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
늦은 밤, 제자에게서 회한이 가득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열심히 준비해 온 시험에서 안 좋은 결과를 받게 된 제자는 감정적으로 무너진 상태였다. 메시지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가득했고,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길 마저 부정하며 그만두고 싶어 했다. 제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을 계속해서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것이 꼭 그 제자에게만 찾아오는 일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빈번하게 찾아오지는 않을지언정,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그와 같은 좌절감을 겪게 될 것이다.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이 막막하여 보이지 않기에, 지금껏 걸어온 길마저도 후회하게 되는 순간 말이다. 그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필연이다. 그런 순간을 단 한 번도 맞이하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는 없다. 아직 마주하지 않았을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그 순간은 가볍지 않다. 모두가 겪는 일이라 하여 흔해빠진 사건인 것은 아니다. '다들 그래'라며 가벼이 넘길 일은 더더욱 아니다. 도리어 이런 절망을 모두가 한 번씩은 겪어야 할 만큼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종에 한탄을 해야 할 만큼 괴로운 고통의 순간이다. 그 고통은 성향의 차이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감정적인 사람은 요동치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릴 것이고, 이성적인 사람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사고에 괴로워할 것이다. 쾌활한 이는 처음으로 색을 잃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고, 과묵한 이는 내뱉지 못하는 마음에 질식하게 될 것이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각자의 절망을 마주했을 것이고, 또는 마주할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 절망적인 것인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력을 부정당한 것이다. 또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능성을 부정당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도저히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한 것이다. 과거의 노력도, 미래의 가능성도, 현재의 가치도 모두 부정당하는 그 순간은 자신의 존재마저도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야말로 절망적이다.
절망의 순간에 대해 짧게 서술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잃어버린 나를 되찾을 수 있다.
그렇다.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그 순간은 반드시 끝나야만 한다. 잃어버린 나는 되찾아야만 한다. 그 순간이 인생에 찾아오는 필연이라면, 그 순간이 절망과 좌절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필연의 결말은 행복이어야만 한다. 그것이 올바른 설계인 것이다.
나는 괴로워하는 제자에게 단 두 가지 만을 당부하였다. 실제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결국 제자에게 부탁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 것. 또 하나는, 지금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말 것.
제자가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고, 그만큼 절망이 감정의 동요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고 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차오르는 사람이라면 그 생각을 멈추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밝음을 잃은 사람에게는 애써 웃지 말라고 했을 것이고, 태연함을 잃은 사람이라면 굳이 침착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모두 같은 의미이다. 도망치지 말고 직면하라는 것이다.
괴로움이 너무 크면, 해결이 아니라 덮어두는 쪽을 택하게 된다. 그것은 비겁해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덮어두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덮어버리면 죽을 것 같은 괴로움에서는 벗어날지언정, 평생을 이따금씩 괴로울 것이다. 그때마다 계속해서 덮어버리기 때문에 점점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속도가 빨라질 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가 없다. 죽을 것 같은 괴로움에서 도망쳐 맞이하는 결과는 괴롭지 않은 죽음이다. 무엇이 더 나을지는 개인의 선택일 수 있으나, 나는 괴롭지 않은 죽음도 괜찮다는 것에는 평생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한 행복은 없다고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고통과 괴로움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쉽게 믿지 못하곤 한다. 행복할 때에도 불행해질 것을 걱정하면서, 불행할 때에는 행복해질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인생은 불행과 행복이 번갈아가며 적혀있는 책과 같은 것이다. 불행의 페이지를 읽기 힘들다고 해서 책을 덮어버리면, 인생은 영원히 불행의 페이지에 멈춰있는 것이다. 불행의 페이지를 다 읽어야 행복의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불행을 끝내는 방법은 회피가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말길 바란다는 두 번째 당부는, 불행을 끝내지 않은 채로 결정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불행을 끝내지 않은 채로 내리는 결정은 불행한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선택은 회피고 도망이다. 앞서 말한 감정이나 부정적인 상태를 덮어두는 회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도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목표로 삼었던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부터 벗어나려 한다.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를 핑계 삼아, 이것은 내 길이 아니라는 변명으로 자기를 속이면서, 그렇게 도망치고 회피하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말로 포기하는 것이 나를 위해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불행으로 가득 찬 순간을 못 이겨 도망치듯 뛰쳐나온 것은 평생의 구속이 될 것이다. 그 도망에 사로잡혀, 어느 곳에서도 온전한 나를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설령 나의 재능이 꽃피울 수 있는 길을 찾아 성공한 인생을 살 지언정, 마음 한편이 그 도망의 순간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행이 다 끝난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설령 그 결정이 불행의 순간과 똑같은 결정일 지라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벗어나야 할 괴로움이 하나도 없는 그 순간에, 도망쳐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그 순간에, 나의 온전한 의지로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한다. 그 선택은,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수정하는 것이다.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불행이 끝난 모두 끝난 순간에 가능한 것이다.
긴 이야기를 나눈 제자는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내가 해준 이야기가 모두 와닿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그저 흘려보낸 듯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자의 불행의 순간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제자는 약간의 안식을 얻었다. 내가 진심으로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했다. 아직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당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잠에서 깨어날 제자의 내일이 오늘보다는 조금은 더 평온해졌기를,
불행의 페이지를 읽고 있을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덜 괴롭기를,
그들의 불행의 페이지가 그리 길지 않기를,
그 끝에 마주할 행복의 페이지가 밝고 찬란하기를,
작은 소망을 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