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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갈님 Oct 11. 2023

에세이 #7. 스타트업에서의 1주년, 그 회고

2023.10.11 기록

2022년 7월 11일.

코로나 확진으로 동료들과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가 Refresh 할 겨를도 없이 격리 해제 되자마자 판교가 아닌 강남으로 출근했던 날.

(금요일 퇴사, 월요일 입사는 다신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이것 또한 내 운명)

그 낯설었던 날의 온도, 기분, 주위 그림이 눈에 선한데 그것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특히나 2008년 8월에 사회생활 첫 발을 디딘 나는, 한 달 전 15주년도 같이 맞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 16년 차, 특히 전 직장에선 11년을 다녔기에 1주년이 뭐 대수겠냐만은.. 스타트업 씬으론 처음 발을 들인 뒤 격변의 1년을 보내다 보니 감회가 새롭긴 하다.

그래서 기념 삼아 그리고 혹시나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고민하고 있을 분들께도 정보를 드리고자 스타트업은 어떤 곳인지 회고를 해본다.

(나의 경험과 느낌을 토대로 적었기에 지극히 주관적이다.)



[참고] 전/현 직장 정보   

전 직장 : 직원 수 1000명 이상의 게임회사 / 데이터분석팀 팀장 / 팀 최대 인원수 : 11명

현 직장 : 직원 수 50명 정도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 데이터분석팀 팀장(신생 팀 셋업&빌딩부터) / 팀 최대 인원수 : 3명



1. 만능재능꾼이 많다.

한 영역에 있어 전문가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스타트업에서는 여러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회사로 예를 들면.. 검사출신 개발자, 변호사출신 전략기획자, 기자출신 ooo 이런 식으로 아무래도 리걸테크 산업이기 때문에 법조계에 계셨던 분들이 많았다. 

꼭 법조계 경력이 아니더라도 적은 리소스로 최대의 퍼포먼스를 내야 되기 때문에 Full Stack 개발자, UX/BX 올라운더 디자이너, PM/PO 모두 겸직하고 있는 기획자, 엔지니어링 to 분석까지 다 하는 우리 팀 등 한 명 한 명의 맨파워가 강하다. 

그 말은 즉, 경력자라면 나도 올라운더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고, 신입/주니어라면 폭넓은 업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되겠다.


2. 생각의 영토와 네트워크가 확장된다.

나는 이 부분이 내가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으로 조인하면서 얻게 된 큰 이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 직장은 직원 수가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누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해 관계가 협소했다. 

협업 포인트가 있는 분들 위주로만 알게 되는데 사실 그 마저도 메일과 메신저를 메인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얼굴을 한 번도 못 봬서 오프라인으로 지나쳐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저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더 나아가 ‘저분은 어떤 사람인지’까지 아는 사람은 같은 조직의 사람들과 기민하게 협업하는 몇몇 사람이 전부가 된다. 


그런데 스타트업은 좀 달랐다. 

내가 전사 모든 조직과 협업 포인트가 있는 데이터팀이라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으나 각 팀이 하는 일, 각 팀의 고충, 그리고 그 안의 조직원 한 명 한 명의 스토리를 알게 되는 경험이 생기게 되니 그것이 큰 배움이 되었다. 

비즈니스 문제에 있어서도 각 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른데 기존에는 알기 어려웠던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니 특정 관점에서만 고민했던 낮은 식견도 높아지는 듯했고, 다양한 직무의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타직무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이 쌓이고 개방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게 됨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또 그만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고,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Boundary가 확장되는 것 또한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런 만큼 회사 안에서의 팀 이동이나 새로운 시작은 쉽지 않다. 

전 직장에서는 업무 전환을 하고 싶다거나, 특히 팀과 내가 Fit이 맞지 않을 때 타 팀으로의 이동 기회가 열려있는 편이었다. 

같은 Function의 팀이 프로덕트/사업부마다 있었기 때문에 TO만 있다면 조직장과 이야기하여 지원할 수 있었다. 

사측에서도 정보가 없는 New Face보단 어느 정도 검증되고 레퍼런스 체크가 가능한 사내 직원을 이동시키는 것이 덜 리스키 했기 때문에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대부분 Function별 One Team이라 이 팀과 Fit이 맞지 않으면 같은 업무로 사내 팀이동은 불가능했다.


3. 모두 성장에 목말라있다.

솔직히 스타트업에서 창업자를 제외한 구성원 중 “이 회사가 마지막이야. 난 여기서 뿌리를 내리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 Next Step으로 나아가기 위한 스파르타식 훈련소(?) 느낌으로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해 스타트업 씬으로 뛰어들지 않나 싶다. 

