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문 Aug 31. 2020

빨래의 하루

[38주] 출산 빨래 완료

오늘은 38주 차의 1일이다. 배는 더 나올 수 없을 만큼 빵빵하다. 37주부터 아기가 나와도 가능하다고 한다. 친한 친구는 지금 나의 시기인 38주 차에 예쁜 딸을 낳았다. 나도 이번 주부터 가능성이 있다. 두둥. 하지만 아직 경각심이 들지 않다니 나 너무 이상하게 태평한 임신부일까.


다행히 오늘은 빨래의 날이 끝나는 날이다. 지난주부터 맑은 날을 택해 가재 손수건 40장과 선물 받은 배냇저고리와 우주복, 내복들을 빨았고, 오늘은 겉싸개와 담요, 역류방지 쿠션과 수유쿠션의 껍데기를 벗겨 빨고 있다. 다행히 지난주까지 비가 왔는데 이번 주는 맑아 빨래를 하는 기분도 참 상쾌하다.


이렇기 빨래를 하고 개고 있는 스스로의 만삭 임신부의 모습이 새삼 대견하고 낯설기도 해 혼자 실없이 웃는다.


빨래를 한다는 게 나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먹고 실행하기까지 꽤나 몇 주의 시간이 걸렸다. 빨래를 시작하려니 손수건들이 없었고, 어떤 손수건들이 좋은지 재질의 차이는 어떤지 폭풍 검색을 한 후 주문을 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걸 사다 보니 하루하루가 금세 가버렸다.



출처 : 핀터레스트


막상 빨래를 하려니 여름 장마가 오기 시작했고, 빨래를 돌리려니 아기 세탁세제는 양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물높이와 온도는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 자잘한 것들도 알아보며 해야 했다. 휴. 이렇게 사소한 일상이 될 일에도 이런 품이 들어가다니 처음에는 괜한 자책도 했다.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걸 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서 더 어렵게 느껴지나 하는 자책감.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을까?


여러 검색 끝에 찾은 나의 세탁법 :

# 40장 정도 넉넉히 준비한 가재 손수건과 천기저귀(5장)는 3번 세탁한다. 밤부 소재이고 손수건은 손수건 자체에서 먼지가 많이 난다고 해서 1번 돌리고 말리고, 2번째 돌리고 말리고, 3번째 돌리고 말렸다.

일반 세탁기 기준으로, 울세탁 모드(온도 조절이 되면 30도)+헹굼 최대 *3번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세탁기를 제대로 써본 적도 그렇고 모든 것이 난 새롭다. 결혼 전엔 내 방 청소를 막대 정전기 청소포로만 쓱쓱 문질러댔었고, 화장품들과 사들인 책들이 쌓인 책상을 정리하는 게 내 방 주 청소 포인트였다. 엄마의 가사노동이 새삼 훅 가슴팍에 안겨진다. 엄마가 했을 땐 그렇게 쉬워 보였던 것들이 참 태산 같다. 정리를 하겠다고 몇 권 정도의 정리정돈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휘리릭 넘겨봤지만 하, 저분들은 나와 레벨이 다르다.


저런 꼼꼼함이라니 뭐든지 할 수 있겠다 싶다. 위대한 정리가들. 아이러니하게도 정리 책들을 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과정들이 의외로 '정석의 길'이었음을 깨닫는다. 한결 마음이 무향의 아기 세탁세제 향과 함께 두둥실 가벼워진다.


이제 빨래가 끝나고 일주일, 이주일이 좀 안되어 '나의 작은 아이'가 이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저 쪼끄만 옷들을 입고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빨래의 하루를 끝내고 또 새내기 엄마의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오늘 빨래 끝!

    


작가의 이전글 [버터일상]전남친 토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