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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바다 Mar 29. 2019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15)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늘 가슴에 사직서를 써넣어가지고 다닌다.’ 직장인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회사생활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황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말이지요. 회사 최고 위치에 있는 CEO라고 다를까요? 상황과 입장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CEO 한 분을 만났습니다. 내담자는 직원들에게 늘 인자한 분, 신사적이고 정이 많은 분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습니다. 직원들을 질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극도로 불안해졌고,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으로 모면했습니다. 그렇게 넘어간 소소한 실수들이 점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손실로 이어졌지요. 저는 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분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 봐요.” 그러자 내담자는 “제가요? …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시더군요.    


착한 사람으로 살기 힘들 때

‘착한 아이 콤플렉스’,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저는 내담자에게서 그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로버트 뉴턴 팩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란 책을 권했지요. 이 책은 저자 자신이 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일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또 행했는지를 그린 자전 소설입니다. 

어느 날 로버트는 옆집 테너 아저씨네 암소가 출산하는 것을 도운 대가로 새끼돼지 핑키를 선물 받게 됩니다. 이날 이후 핑키는 로버트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핑키는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돼지라는 것이 밝혀지고, 생계가 어려워진 로버트의 아버지는 핑키를 도살하기로 결정합니다. 새끼를 낳지 못하는 핑키는 가난한 로버트의 집에선 먹을 것만 축내는 돼지에 불과했으니까요. 로버트는 아버지가 돼지 잡는 일을 해서 밉고, 또 그 과정을 지켜보게 해서 원망스럽습니다. 

처음 책을 읽고 저를 만난 내담자는 로버트에게 강하게 이입했습니다. 핑키의 도살 장면이  마음 아팠고, 로버트의 아버지가 아들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났다고 말했지요. 아들 아끼고 사랑했던 돼지의 도살 과정을 지켜보게 하는 것이 맞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저는 내담자에게 로버트의 입장이 아니라 아버지 입장에서 다시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흔히 '착하거나 말 잘 듣는 것은 좋은 것, 착하지 않거나 말 안 듣는 것은 나쁜 것'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타인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내면화한 것인데요.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고 버림받을 것이다."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 생겨난 것이죠. 대개 어린 시절 처한 상황에서 기인하고, 고착화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경우 자신보다는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이 하는 말에 집중합니다. 갈등 상황을 피하려고 하고 쉽게 거절하지 못하죠.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해 잘못을 지적하거나 때로는 싸워야 하는 상황마저 외면합니다. CEO로서 이러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치명적인데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결정권자로서 거절 못하는 그를, 상/벌의 명확한 처리를 회피하는 그를 과연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까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회피한 모든 것들이 결국 그를 우유부단한 사람, 냉철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려면 그런 건 이겨내야 해. 어차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아빠의 커다란 손이 얼굴을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닦아주는 아빠 손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잔인하게 돼지를 잡은 울퉁불퉁한 손가락이 가볍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 손을 잡아 입맞춤을 했다. 돼지 피와 살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아빠 손에 키스를 퍼부었다.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며칠 뒤 책을 다시 읽고 만난 내담자는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그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자식에게 때로는 아프지만 실행해야만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또한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이죠. 그분은 자신에게도 그런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힘들었던 어린 시절,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상황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아버지처럼 눈물을 흘리면서도 냉정해야 할 순간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좋은 리더로 남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런 마음이 독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루 일이 끝나면 씻고 또 씻는데도 돼지 냄새가 좀처럼 떠나질 않아. 그래도 네 엄마는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았어. … 언젠가 내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
“그러니깐 엄마가 뭐랬어요?”
“엄마가 말하길 나한테서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가 난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대.”    


진정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착한 아이 증후군은 내면의 욕구나 좋고 싫음의 소리를 듣지 못할 때 나타납니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잘 보이고 싶고,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거죠. 하지만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만 의존하다 보면 나만의 향기를 잃을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먼저 스스로 내면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나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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