그래서 대부분이 업에 대한 태도가 좋고, 열정적이다. 

그래서 나태해지려다가도 주변 동료들을 보면 바로 자극이 되어 번아웃이나 슬럼프를 비교적 빨리 극복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퇴사자로 인한 인력 교체 또한 굉장히 빈번히 일어나는 점은 정이 많은 나에겐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팀 리드 입장에서도 내 팀원의 퇴사는 상실감이 크고 어려운 채용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하기에 절대 자주 겪고 싶지 않은 이벤트인데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동료들이 다양한 업계와 회사로 이직하게 되어 직원만 알 수 있는 각 회사의 분위기, 업무 방식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게 되고 인맥 또한 넓어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실제로 지인이 이직하려는 회사 대부분에 재직 중인 인맥들이 있어서 정보를 얻어 주거나 추천을 해주거나 할 수 있어서 뿌듯했던 기억이다.


4. 각개전투의 전쟁터

아쉽게도 스타트업에는 시니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팀장 없이 주니어 몇 명으로 운영되는 팀도 있다 보니 좋은 사수/부사수 시스템이나 온보딩, 성장 프로세스가 있기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를 보고 배우거나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는 경험을 스타트업에서 겪기는 어렵다고 보였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는 방법은 결국 주도적으로 많이 경험하고 스스로 부딪히며 깨우치는 것이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잡초처럼 강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 좀 안타깝다. 

그래서 전 직장에서 학습/체득한 리더십, 매니지먼트 방법론, 좋은 Tool을 기반으로 제대로 된 시스템 안에서 맘껏 성장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에 내 능력을 쓰자, 그런 팀을 만들자고 더욱 다짐하게 된다.


5. Followship이 부족할 수 있다.

이건 4번과 같은 환경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주니어 때부터 스스로 헤쳐나가며 전투적으로 일하다 보니 각자의 프라이드와 주관이 훨씬 세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쌓은 경력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 연륜 등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상명하복 문화보다는 서로의 Followship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소통하고 공감을 통해 개선되는 문화라면 더 좋은 것 같고, 나도 그들을 설득 또는 공감시키는 과정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그러면서 또 배우는 것도 있는 것 같다.


6. 팀 리드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다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글을 따로 쓸 생각인데, 명확한 것은 스타트업에서는 완벽히 “실무형 팀장”를 원했다. 

전 직장에서는 개인 업무 성과보다는 팀 리드로써 ‘어떤 팀을 꾸려가고 있는지, 매니지먼트 측면의 결과와 성과’에 높은 비중을 두고 평가했다면, 현 직장에서는 리드라도 직접 업무 결과를 내어 제품과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을 원했다. 

앞 번호에서 말한 대로 최소한의 리소스로 최대의 효율을 내야 하고 모두가 일당백 이상을 해야 하기에 아무리 리더십이 좋더라도 실무 감각이 떨어지는 팀 리드는 덜 환영받게 되는 듯하다. 

만약 본인이 매니지먼트와 코칭 위주의 리더십을 갖고 있고 추구하는 방향도 그렇다.고 한다면 스타트업에서는 팀 리드가 아니라 실장급 이상의 직책을 맡아야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7. 데이터 직무인 우리들에겐 너무 좋은 무대다.

이것도 만족스러운 부분인데, 데이터 조직이다 보니 Action까지의 권한은 없어서 답답하고 아쉬울 때가 많다. 

그리고 Action까지 가는 데 있어서의 프로세스도 겹겹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 직장에서는 제품 개선의 정책 기획이나 전략 기획 측면에 있어서도 적극적/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린(Lean)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확신을 갖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데이터를 통해 논리적인 추론을 하고, 근거와 해결 방법을 찾는 것에 다들 진심이기 때문에 그 ‘데이터’를 다루는 업을 하는 나로서는 스타트업 씬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만큼 업무를 하는데에 있어서 훨씬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어떤 것이든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것이라 최대한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적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전 스타트업에 도전하러 갑니다.’라고 했을 때 ‘너답다.’란 말도 많이 들었지만 한 편으론 '굳이 왜?'라는 걱정의 목소리도 많았다.

물론 나도 내 커리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사실 지금도 가끔씩은 불안하다. ㅎㅎ;;



하지만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스타트업 생태계와 신생이었던 데이터 팀을 셋업, 빌딩부터 소프트랜딩을 거쳐 회사에 Data Culture를 안착시키면서 얻은 여러 배움, 나의 성장과 성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곳에서의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에 큰 감사함을 느끼며 나의 이번 도전도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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