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쳐 에세이
강제적 집순이를 끝내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의 퇴사와 함께 찾아와 나를 집에 머물게 하였다.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를 두기 위해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인다. 나 또한 외출이 꺼려져 강제적으로 집순이가 되었다.
집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의 오랜 숙원사업이 떠올랐다. 방에 포인트 벽을 만드는 것. 바로 셀프페인팅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즐거운 페인트 칠은 우리 엄마에게 큰 영감(?)을 주어 온 집을 다 뒤집어냈다. 가구를 재배치하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며 시간을 열심히 다 보냈는데도 코로나가 여전히 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체리몰딩이 가득한 옛날 아파트
우리 집은 체리 몰딩이 가득한 옛날 아파트다. 체리 몰딩을 떼어내려면 큰 공사가 될테니, 그건 현실적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포인트 벽지를 체리색과 어울리는 색을 찾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레퍼런스를 찾으며 눈에 띄었던 도판이 한 장 있다. Rudolf Klingsbogl의 실내 초상화였다. 우리집 체리몰딩보다 더 진한 나무색이 가득했고 그 뒤를 안정감있게 받쳐주는 녹색 계열의 배경이었다. 내 방의 포인트 벽은 당연스럽게 '케일'색으로 칠해졌다.
왜 그림이 아니라 초상화라고 하는가
실내 초상화(interior portrait/portrait d'intérieur)는 방(room)을 표현한 그림(picture)이다. 17세기 말경 유럽에 등장하여 19세기 후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던 화보 장르이다.
처음에는 갤러리나 도서관에 놓여진 가구, 인테리어의 모습을 남기기 위한 설명적인 그림이었다. 18세기 이르면, 부유한 귀족들이 자신들의 방을 그려 후손에게 남기기를 원했다.
실내초상화는 1812년 조세핀 왕후의 작은 갤러리 그림부터 '초상화'의 의미가 비로소 등장한다. 그림에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가구, 물건에 담겨있는 취향과 생각이 표현되었다. 심리적인 요소가 발현된 것이다. 또한, 비더마이더 시대의 실내초상화(Zimmer-Bild)에 표현된 공간 장식에 심리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비더마이더 시대의 가구는 깨끗한 선과 최소한의 장식이 기본이다. 내면의 평화를 중시하면서 사회적 조화와 질서를 동경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대표 여류화가 메리 앨런 베스트
19세기 실내 초상화는 큰 인기를 누렸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편안하고 친밀한 가정의 '집'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방 초상화를 요청했다. 또한, 이 열풍은 중산층의 귀족 취향을 모방하기 원하는 열망과 더불어 왕실로 퍼지며 유럽을 강타했다.
실내초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던 예술가들이 존재했다. 수채화 기교가 뛰어났고 소실점을 사용하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해당 장르의 숨은 주역은 따로 있다. 교양있던 젊은 귀족 여성들이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배우면서 자신의 방 또는 수업 스튜디오를 그렸던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여성들의 실내초상화는 대부분 익명이며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 앨런 베스트(Mary Ellen Best)와 같은 여류 화가들이 실내초상화의 대표화가로 당당하게 손꼽힌다. 그녀는 집의 부엌, 화실, 거실 등을 수채화로 그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 가지 조건
누구나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어한다. 20세기 초, '여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여성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다. 이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최소한의 기본권을 향유하기 위해 요청되는 조건이기도 하다.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Virginia Woolf, A Room of One's Own
버지니아 울프 친 언니의 실내 초상화
버지니아 울프와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화가가 있다. 그녀의 친언니, 바네사 벨(Vanessa Bell)이다. 바네사 벨도 버지니아 울프처럼 빅토리아 여성의 의무에서 벗어난 자유를 갈망했다. 또한, 자유를 위해서는 혼자 있거나 일하거나 친구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네사의 그림 속 배경은 집, 스튜디오가 전부다. 그녀는 그 당시 비평가들이 주장했던 근대성(modernity)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거리 속 모습이 아닌 '집 안'의 모습을 표현했다. 또한, 바네사는 자신만의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하며 더 넓은 사회문화적 경험을 하고자 했다. 20세기 초 런던의 문화와 지성의 산실이었던 블룸즈베리 그룹(Bloomsbury Group)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했다.
바네사의 작품 <다른 방 the other room>과 <대화 conversation> 속 세 여자들은 방 안에 있다. 두 그림 속 여성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다른방>의 여자들 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꽃병을 중심으로 나른하게 쇼파에 몸을 기대고 책을 보는 여자와 뒤에 우두커니 서서 창문 밖을 쳐다보는 여자, 그리고 화려한 패턴의 쇼파에 앉아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민하는 듯한 여자가 있다. 두 여성의 얼굴표정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얼굴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대화> 속 공간은 매우 사적이다. 독립적인 그녀들의 공간처럼 보인다. 세 여성은 책을 읽거나 피아노연주를 하고 있지 않다.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은 왼쪽 여성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이야기 중이다. 세 여성 모두 무척 진지해보인다. 그들은 견고하고 긴밀하게 집중된 주의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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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1843magazine.com/culture/look-closer/reframing-vanessa-b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