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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구씨 Apr 03. 2019

전하지 못한 진심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Love Yourself'라고, 나 대신 말해주는 사람들이니까. 나로 살자고, 나로 살지 못하는 나 대신 얘기해주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그녀를 위해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내 고질적인 병이다. 어떤 각오든, 어떤 다짐이든, 다음 날 나태해져 있을 내 귓가에까지 그 목소리가 닿질 않는다. 내 안에 또 내가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내 발목을 낚아채는, 역겨운 웃음을 흘리며 여기 있으라고 말하는, 검은 나.


    참 편한 변명거리다. "난 더 나아지고 싶은데, 내 역겨운 본성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 그렇지만 넌 더 나아져야 한다. 역겨운 걸 아는데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더 역겨우니까. 역겨운 본성 같은 건 없어. 역겨운 건 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지. 그래서 더 나아지고 싶은 너를 연기하고 있는 거야. 사실은 너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좋잖아? 그렇게 땀냄새를 풀풀 풍기는데도, 몸을 씻으러 가기보단 자리에 드러눕고 싶잖아?


    닥치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를 모르겠다. 난 분명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런데 왜 난 그에게 꺼지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아... 답은 간단하다. 꺼지라는 말을 뱉는 사람도 나다. 꺼지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나다. 꺼지라는 말을 듣고 입을 꾹 닫고 울음을 참는 것도, 나다. 꺼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거부당하는 게 무서워서, 자신을 방어하려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사람도, 나다. 하지만 널 거부해왔던 사람은 주욱 너 자신이었어, 가엾게도.


    그녀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녀만 원한다면, 내 모든 걸 송두리째 넘겨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일을 보는 나를 사랑한다. 다시 걸어갈 의지를 닦게 하는, 그런 성큼성큼 한 걸음걸이를 그녀는 사랑한다. 그런 나도 분명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녀를 위해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난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가 사랑하는 나. 그녀가 염려하는 나. 그녀가 귀여워하는 나. 그녀가 예뻐하는 나. 모두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이름은 뭘까. 온 세상에 나만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분이다.


    머리로는 아는 것이 참 많다. 날 가르친 것들, 내가 배운 것들이 내 현상을 설명해내려고 머릿속에서 아웅이다. 나는 그것들에게 모두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한 뒤, 불이 기분 좋게 타닥거리 벽난로 앞에 앉는다. 한참 울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 그렇지만, 동시에 가슴은 맑다. 내일도 모레도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나에게 이름을 붙여야 한다.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내일 아침, 잠에서 덜 깬 나 자신에게서 또 악취가 풍겨 나오더라도,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자. 내일은, 오롯이 나만을 주어로 해서 세상을 보자.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내가 아니라, '나'로. 안쪽 어딘가에서 여전히 세상과 나를 비웃고 있을, 검은 나에게 말을 걸자. 그를 달래자. 조금만 따라오라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될 방법은 모르겠어. 그치만 같이 찾아보자. 우리 친구가 되자. 날 도와줘.


    ... 내가, 날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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