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고양 Nov 06. 2023

가진 게 단점뿐인 줄 알았더니

쥐뿔도 없지만 2화 / 쥐뿔도 없지만 장점은 포기할 수 없어서

사람은 의외로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할 뿐, 사실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 꽤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겉보기에는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마냥 긍정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자신의 단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자신의 장점도 생각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쑥스러울 뿐,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점이 남들에게 장점으로 비추어지는지를 꽤 잘 알고 있다. 정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모두가 비난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장점을 하나쯤은 인지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장점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거나, 똑같은 장점을 더 크게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느라 자신이 장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점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조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장점을 더 키워나가려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단점을 극복하려 애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무의식 중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양식이 맞추어지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비난받는 것이 정말 너무 두려우니까. 그렇게 단점을 감추거나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나라고 별 수 있을까.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나 보다. 나 스스로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 또한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더 적은 단점을 극복하는데 집중하느라 장점이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나도 내가 가진 장점은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내가 가진 단점은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기에는 충분한 요소라고 여기고 있었다.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결국 가진 게 단점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이럴 수가. 단점을 극복하겠답시고 바꾸어 왔던 모습들 때문에 장점들이 죄다 사라져 버린 것 아닌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단점의 극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성의 삭제였다.


사실은 단점과 장점은 양면의 동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단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명확한 신념이 있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줄 안다는 장점이기도 하다.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단점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장단점도 마찬가지다. 결단력이 부족한 단점과 신중하다는 장점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배려심이 깊다는 장점은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어쩌면 장점과 단점이라는 단편적인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서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알아차린다'라는 특성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에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발현될 때에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단점을 지워내려고 했던 내 행동들이 왜 장점이 사라지는 결과로 나타난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내가 없애버린 단점들과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장점들은 같은 특성에 뿌리를 두고 각기 다르게 발현되었던 모습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솔한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내 생각을 자꾸 억누르다 보니, 뚜렷한 신념과 강한 자기 확신이 사라졌다.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의 기분을 신경 쓰다 보니, 명쾌한 메시지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그만두지 않으려고 억지로 붙잡고 있다 보니, 미련 없이 떨쳐내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


단점이라는 것을 없애려고 하면, 그와 연결된 장점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어쩌겠어. 그 단점 또한 나의 특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지.

그저,

그 특성이 단점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평생 조심하고,

그 특성이 장점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평생 노력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쥐뿔도 없지만 포기할 순 없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