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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언니 Jun 10. 2021

에피소드 3. 반쪽짜리 삶

ft. 뭐 하나제대로 하는게 없는 나

멋지게 차려입고,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그다지 멋질 수도 화려할 수도 없었다.


일단,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1년 동안 아이를 봐주시기로 한 친정엄마는 무조건 밤에 잠을 푹 자야 낮에 아이를 볼 수 있다고

밤에는 우리 부부가 데리고 자길 원하셨다.


당연히 우리 부부가 데리고 자는 게 맞지만,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치여 집에 돌아오면, 다시 육아에 치여 잠도 잘 수 없는 나날들이 지속되니 

이건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잠을 못 자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듯 뜨거웠다.

피부는 푸석하고, 몰골은 우울했다.

당연히 회사에서도 활기 있고 기운차게 일을 할 수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는 좀 젊을 때 낳아야 한다고 했던 걸까?

육아에 있어 왜 체력이 중요한 부분인 지 절실히 깨닫는 중이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나는 반쪽짜리였다.

당시 나는 엄마의 역할도...회사원의 역할도... 모두 온전히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윗분이 회의실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김 과장, 요즘 무슨 일 있어? 육아가 많이 힘들지?"

"아...네....힘은 들지만, 친정엄마와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 괜찮습니다."

"그건 그거고...직원들이 김 과장한테 벌벌 떠는 거 알지?"

"네? 누가 벌벌 떨어요? 제가 뭐가 무섭다고......요즘 세상에..."

"김 과장은 모르겠지만, 김 과장이 고개만 돌려도 애들이 벌벌 떨어..."


이게 무슨 말씀이시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며칠 전 일이다.

팀 후배 직원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후배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그런데 이 후배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뭐라 뭐라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을 하니 내게 잘 들릴 리가 없었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OOO 씨, 뭘 물어보면 적어도 고개는 돌리고 대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부장/국장이라도 그렇게 고개도 안 돌리고 대답했을까?"

이랬더니...그 후배 직원이 매우 매우 당황하면서....

"그게 아니고요 과장님..." 하면서 벌떡 일어나 내 자리로 달려오더니 해명 아닌 해명을 한 일이 있었다.


아마도 이 사건을 말씀하시는 듯했다.


인정한다! 그날 내가 좀 예민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후배 직원의 행동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사람 봐가며 행동이나 말이 달라지는 사람을 경멸하는 나로서는...


내가 그 후배 직원보다 10살이나 많지만,

그 후배 직원이 보기에 나는 그냥 일개 과장일 뿐이니 그런 행동이 나온 것이리라~

정말 내 말대로 내가 부장이나 국장이었으면, 

적어도 고개는 돌리고 대답했거나, 벌떡 일어나 그 자리로 달려갔을 확률이 100%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굳이 성별을 구별해 평가하는 건 싫지만,

나는 내가 여자 상사라 이런 일을 유독 많이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남자 후배 직원들 대부분이 남자 선배 직원에게는 매우 깍듯하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도 잘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걸 많이 봤다.

그런데 내게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심지어 못 본 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나도 모르게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너 두고 보자! 내가 반드시 더 높이 올라가 너를 무릎 꿇게 만드리라~~~~~~~'

하지만 실상은 속으로 다짐만 할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거니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한다.


세상이 바뀌었고,

선배의 권한이 많이 축소되었고,

후배들의 마인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명 낀 세대다.

꼰대들의 전형인 베이비부머 세대를 보필해야 하고,

본인이 세상의 중심인 MZ세대도 이해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맘에 없는 겸손을 떨어야 하고,

미움받지 않기 위해 그들이 때로 못마땅해도 표현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 꼰대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과 태도는 받아 줘야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오히려 대인배인양 나보다 어린 직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쌍한 세대가 아닐 수 없다.


불쌍한 낀 세대... 


과연 이런 반쪽짜리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내 직장생활 최고의 암흑기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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