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라고 하면 좀 뭣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명품에 가까운 것은 바로 몽블랑 카드 지갑이다. 제부가 결혼할 때 선물로 준 것으로 현재 공식 사이트에서는 25~6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유사한 상표를 단 물건이 시중에 범람하는 물건이어서 가품일 경우를 무릅쓴다면 10만 원 이하로도 구할 수 있는 제품이다.
현금이 필요 없게 된 이 시대에는 사실 카드 지갑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삼성 페이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갤럭시 A90 5G도 보급형 스마트폰이긴 하지만 삼성 페이를 지원한다. 핸드폰만 들고 다녀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명함을 주고받을 기회가 가끔씩 생긴다. 그리고 도서관 카드를 갖고 다닐 필요가 있다. 이런 관계로 나는 몽블랑 카드 지갑을 들고 다닌다.
카드 지갑은 딱히 비쌀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누구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고 기능이 특별하게 추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몽블랑에서 만들었든 다른 로컬 브랜드에서 만들었든 카드 지갑은 별로 특별할 게 없다.
그럼에도 되도록이면 비싼 물건일수록 더 내구성이 뛰어나다든가 하는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장점이 있을 법하다.
내 카드 지갑에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명함, 도서관 카드, 주민등록증, 카페 도장 카드 같은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빵빵해서 곧 터져나갈 것처럼 보이지만 봉제선이 찢어지거나 모양이 심각하게 변형되지는 않았다.
천연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물건은 고온과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하면 안 된다고 한다. 물에 닿은 경우 매끄럽고 부드러운 천으로 즉시 물기를 제거하여 건조하라는 취급 시 주의사항도 붙어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녀석이다.
항상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카드 지갑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리더기에 갖다 대는 경우,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계산하는 경우, 증권회사나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경우에 밖으로 나온다.
특히 계좌를 만들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찍을 때 카드 지갑에 올려놓고 찍으면 검은색 배경이 자연스레 뒤따라와서 편리하다.
몽블랑 카드 지갑을 사용하기 전에도 나는 2~3만 원짜리 카드 지갑을 사서 갖고 다녔다. 인조 천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카드 지갑은 질감이 거칠었다.
몽블랑 카드 지갑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만져 보면 매끄러운 촉감이 느껴져서 좋다. 수많은 카드와 명함으로 인해 볼록해졌지만 허벅지를 찌르는 느낌은 없다. 그저 두툼한 뭉치가 착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이 물건을 선물한 제부는 아내인 내 여동생과 함께 모 대기업에 근무한다. 중소기업만을 전전해온 나는 이미 카드 지갑이 있으니 다른 것을 선물해달라고 했지만 결국 선물 받은 것은 카드 지갑이었다. 당시에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았다. 졸지에 명함 지갑 2개를 갖게 된 나는 별생각 없이 둘 다 서랍에 집어넣었다.
후에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된 후에야 새로 받은 명함을 넣고 다니기 위해 카드 지갑을 꺼내게 되었다. 사원증이 있는 대기업에 다닌다면 목에 걸 수 있는 카드 지갑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출입에 별 불편이 없는 지금, 목에 거는 지갑을 살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목에 거는 사원증과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여의도나 강남 등지를 누비고 다니는 직장인의 모습이 대중매체에 나오곤 한다. 이들은 카드 지갑 대신 금속으로 된 명합첩을 들고 다니며 명함을 교환한다.
얇고 차가운 명합첩에는 대기업의 로고가 박혀 있는 명함이 가득 들어 있다. 한때 나는 영원히 그런 명함을 가지게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했다. 명함이 사람의 격을 결정짓는다고, 명함첩을 꺼내는 사람의 동작 하나에도 사회적 계급이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고 어느 정도는 과장된 스토리다. 명함이나 사원증은 물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 신뢰의 고리 말고도 단순히 명함 한 장일 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을 채 한 달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둔 적이 있다.
나는 크게 절망해서 집에 틀어박혔다. 겨울부터 시작된 칩거 생활은 근 1년을 이어갔다. 당시에 동생은 이미 취업을 해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나면 밖에서 아침을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과 아버지가 출근을 하고 나면 TV에서 아침마당이 시작하는 음악소리가 났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자고 나면 다시 밤이었고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또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밤새도록 나는 똑같은 생각만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또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은 사실 지금에 와서도 유효한 질문이다. 40대가 되어도 나는 사무직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까.
또 언젠가는 집에 틀어박혀 밤을 새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 아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걱정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집에 틀어박혀 있던 당시에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직장이었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가 필요했다. 그 소망은 이루어졌지만 내가 원하던 방식대로는 아니었다. 나는 수많은 새로운 명함을 손에 넣었고 명함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곤 했다.
내 방에는 그렇게 쌓인 명함이 한 무더기다. 이 명함들을 다 지갑에 넣을 수는 없다. 명함 지갑이, 카드 지갑이 무용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명함을 넣고 다니는 카드 지갑은 비쌀수록 좋다. 다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돈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그 사실을 명확히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걸 가장 싫어한다.
가끔은 몽블랑 같은 달콤한 거짓말이 더 통할 때가 있다. 이 거짓말은 딱히 남에게 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자기 자신에게도 무해한 것이다. 천연 가죽으로 명함을 둘러싸고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수시로 감촉을 확인하는 것이 현실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정신 건강에 더 좋다.
몽블랑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가격의 브랜드를 추구하는 건 어떨까. 슬슬 지갑 사정이 곤란해지는 지점일 것이다. 카드 지갑은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얻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물건은 아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백이나 남자들에게 기품을 더해주는 시계보다는 더 실용적인 물건이다. 언젠가는 더 비싼 카드 지갑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거리낌 없이 카드를 꺼내 결제한다. 기존 카드 지갑에서 물건을 모조리 꺼내 옮겨 담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단계 더 높은 천연가죽의 감촉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