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학교 성적을 보고 나는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게 한국식 사고 방식이다. 우주비행사가 되는 건 학교 성적과는 관련이 없다. 나는 SF를 읽으면서 어떤 우주비행사도 하버드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든가 박사학위를 가져야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아마도 이 학벌주의는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은 문관이 득세했던 나라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학교 따위로 인생이 정해진다니, 너무 지루하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신춘문예라는 제도가 있어서 좋은 학교의 좋은 학과를 나온 사람들의 신춘문예 당선 비율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춘문예는 대개 정형화된 방식으로 글을 선정하고 교수들은 그런 정형화된 글을 쓰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학사 학위가 필요하다. 이것도 매우 동아시아적인 사고 방식이다. 소설가의 세계를 학위 따위로 재단하려는 건 너무 우스운 일이다. 그렇다면 문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만이 시를 쓰고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뭐든지 자격증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예술에는 자격증으로 정해지는 세계 따위는 없다. 그런 사람은 애초에 예술가도 아니다. 예술가를 흉내내는 흉내쟁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주인이 되려면 실제로는 여러 학문의 박사 학위와 체력, 재력 등이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우주인이 된 모 인물을 보면 젊었을 때는 군인으로 파병돼서 훈장을 여럿 받았고, 이후에는 의사가 되어서 사람을 살리다가 우주인으로까지 커리어를 넓힌 경우다. 하지만 동아시아적으로 생각하면 의사가 된 것에서 멈추지 굳이 우주인까지 되는 건 너무 오버스펙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인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유명인이 된 모 인물의 사례를 보더라도 한국 사람이 우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편린을 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의 편견대로 학위가 없으면 우주비행사 따위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구자만으로 가득찬 SF가 너무 재미가 없듯이 그런 세상은 더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고 그 세상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