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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구씨 Mar 13. 2019

멋대로 쓰다 #2. 니가 싫어하는 글

안 볼 수는 없는 글.


주의

아래 내용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읽을 때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남'이 래디컬 페미니즘을 해야 하는 이유








 ‘한남’이라는 단어가 인터넷 상에서 부상한지도 벌써 수년이지만, 아직까지 ‘탈한남’ 붐은 오지 않고 있다. 독기 어린 외침에 겨우 잠 깬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가부장적 사회에 뼛속까지 체화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렇다, 우리 한남들은 좀 부끄러워해야 한다. 모 대학교 여학생 기숙사에서 남학우가 침입해 성추행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범죄가 일어나는 동안, 해당 대학교 남학우들의 일각에서는 아직도 “왜 남학생 기숙사는 없냐”는 얘기가 돌아다니는 실정이다.


 비단 범죄만이 그러할까? 만연한 아이돌의 성 대상화와 그걸 자본화시키는 연예업계, ‘예쁜 몸매도 스펙’ 이라는 어이없는 슬로건을 내거는 피트니스 센터, 지하철 곳곳에 붙어있는 성형외과 광고, 조금만 눈돌리면 ‘혐오’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은 ‘혐오의 왕국’ 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 평등 이슈에서 여성주의의 손을 들어준 남성들이 시인 윤동주처럼 부끄러워만 하고 있어야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부끄러워만 하고 있는 것은 남성에게 독이 된다. 페미니즘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남성에게 필요한 사상이다.


 실제로 페미니즘 운동권에 있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천인공노할 말이라고는 생각한다.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만큼 자기모순적인 단어도 없을 것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함부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약자의 목소리로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작업에 다른 누군가의 방해가 들어가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왜 나는 남성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위험한 생각이지만, 한번 남성의 입장에 서서 얘기를 진행해보자.


 한 인터뷰어가 누군가에게 질문했다. “성 평등을 위해, 국회 내 올바른 성비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여성이 100%여야 합니다.” 인터뷰어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답했다. “왜냐하면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이 짧은 문답이 내게는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 한남들은 흔히,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우월사회 - 평등사회 – 여성우월사회로의 이행으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저 짧은 문답을 듣고, 나는 진정한 평등사회가 오려면 오히려 남성우월사회 - 여성우월사회 - 평등사회의 단계를 밟아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먼 훗날의 입법자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여론의 동의를 얻어,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약자였던 경험’이 아닐까? 권력이 집적되지 않는, 누구나 언제든 약자로 전락할 수 있고 또 그걸 모든 구성원이 인지하는 사회에선, 당연 약자를 위한 입법이 성행하게 마련이 아닐까? 아마 ‘평등사회’란 그런 것을 얘기할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남성이 약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언젠가는 오고야 말 것이라는 점이다. 인류가 평등사회를 향한 노력을 전면 중단하지 않는 이상엔 말이다. 약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누군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약자가 되었을 때, 그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한국 남성에게로 돌아오자. 과연 그들이 정말로 ‘약자였던 경험’이 있기는 할까? 과연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이 이다지도 약자를 구제하는데 무관심한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한국 남성은 안전불감증이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기득권일 것이라 믿는 단꿈에 빠져있다. 조금 강하게 말하자면, 남성계급의 전복은 오히려 남성들에게 필요하다. 남성은 그들이 약자가 되었을 때의 대비를 해야만 한다.


 감수성을 통한 약자의 이해를 요하는 작업에 갑자기 뜬금없는 각주가 달린 것 같은 기분일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야말로 ‘페미니즘을 따르는 남성’을 아우르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지는 사회가 오지 않을 수는 없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평등해질 것이다. 남성중심적인 논의이긴 하지만, 우리 한남들은 시야를 넓게 가지고, 정말로 ‘평등’해졌을 때의 그 불편들을 감수하려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만 한다. 남성계급을 아예 전복시켜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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