (09.26~10.04)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는 비정기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했어요.

시즌 1처럼 일상 속 이고양의 생각도 담아내지만,

시즌 1과는 다르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적어나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이고양 일상 리뷰'.

이따금씩 찾아올게요~




[23.09.28 목요일 - 산책과 독서를 조금 덜 사랑해서 ]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연휴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걷기였다. 애초에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않는 사람인지라, 친척들을 만날 일도 없고 명절음식을 만드느라 바쁠 일도 없다. 오랜만에 알람 없이 푹 자고 눈을 떠보니 이미 오후였고, 일어나도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 그냥 걸으러 나왔다.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는 참 오랜만이다. 특히 최근 한 달여간은 해야 할 일이 과하게 넘쳐나서 시간이 부족한 나날을 보내었다 보니, 할 일들이 뚝 떨어진 오늘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다. 물론 나쁘지 않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계속 없다면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매우 바쁜 시간을 지나 조만간 또다시 바빠질 예정인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일이 없는 지금은 나태함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짧은 휴가인 셈이다. 


'산책이나 갈까?'라는 선택지가 주어진 것 자체가 평온한 나날의 증명이 셈이다. 바쁜 와중에는 '아.. 산책 가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하게 되니까. 그러고 보면 '산책과 독서는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 평화로운 산책을 하고 나니 더 그렇다. 산책도 독서도, 바쁜 와중에 겨우 틈을 내서 하는 것은 그리 유용하지 못하다. 미뤄둔 일이 없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일 때 가장 깊이 있게 누릴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산책과 독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바쁜 나날에 산책과 독서를 굳이 하지 않는 나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 안 그래도 바쁜데 덜 즐거운 산책과 독서를 굳이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어쩌면 산책과 독서는 연애와도 비슷한 것 같다.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어 겨우겨우 할당량을 채우듯이 하는 것을 온전한 연애라 부를 수 없듯이, 산책과 독서도 마치 할당량을 채우듯이 해서는 안된다. 바쁜 일정과 무관하게 상대가 너무 보고 싶어 져서 일정이 끝나마자 연락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보기 위해서 바쁜 일정도 미루고 쪼개어 기어코 데이트할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산책과 독서도 그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게, 결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마음이 완전히 다르다. 연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는 '상대방을 위해' 시간을 억지로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의 차이. 그걸 산책과 독서에 접목시키면 바쁜 와중에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시간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산책이나 독서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바쁜 와중에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그때야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진다. 바쁜 일정과 무관하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홍토끼를 사랑하는 것만큼 산책과 독서를 사랑하지는 않는가 보다. 바쁠 때면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게 산책과 독서거든.




[23.09.28 토요일 - 만약이 궁금한 외계인]


나는 MBTI의 맹신론자 까지는 아니지만, MBTI가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는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MBTI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실 16개로 나뉜 성향의 특징을 그대로 믿는다기 보다는 4가지의 분류체계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것뿐이다. 이 사람의 성향은 외향형(E)에 가까운지 내향형(I)에 가까운지. 혹은 사고방식이 현실적(S)인지 아니면 이상적(N)인지. 그리고 감정적(F)으로 반응하는지 아니면 이성적(T)으로 반응하는지. 마지막으로 즉흥적(P)인 사람인지 계획적(J)인 사람인지. 이런 식으로 구분할 뿐이다. 이 4가지의 조합이 그 외에 특별한 성향을 만들어낸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 그 사람 개인의 특징이 되겠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나와 홍토끼는 이상적(N)이고 계획적(J)인 측면은 닮았지만, 다른 두 가지 요소는 정 반대이다. 나는 이성적인 외향형(ET)의 사람이고 홍토끼는 감성적인 내향형(IF)의 사람이다. 절반은 닮았고 절반은 반대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재밌다. 가만히 관찰하고만 있어도 참 신기하고 유쾌하다. 아마 내가 애정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홍토끼라는 사람 자체가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감성적인 내향형(IF)의 홍토끼를 보며 가장 신기한 점은 그 사고방식에 '만약(If)'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정말 많은 미래들을 머릿속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중 많은 부분이 걱정으로 변하는지라 이따금씩 걱정되긴 하지만, 그렇게 미리 걱정함으로써 미래에 더 잘 대처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일단 발생하기 전까지는 큰 걱정을 하지 않고, 발생하고 나면 그 순간의 정보를 토대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한 이성적인 외향형(ET)의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이다. 물론 홍토끼가 보기에는 걱정 없이 지내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는 내가 오히려 외계인(E.T) 같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ET는 IF가 신기하다.






[23.10.03 화요일 - 여고생은 왜 떡볶이에 미쳐있는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시험을 잘 봐도 너무 잘 봐버렸다. 점수가 10점, 20점씩 올라버린 것이다. 시험을 잘 보면 떡볶이 사주겠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잘 가르쳐서 성적이 오른 건지, 떡볶이 때문에 성적이 오른 건지 모를 지경이다. 대체 왜...? 이 정도 떡볶이는 너네 용돈으로도 사 먹을 수 있지 않니??


약속대로 떡볶이를 사주었다. 사이드도 마음껏 시켜도 된다고 했는데 참으로 소박하게도 별로 추가를 하지 않는다. 내가 이것저것 토핑을 얹어줄 정도. 너네 정말 떡볶이 하나로 만족하는 것이었구나..


2만 원 남짓의 떡볶이일 뿐인데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게 먹는 학생들이 신기해 보였다. 2만 원 정도만 투자하면 성적도 오르고 학생들도 행복해하다니. 이거 투자대비 효율이 너무 좋은 거 아닌가? 전국의 학부모님들이 알아두어야 할 비법이다. 


선생님이 떡볶이 시험 때마다 사줄 테니까, 계속 성적 올려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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