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가장 좋았던 온라인 공간은 블로그가 아니었다. 남들이 다하니까 의무감에 무작정 열심히 했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활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쓰기 전에도 설레이고 쓰면서도 뭔가 벅차오르던 공간은 다름 아닌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게시판'이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싸이월드 클럽에 가입해 독서 동호회 활동을 할 때, 사회인 야구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내 생각과 소감을 게시판에 남길 때가 글쓰기의 재미를 가장 크게 알았던 순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무명의 대상들과 소통을 할 때보다 친한 사이는 아니라도 얼굴 정도는,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아는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는 것은 다른 공간에서 나누는 소통과 감정의 밀도와는 비교가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7년 동안 활동했던 독서 동호회에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기도 하고, 함께 독서여행?을 갔다와서 그때마다 게시판에 남기는 글을 쓸 때는 그 어떤 일보다 몰입해서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는 작정한 사람처럼 작가가 된 것 마냥 다녀 온 여행의 즐거움과 의미, 그리고 추억이 될만한 장면들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며 내 가장 소중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듯 글을 남기곤 했다.
수줍음 많은 성격 때문에 여러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못 했던 말들을 온라인 게시판이라는 얼굴이나 말이 필요 없는 글과 이미지만 있는 게시판이라는 공간 안에서 열변을 토했다. 그렇다고 앞뒤 없이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어조로 쓴 글이 아니라 나름 서론 본론 결론의 짜임새와 구성까지 생각하면서 꽤나 많은 시간과 신경을 써가면서 글을 썼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내 생각을 표현하고 글재주를 뽐내고 싶은 마음도 사실 조금은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공을 들여 교정을 해가면서 올린 글들은 대게 반응이 좋았다. 뽐내려고만 썼으면 그러진 않았을 텐데, 마음의 진정성이 느껴졌는지 몰라도 읽는 커뮤니티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고 호응을 해주었다.
글쓰기는 어떤 대상을 두고 쓰느냐에 따라 참 많이 달라진다. 나를 위해 쓰는 일기와 뚜렷한 대상을 두고 쓴 글이 같을 수는 없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자 한자 한자 꾹꾹 눌러쓴 글은 무게감이나 질감이 전혀 다르다. 나를 대변하는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동호회 회원들에게 전달했던 많은 글들은 그렇게 쓰였다. 그렇게 진지한 태도로 썼던 독서 동호회, 야구 동호회, 기타 다양한 커뮤니티 게시판의 글들이 글쓰기 향상에 정말 많은 도움이 줬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쓰면 글이 더 잘 써질 때가 많다.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나름 알고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비슷한 취향과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는 광장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괜찮은 글이 나온다. 글의 수준이 올라간다. 전달력도 올라가고 읽는 사람들이 더 공감해 준다. 내 마음과 내 생각이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연결되어 주고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지금도 내가 예전 게시판에 정성을 들여 썼던 그때의 순수한 감정과 열정을 떠올리며 글을 쓰기도 한다. 그 때의 게시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공간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적어 내려간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검은 글자가 하나씩 타이핑되며 화면에 박히는 평면화된 글과는 전혀 다른 입체감이 풍부한 질감의 글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