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쳐 에세이
To see the world,
세상을 보고
things dangerous to come to,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벽 뒤에 숨겨진 소중한 것을 보며, 더 가까이 다가가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That is the purpose of life.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아주 조금만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2020년 첫 번째 영화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이다.
자신의 세상에 갇혀있던 한 남자가 머릿속으로만 간직했던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옮겨 나가는 이야기이다. 더 큰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가는 월터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밥줄이 달려있었기에 더욱 절박하게 회사를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를 뛰어나가게 했을까.
월터가 일하는 회사는 LIFE매거진이다. LIFE매거진은 미국의 대표 시사지였으며 '포토 저널리즘'의 시작을 알렸던 잡지이다. 빨간색 바탕의 하얀색 산세리프체 로고는 라이프 매거진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의 로고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1936년 타임사에 인수되면서 로고가 바뀌었고 표지에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36년 11월 23일에 새롭게 출발한 LIFE매거진의 첫번째 표지는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찍은 흑백의 '포트 펙 댐 Fort Peck Dam'이다. 사진 속 댐은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것이다. 대공황을 끝내고 미국이 다시 부활하기를 바랐던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잘 담겨있다.
라이프 매거진은 사진 한 장으로 그 당시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에 '포토 저널리즘'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영화 속 월터 미티의 직업을 영어로 negative asset manager로 표현한다. '부정적인 자산 관리자'로 직역되는 이 직업은 어떤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일까
라이프 매거진은 '사진 한 장'으로 사회를 대변했다. 그들에게 사진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을 '필름 원화(인화) 담당자'로 설정하여 보여준다. 월터의 일터는 빛에 예민한 사진 필름이 보관되어있는, 최소한 빛만 허용되는 사진아카이브이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변화한 이 시대에는 '필름'을 사용하여 사진을 찍는 것은 굉장히 매니악적인 일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라이프 매거진의 대표 사진가 '숀 오코넬'은 필름을 고수한다.
숀 오코넬이 믿고 자신의 필름을 넘기는 사람은 바로 월터 미티. 그는 숀 오코넬과 10여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사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필름에 담긴 진심을 온전히 인화해냈다.
숀 오코넬이 보내는 필름을 네거티브 필름 negative flim라고 하는데, 보통 촬영용 생필름을 의미한다. 필름은 어두운 곳과 환한 곳이 실제 이미지와 반대로 나타난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필름에서는 흰색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적인 negative라고 일컫는 것이다.
사실 월터 미티는 자신의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회사를 뛰쳐나간다. 숀 오코넬이 보낸 25번째 사진필름을 찾기 위해서. 영화 속에서 라이프 매거진은 오프라인 시대를 마감하고 온라인 시대를 시작하는 대규모 인사해고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숀 오코넬의 25번째 사진필름이 사라진 것이다. 월터 미티는 더이상 사진 인화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과 숀의 필름을 잃어버린 상황을 동시에 마주한 것이다. 숀 오코넬이 선택한 마지막 표지의 한 순간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표지의 주인공은 바로 월터 미티였다. 25번째 사진필름은 숀 오코넬이 미티에게 선물한 지갑 안에 숨겨져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던 미티였다. 그가 생각한 삶의 정수가 담긴 그 순간은 바로 미티가 인화한 사진을 지하 아카이브가 아닌, 자연광 햇빛 아래에서 확대경으로 사진이 제대로 인화되었는지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라이프 매거진에 적힌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 잡지를 만든 모든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Dedicated to the People Who Made It
잡지는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다. 에디터, 사진팀, 편집팀, 디자인팀, 인쇄팀, 교열팀, 광고팀, 재정관리팀 등 수 많은 인력들에 의해 한 권의 잡지가 만들어진다.
마지막 표지는 유명한 인물도, 멋진 풍경도 아니었다. 월터 미티와 같이 뒤에서 열심히 일하던 라이프 매거진의 직원들에게 그 공을 돌린 것이다.
LIFE매거진은 실제로 2007년 폐간되었다. 계속되는 재정난으로 라이프 매거진은 주간지에서 월간지로, 월간지에서 특별 주제판호 등의 방식으로 변화해왔지만 결국 폐간되었다. 지금 라이프 매거진은 타임사의 '포토컬렉션'의 일부로 존재하며 온라인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라이프 매거진의 실제 마지막 표지는 무엇이었을까. 2007년 4월 20일자로 발행되었던 라이프 매거진의 마지막 표지는 존 F.케네디의 큰 동상이었다. 존 F.케네디가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서? 대통령의 사진, 그림도 아닌 '동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만 잔뜩 남는, 그런 표지였다. 실망이다.
영화 속 타임&라이프사의 빌딩 안에는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로 벽면이 장식되어있다. 그런데 그 표지가 진짜가 아니다. 해당 표지들은 영화를 위해서 특별 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사진들은 모두 라이프 포토 컬렉션에 존재한다. 실제로 표지로 사용했을 법한 사진들을 선별하여 라이프 매거진의 정체성과 명성을 보여주고 있다.
Ref. TIME - Walter Mitty and the life magazine covers that never were (2014.11.30)
https://time.com/3491113/walter-mitty-and-the-life-magazine-covers-that-never-were/
월터 미티는 자신이 일하는 LIFE매거진의 모토를 언제나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며 일했다. 그는 마침내 세상을 향해 한발짝 나아가며 더이상 상상하지 않았다. 실전으로 옮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실제로 라이프사의 모토는 1936년에 발표되고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글귀이다. 영화 속 모토와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to eyewitness great events; to see and take pleasure in seeing; to see and be amazed; to see and be instructed - Henry R.Luce
'보고 즐기는 것, 보고 놀라게 만드는 것' 올 한해 열심히 보고 즐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모두 월터 미티처럼 용기있게 한발짝 나아가는 'little brave man'이 되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