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늦게 딴 편이다. 보통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따는 시기는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남는 시기인 경우가 많다. 나는 그때 따지 않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땄다. 굳이 자동차를 몰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차를 살 돈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버지 차를 빌려서 몰고 다닐 수도 있지만 차를 타고 갈 어딘가가 나에게는 없었다. BMW. 버스, 지하철, 걷기가 내게 걸맞은 교통수단이라고 느꼈다.
운전면허를 늦게라도 따게 된 것에는 부모님의 강권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2년 정도를 허송세월 했는데 그동안 집에 있는 것을 부모님이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의정부에 있는 자동차 학원에 등록했다. 필기시험은 한 번에 붙었지만 실기 시험은 한번 떨어졌다. 운전을 하는 데에도 운동신경이 중요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뉴SM5(중고)를 타고 홍대에 공연을 보러 가거나 한남동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홍대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에 그다지 적절한 곳이 아닌데 서울 어디나 그렇듯이 주차장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홍대 앞에서는 꼭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우르르 마치 보이지 않는 횡단보도라도 있는 것처럼 무단횡단을 했다. 사실 나도 차를 몰고 가지 않을 때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무단횡단을 여러 번 했다.
길은 좁고 차는 많고 사람들로 붐비는 홍대만큼 차가 사람 다니는 곳까지 굳이 밀고 들어오는 곳도 없을 것이다. 특히 걷기 좋은 거리에 이르면 상상마당에서 옷가게 거리까지 이어지는 이 긴 골목에 꼭 차를 몰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길이 있는데도 굳이 인파를 헤치고 차를 몰고 다니는 심리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홍대에 차를 몰고 가면 노면 주차장에 평행 주차를 힘겹게 했다. 주차원 아저씨한테 도움을 받았다. 주차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하면 나름 주차 실력도 괜찮아질 텐데 어쩌다가 몇 주에 한 번씩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몰고 나가는 차다 보니까 항상 주차가 문제였다.
그래도 홍대는 주차를 도와줄 수 있는 주차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면 다시 차를 몰고 집까지 돌아오는 게 내 루틴이었다.
아버지의 뉴SM5는 십 년이 넘은 차라서 가속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코너링도 좋지 않았다. 뒷문 오른쪽 창은 자동으로 내려가지 않기도 했다.
운전면허를 딸 때는 1종으로 땄기 때문에 1.5톤 트럭을 운전했다. 자동차와 트럭은 차체 너비가 달라서 운전 감각이 달랐다. 수동으로 운전을 하다가 자동으로 운전을 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로 먹고 살 게 아니라면 굳이 1종 면허를 딸 필요가 없는데도 남자라면 1종을 따야지라는 어렴풋한 생각에 1종을 땄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로 수동 운전을 할 일이 없어서 클러치 조작이나 기어 변속하는 법은 다 잊어버렸다. 잠시만 방심하면 엔진 시동이 꺼져버리는 수동 기어 트럭의 불편함이란. 무인 전기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운전면허를 딸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인 전기차가 보편화가 되더라도 혼자서 드라이브하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을 것 같다. 어쩌다 가끔 운전을 하는 것이지만 짧은 거리를 오가는 것에도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우선 외부와 완전히 분리된 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또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놔도 문제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공연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집까지 차로 바래다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였다.
한남동에 있었던 꽃땅이라는 바 겸 공연장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여자 친구와 같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 노원까지 데려다 달라는 말에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운전실력으로는 한남동에서 노원까지 한참이 걸렸고, 위태스러운 코너링에 술에 취해 잠을 자던 지인의 여자 친구가 깨어났다. 그래도 자동차를 몰고 다니기 전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해본 적은 없지만 자동차를 가지게 된다면 가장 즐거울 일은 아마도 여자 친구를 옆좌석에 태우고 다니는 것일 테다. 여자 친구는 아니지만 여자 지인을 옆자리에 태운 적이 한 번 있었다.
홍대에서 만나 곱창을 같이 먹었다.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노면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 차 주변에서 사람들이 뭔가 드라마 같은 걸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뉴SM5에 기대 서 있기까지 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주변에 널린 방송 기자재 때문에 차를 빼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 차에 기대어 서 있던 사람이 안내를 해줘서 차를 간신히 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무단 횡단하는 구역을 지나는데 우와~ 하는 함성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때가 내가 여자를 옆자리에 태우고 처음으로 운전을 해본 날이었다. 문득 으쓱해지고 뭔가 어른으로 가는 징검다리 하나를 건너간 듯한 느낌이 찾아왔다. 혼자서 운전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여자 지인은 옆자리에 앉아 운전하는 내내 잡담을 늘어놓았다. 나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간단하게 대답만 하며 그녀의 집 근처로 향했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운전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내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 이게 차를 타는 이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만약 아버지 차가 아니라 내 차라면, 또 중고 뉴SM5가 아니라 테슬라 모델 3라면 어땠을까. 분명히 100배는 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빌린 차라도 기분이 좋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성과 함께 드라이브한다는 것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왜 남자들이 차에 열광하는지 또 차를 집보다 먼저 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만약 연애를 한다면 차야말로 필수품인 것이다.
여자 지인을 그녀의 집 근처에 내려다 주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를 더 모아야 내가 원하는 차를 살 수 있을까. 또는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차량 유지를 할 수 있을까.
차는 돈을 모아서 사는 게 아니라 일단 할부로 사서 매달 갚아나가는 거라는 얘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수입이 어느 정도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이란 도시의 1인 생활자인 내가 차를 사게 될 일은 아마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독립을 한 이후에는 아버지 차를 빌릴 기회가 없었다. 때문에 운전 실력도 거의 십 년째 그대로다. 부모님 집에 있을 때는 출근할 때 차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항상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였다. 서촌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인데 건물 앞에 차를 대놓고 있으면 미용실 주인이 전화를 해서 차를 가로로 대지 말고 세로로 대라느니 하는 요구를 해댔다.
업무를 보다가 주차 위치를 변경하려고 다시 나가는 것이 귀찮고 업무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특히나 주차에 취약한 나는 주차 위치를 수정하다가 결국 화가 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더 이상 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차를 몰고 다닐 때의 기분, 이점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다. 만약 차를 사게 된다면 전기차를 사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 보조금도 나오고 그때쯤에는 전기차의 가격도 충분히 떨어져 있을 테니까.
운전실력이 나아질 일은 아무래도 조금 뒤일 것 같다. 그때가 언제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