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기 힘든 출근 발걸음
일은 이제 적응이 되어 갑니다. 3주가 넘어가는 중이니 적응은 되어 가지만 여전히 내 자리란 생각은 어려울 정도로 출근 전 마음이 무겁습니다. 왜일까 출근 전 운전 중인 차 안에서 되뇌어 봤습니다.
첫째로는, 업무가 전 직장에서도 안 해 본, 좀 더 확장된 업무였고 어려웠고, 늘 생방송이라 가슴이 늘 조마조마한 기분이었습니다. 둘째로는, 생방송이지만 오랜만에 복귀한 자리인지라 아직도 시간 계산이 어렵기만 합니다. (뉴스 큐시트를‘런다운’이라 하는데, 앞 뒤에 광고(cm)가 있기에 시간을 정확하게 뉴스를 시작하고 끝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그래도 안정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나름 사랑받는 아내이자 딸이자 며느리인데, 문득 나온 세상에서는 그저 아직 방송이 미숙한 30대 후반의 pd일 뿐입니다. 운전대의 책임을 온전히 맡는 당당한 자리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아직은 믿을 수 없는 책임자이랄까요.
아.. 이 점이네요. 나도 나 스스로 잘하는지 확신할 수 없고, 요령도 피우지 않는데 늘 떨리고 실수 직전의 사람 같이 느껴지는 이 미숙한 20대 초반의 사회생활 기분. 롤러코스터를 타고 떨어지기 직전의 기분을 유지하며 일을 하는 이 까마득한 기분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뉴스라는 것이 매일 새롭고 살아있고 무엇보다 틀이 정해져 있어, 임할 때 안정감이 있고, 나름 안전벨트를 하고 근무하는 기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온 이 세상은 안전벨트 없이 나 홀로 질주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많은 기술감독님들과 AD FD 실력 있는 앵커들과 함께 하지만 저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하는 느낌이니까요..)
육아를 하다가 나왔기 때문일까요? 세상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진 걸까요? 잘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를 의심하기에 내일 출근을 또 할 수 있을지 퇴근 때마다 고민합니다.
“엄마 잘 갔다 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인사하는 3살 첫째의 인사와 친정엄마가 둘째를 안고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해야지 하는 인사를 뒤로 하고 도착해서는 미숙한 기분으로 몇 시간을 근무하다가 집에 와서 또 그 피곤한 상태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악순환이라니..
참 고단한 한밤의 생방송 pd입니다. 예전에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했던 그 조용한 바닷가에 대낮처럼 켜져 있던 고기잡이 배들 중의 하나의 키를 잡고 어둠 속에서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 서는 참 밝은 불빛 속의 하나이지만, 그 배의 주위로는 어두운 칠흑 같은 밤바다의 적막이 있을 테지요. 그래도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고, 함께 일하고 있는 어부들의 온기에 기대어 그 하루도 마치고 고단한 발걸음을 향하는 것이겠지요.
잠을 깨이려고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다시 들이키고 테이크 아웃합니다. 가야죠 나의 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